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Kim Jan 01. 2021

"살면서 처음으로 눈을 치웠다."

아빠의 빈자리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다. 며칠 묵은 먼지같이 바람에 날리며 사뿐사뿐 내린다. 어젯밤부터 소복소복 내리더니 계속 쌓인다.


예전에, 아빠가 일어서서 걸으실 수 있을 때.

불과 작년만 해도 눈이 내리면 아빠는 새벽부터 집에 없었다. 계단이 유독 많은 우리 집 앞뒤 계단과 연결된 골목길까지 쓸고 또 쓸었다.


 2021년 첫날부터 눈이 소복하게 내리며 쌓이고 있다. 예전이라면 그 눈을 치웠을 아빠는 지금 눈이 오는 겨울 인지도 낮인지도 저게 눈 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문득 내리는 눈을 보자 눈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난 후 처음 든 생각이다. 장을 보러 가실 엄마를 생각해서 길을 치워놔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 집엔 눈을 치울 사람이 없다.


그 예전 아빠가 그랬듯. 표현하진 않았지만 아빠의 눈 치우기도 결국 가족을 위한 거였나? 출근하는 엄마와 학교 가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구나 하고 이제야 알게 된다.


평생 엄마에게 덤으로 사는 거라 생각했던 아빠였지만 막상 아빠가 멈춰버리니 빈자리가 보인다. 자식들 집에 온다 그러면 집 청소도 하시고 차에 쌓인 눈도 미리 치워주시고 차가 미끄러질까 바퀴에 돌도 괴어 놓는 당신만의 마음이 이제야 보인다. 그때는 아빠의 청소가 깔끔 치 못 하다고 하거나 차에 쌓인 눈을 빗자루를 쓸어서 흠집 난다고 핀잔주고는 그랬다. 그냥 고마워나 할 걸......


내리는 눈을 보며 나는 모자를 쓰고 눈을 치우러 집을 나섰다. 빗자루로 눈을 쓱쓱 쓸면서 쭉쭉 길을 만든다. 그제야 사람이 지나다닐만하다. 사람의 움직이는 곳곳 모두 다른 사람의 사랑이 아닌 곳이 없구나 싶다. 학창 시절 집 계단과 골목길의 눈 치워진 길 자체도 사랑이었다. 지금 나는 그 사랑을 돌려드리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에게 나를 소개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