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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Feb 08. 2022

'우리'를 위해 '나'로부터 시작하기

더 깊은 연결을 위한 도구, 비폭력대화

비폭력대화(Non Violent Communication)는 사람들이 서로 연민으로 더 깊이 연결되고 모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기 위해 고안된 소통의 방식이다. 관찰 - 느낌 - 욕구 - 부탁, 이 4가지 요소를 활용하여 표현은 솔직하게 들을 때는 공감하며 듣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간단하게 보이지만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화가 나 보인다'는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지 관찰이 아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한정해서 말해야 한다. '무시당한 느낌이다.'도 역시 느낌이 아니다. 그 아래 진짜 느낌은 '화난다'이거나 '외로움'일 수 있다. 관찰은 판단과 다르며, 생각은 느낌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건 욕구가 아니라 수단이다. 부탁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요인 부탁을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각각의 요소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더 제대로 된 트레이닝과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내재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타운홀을 시작하면서 내가 간략히 소개한 NVC의 내용을 모두가 숙지하고 활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서로에게 이미 상처를 주고받았던 사이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마지막 C와 M이 남긴 말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리 지역(나라)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화를 내선 안돼. 이야기하는 중에 자리를 박차고 문을 쾅하고 닫는 것은 굉장히 모욕을 주는 행위로 간주돼. 그래서 나는 더욱 공포스러웠어! "


"우리 문화에서는 원래 이렇게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출해. 싸우고 화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그러니까 애초에 기계식 키보드 쓰지 말아 달라는 내 이야기를 네가 무시하지 말았어야지!" 



언뜻 타당해 보이는 이야기들이고 막상 갈등의 당사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다. 각각의 말을 듣는 청자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어떠한가? 

비폭력대화의 관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 다름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를 빌려 상대에 대한 판단과 비난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상대에게 전달된다. 공격은 방어 내지 반격을 부르는 법이다. C가 욱하며 공격을 받아치고, M이 울음을 터뜨리고 이야기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처럼.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까지 바꾸긴 어렵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순간에 하등 도움 되지 않는다. 비폭력대화 기법에 대해 다시 환기해야 했다. 

타운홀을 잠시 중지시켰다. 서로 숨을 돌릴 시간을 가졌다. 특히 M에게 다가가 다독였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지금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었는가와 상관없이 그 트라우마는 늘 따라다녀. 그렇기 때문에 네 두려움을 십분 이해하고 공감해. 하지만 너무 미안하게도 우리가 여기서 논의를 그만두게 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무리시켜서 정말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서로 노력해서 끝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선 심호흡을 같이 해보자!" 

심호흡을 하면서 다행히 M의 상태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이후 타운홀을 재개하면서 나는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했다. 화살이 상대에게 가는 말이 시작될세라 말을 끊었다. 그리고 즉시 정정을 요청했다. 사태가 심각하다 보니 내게 없던 단호함이 생겨났다. 

"어엇 잠시잠시~ 미안하지만 금방 하려던 말, You가 아니라 I로 다시 시작해줄래? 어떤 행동으로 인해 네가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해서, 네 감정과 욕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줘. " 

고맙게도 당시 멤버들은 내 개입에 화내는 일 없이 끝까지 NVC 방식을 자기 나름대로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화가 누그러진 C가 사과하기도 했다. 

"이야기 중간에 화가 난 나머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미안해. 그리고 기계식 키보드 소음에 대한 나의 불편함을 양해해해 주고 배려해줘서 정말 고마워." 

 그렇게 C의 사과, Y의 공감, M의 용기, S의 양해를 발판으로 우리의 논의는 진전되기 시작했다. 

"주중 9시부터 6시까지 코워킹 시간으로 할까?" 
"미안해,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유럽에 있다 보니 6시는 좀 일러. 조금 더 늦게까지 연장이 가능할까?" 
"오케이 그럼 8시까지 어떨까? 그 이후에는 거실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쉬고 놀기도 해야 하니까 그 이상은 어려울 것 같아. 다들 어때?" 
"좋아!" "문제없어!"

코워킹 아워를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결정한 후, 코워킹 스페이스일 때 통화, 미팅, 소음 등에 대해서 하나하나씩 구체적인 약속을 정해나갔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거실에 비치된 거실 이용 가이드 모습 / Photo by Noah Juun (https://www.instagram.com/noahjuun/)



M와 S는 기계식 키보드를 거실에서 포기하기로 했다. 거기에 대해 둘 다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이유는 이해했다. 분명한 선이 없어서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공론화하기 어려웠던 다이닝룸에서의 통화나 영상 콘텐츠 시청, 친구를 초대한 미팅 등에 대해서도 허용가능 범위를 설정했다. 서로 조금씩 내려놓고, 조금씩 얻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부터 바로 화기애애해졌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피해 갈 이유는 없어졌다. 조금씩 다시 편해지고 또 좋아질 일들을 쌓아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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