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유난스러운 월례 가족 회의, 타운홀 앤 비욘드 (2)
요즘엔 주로 함께 놀 궁리하는 것만으로 바쁘다. “다음 주에 불꽃축제 갈 건데 같이 가고 싶으면 알려줘~” 자신의 계획을 공유하며 관심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생일파티나 송별회를 계획하기도 한다. 멤버들 생일만 챙겨도 일 년이 참 잘 가는데, 그 외에도 연중 기념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핼러윈에 이태원을 갈 것인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언제 세팅할 것인지, 새해엔 떡국을 먹을지, 3주년 행사를 어떻게 해야 기갈나게 열 수 있을지 등. “우리 어린이날에 뭐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린이날도 예외는 아니었고, 장난스럽게 나온 이야기는 실행력 좋은 몇몇에 의해 추진되어 아직 철들지 못함을, 아니 철들지 아니하였음을 기념했다. 서로 앞다투어 초대하고 제안하다 보면 이미 한 달 스케줄이 빽빽해진다.
크고 작은 갈등 덕(?)에 어렵게 정례화 된 타운홀은 커뮤니티가 성숙해지면서 함께 진화했다. 빈도, 기간, 내용, 진행 방식 그리고 주요 목적 또한 조금씩 변화했다. 커뮤니티를 산으로 비유한다면 초기 타운홀은 산불 예방을 위해 갈등의 불씨를 관리하는 게 주요 목적이었다. 갈등이 해묵어 서운함과 분노의 강풍에 힘입어 돌이키기 힘든 대형산불이 되지 않도록, 갈등으로 점화될 만한 불편 사항은 없는지 체크하고, 이미 시작된 갈등은 초기에 해소 시키는 데 급급했다.
그래도 다행히 큰 갈등의 능선을 몇 구비 넘어오다 보니 커뮤니티 문화가 시나브로 안정세를 찾으며, 길면 2시간이 넘던 회의는 점점 짧아져 어떨 때는 그 달에 분담할 가사일을 정하고 10분 만에 회의가 끝나기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타운홀을 정기적으로 가지기로 했지만, 매번 모이게 하고, 회의를 진행하는 일은 부담스럽고 왠지 미안했다. 귀한 시간을 뺏는 것 같은 미안함으로 시간 내줘서 고맙다고 회의의 시작과 말미에 연신 인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매번 더욱 부담감과 미안함이 커졌다. ‘이게 과연 최선일까?' 이번에도 역시 미안함에 급급해 타운홀을 후다닥 마친 어느 날 무안하고 헛헛한 마음 사이 질문이 남았다.
타운홀이 문제 해결에만 그치고만 있다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둘이서, 셋이서, 때론 넷이 자주 시간을 보냈지만, 커뮤니티 멤버 전원이 제대로 모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인 귀한 시간이 갈등 해결을 중심으로만 흘러가게 내버려 두면 자칫 '커뮤니티 = 갈등'이란 내러티브를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커뮤니티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할 수도 있겠단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협의하는 것은 이를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개인이 좋은 루틴을 만들려고 할 때도 없애야 할 구습관이 아니라 이를 대체할 새 루틴 형성에 집중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할수록 코끼리 생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그만 봐야지라는 목표보다, 인스타그램을 보는 건 심심해서이니까 심심해질 땐 독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재밌는 책을 손 뻗기 좋은 위치에 두어야지,라고 방향을 설정하는 것처럼.
바싹 마른 산엔 아주 작은 담뱃불, 꺼졌다고 생각했던 불씨도 금방 큰 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 건조해지는 기후와 토양을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근본적 해결이 되진 않을 것이다. 작은 불씨가 큰 산불로 번지지 않는 촉촉한 기후와 토양을 함께 만드는 것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커뮤니티 멤버 전원이 모이는 귀한 기회를 더 의미있게 잘 살리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금씩 진화한 지금의 타운홀에에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한다.
함께 더 잘 살아가기 위해
1. 지난 배려와 기여에 대해 감사하고
2. 아쉬운 점을 개선하기 위해 성찰, 제안, 협의하며
3.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고
4. 공존 역량을 키우며
5. 다음 발걸음들을 함께 계획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부는 커뮤니티 워크숍이다. 비폭력대화를 함께 배우고 연습하거나 문화적 다양성 이해도나 역량을 키우기 위한 활동을 한다.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아예 없을 순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불편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평화롭게 나눌 수 있는 대화와 관계의 기술을 갖추는 것이다. 공간 내에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를 붙이고, 비폭력대화법 사용을 권장해보았지만, 가이드는 가이드일 뿐. 제대로 활용되려면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직접 비폭력대화 센터에서 레벨 1, 2 코스를 들었고, 이때 배운 것을 커뮤니티 멤버들과 나누며 함께 연습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커뮤니티에 갓 합류한 멤버가 있다면 그를 알아가는 Microcosmos(마이크로코스모스 - 소우주) 이야기 나눔 시간을 가진다. 1인당 15분 전후의 시간이 걸리는데, 어우, 너무 길다며 부담스러운 듯 호들갑했던 친구가 오히려 가장 오래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떻게 컸고, 어떤 것이 어렵고, 어떤 도움이 필요하고, 덕심을 가진 분야는 어떤 것인지 등등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관을 여행하듯 탐험한다. 소개의 시작 또는 끝에는 안하고 넘어가면 서운한 '2개의 진실 & 1개의 거짓'이라는 퀴즈 코너가 있다. 그의 첫인상과 달리 의외의 면을 알아보다 보면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른다.
2부는 정말 본격적인 타운홀이다. 우리 타운홀은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순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선 지난 한 달간 고마웠던 사람에 대해 공개적으로 감사한다. “빗물이 샜을 때 침착하게 먼저 대응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경주 여행 기획해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좋은 곳들 많이 방문할 수 있었어!” “격하게 환영해준 모두에게 고마워. 덕분에 두려움이나 불안 없이, 아주 마음 편하게 서울살이를 시작하고, 내 인생에서 새로운 챕터를 열 수 있었어.” 공개 감사를 통해 지난달의 다양한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공동의 기억으로 승화시킨다. 한편 서로를 돕고 커뮤니티에 기여한 것 또는 그리하여 받은 것을 알아주고 공개적으로 인정(recognition)함으로써 감정적으로 보상하는 한편, 각각의 기여에 대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상기한다. 기여의 샘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넛지(nudge)하길 의도하는 바도 있다.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자연스레 지난달에 기념할 만한 소식을 다 함께 다시 축하하기도 한다. “영지, 시험 합격 정말 너무너무 축하해!” 이렇게 해서 몰랑몰랑해진 분위기를 타 껄끄러울 수 있는 주제로 넘어간다. “지난달 혹시 불편하거나 아쉬웠던 사항 있을까? 개선하면 더 좋을 만한 것들?” 식탁뿐만 아니라 음식물이 오고 갔던 곳에는 부스러기나 자국이 남으니 꼭 닦아달라, 12시 이후에는 화장실 문을 닫을 때 조금 더 주의하자. 오래된 문이라 소리가 크게 난다. 다 함께 놀고 난 후 해산하게 되면 누군가 설거지를 도맡았다고 그냥 가지 말고 거실 쪽 불이라도 꺼주고 가주라 등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건의 또는 제언은 평균적으로 두세건 정도 나오는 편이다. 없는 경우도 있다.
이후 각자의 근황과 일정을 공유한다. 같이 산다고 모두가 서로에 대해 동일한 수준으로 알지는 못한다. 오며 가며 소식을 나눠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깊게 이해하진 못하기에,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한번 더 공유하는 자리를 가진다. 퇴사하는 날짜가 며칠인지, 제주도 갔다가 오는 게 언제인지. 시험은 며칠에 시작해서 끝나는지 등.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축하나 격려를 하기도 하고 필요할 수 있는 도움을 제안한다. N이 곧 제주도에 여행하러 간다는 소식에 멤버들은 각자 최애 장소를 소중하게 담아놓은 제주도 여행 지도를 보내줬다.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A는 시험 기간과 스케줄을 구체적으로 공유했다.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또는 필요하지 않은지까지.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우리는 특별히 그 기간 동안 소음에 주의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신경 쓸 수 있었다.
소식과 일정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획으로 이어진다. 요즘엔 주로 함께 놀 궁리하는 것만으로 바쁘다. “다음 주에 불꽃축제 갈 건데 같이 가고 싶으면 알려줘~” 자신의 계획을 공유하며 관심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생일파티나 송별회를 계획하기도 한다. 멤버들 생일만 챙겨도 일 년이 참 잘 가는데, 그 외에도 연중 기념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핼러윈에 이태원을 갈 것인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언제 세팅할 것인지, 새해엔 떡국을 먹을지, 3주년 행사를 어떻게 해야 기갈나게 열 수 있을지 등. “우리 어린이날에 뭐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린이날도 예외는 아니었고, 장난스럽게 나온 이야기는 실행력 좋은 몇몇에 의해 추진되어 아직 철들지 못함을, 아니 철들지 아니하였음을 기념했다. 서로 앞다투어 초대하고 제안하다 보면 이미 한 달 스케줄이 빽빽해진다.
다음으로 역할 분담을 한다. 함께 작당 모의한 이벤트가 있다면 이를 위한 역할을 나눈다. 핼러윈 파티에 배경으로 깔 음악과 영상은 스미스가, 피자 주문은 영지가 하기로 한다. 경은이 떡꼬치로 간식을 준비하기로 하고, 내가 그 외 추가적인 꾸밈을 맡았다. 이벤트를 준비하는 일은 대체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에 자원한다. 제비뽑기로 랜덤 하게 역할을 정하는 분야도 있는데 바로 가사이다. 오가닉 쓰레기 담당 (화장실 쓰레기/음식물쓰레기 처리기 관리), 주방 마스터 (주방 내 청결/정돈 담당), 일반 쓰레기 배출 담당, 재활용 쓰레기 배출 담당. 현재 이 4-5가지 역할을 나눠서 하고 있다. 각 역할명을 적은 포스트잇을 집어갈 때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살짝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스친다. 피하고 싶은 일이나 원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피하고 싶은 일도 있었고, 누군가 피하고 싶은 일이 내가 선호하는 일인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서로 간에 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화장실 쓰레기 비우는 거는 정말 하기가 싫은데 나랑 바꿀 사람??"
"나 이번달에 했던 식기 정리 이제야 알 거 같은 감이 왔거든. 다음 달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이어서 해도 될까?? "
이때 매달 바꾸는 역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타운홀 리더’이다. 타운홀이 꼭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도록 사수하고, 리마인드 하고, 필요시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타운홀 하는 동안에는 진행을 하면서 직접 또는 누군가에게 위임시켜 기록을 남기고 후속 공유되도록 책임진다.
타운홀 앤 비욘드에 모든 멤버는 필수로 참가해야 한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의무화를 해제하는 것이다.
의무화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발적으로 전원이 오는 자리가 되어가면 좋겠다. 놓치면 너무나도 아쉬울,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로 정말 너무너무너무 손해인, 그런 자리가 되면 좋겠다. 어떤 사회주택에서 하듯 무료 음식 따위로 유혹하고 싶진 않다. 무료 식사 제공은 가끔 예상치 못한 기쁨을 주는 정도까지가 좋다. 그게 당연시 되어 그런 보상 없이 타운홀이 참여할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커뮤니티의 가치 또한 의심스럽다. 타운홀 자체가 대체 불가능한 즐거움이 되면 좋겠다. 타운홀 앤 비욘드, 이것보다 그 이상으로 가는 거다. 너무 큰 욕심일까? 뭐, 함께 계속 고민하고 실험하다 보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지금도 꽤나 즐거우니까 말이다.
나는 벌써 다음 타운홀이 기대된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타운홀 리더가 되었는데 간만의 기회인 만큼 재미지게 해 볼 생각이다.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역할 분담을 적은 종이를 집 곳곳에 숨겨놓고 보물 찾기를 해볼까 싶다.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해보고 알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