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내려간 친정에 머물다 떠나기 전 인사를 했다. 예전에는 아빠도 우리를 배웅하러 짐을 들어주며 함께 나왔지만 이제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다. 나갈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아마 막내딸이 제 집에 간다는 것조차 모를 것이다. 티브이도 켜있지 않은 어두운 앞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아빠를 보며 얼마나 더 말로 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입을 열어본다.
"아빠. 사랑해."
이 말에 아빠는 그제야 나를 본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대답한다.
"응, 나도 사랑해."
기억은 잃어도마음만은 남아있음을 느낀다.
신랑이 회사에서 초코파이를 가져왔다.
"초코파이 지겨워서 안 먹는데..."라고 말하다가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왜 초코파이가 지겨워졌는지 떠올랐다.
"아빠가 나 고등학생 때 야자 끝나고 오면 먹으라고 초코파이를 항상 얼려 놓으셨었어. 떨어지지 않게 항상......"
이 말을 하다가 목이 메었다.
아빠가 우리 크는데 뭘 도와줬냐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렇게 내가 기억력이 나쁘다. 막내딸이 얼린 초코파이를 잘라먹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로 지겹도록 초코파이를 사 두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빠가 우리를 키우면서 자주는 아니었더라도 곳곳에 사랑을 심어두셨구나 싶었다. 그 사랑이 내 마음속을 채우고 심장을 뛰게 하여 나도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겠지.
친정에 내려갔을 때 엄마와 시장을 거닐다가 옥수수를 봤다. 찐 옥수수를 보면 항상 엄마가 생각난다. 좋아하시니까. 그 얘기를 하자 엄마는 아빠 이야기를 꺼내신다. 아빠가 할머니 아플 때 두어 번 찐 옥수수를 먹으라고 사 오셨다고. 평생 시장 한 번 가본 적도 거래도 해보 적 없던 아빠가 말이다. 엄마를 위해 커다란 옥수수 하나를 달랑달랑 사 오셨다고. 그때 엄마는 감동받았었다고 했다.
엄마에게 말했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런 자잘한 기억들 덕분에 미운 짓 해도 잊고 살아지는가 보다고. 그런 것도 없었음 어떻게 살았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