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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Oct 30. 2022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

“아, 제가 친구들이랑 여럿이 같이 살고 있거든요. ”

“몇 명이 살아요?”

“다섯 명이요” 

“네? 방이 몇 갠데요?” 

“다섯 개요.” 

“주택인가요?” 

“아니요 - 빌라예요. 근데 복복층이에요. 집 내부에 3개 층이 있어요” 

“네? 서울에 그런 집이 있어요?” 


이런 반응을 종종 사는 우리 집.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집에 대해 먼저 이야기 안 할 수 없다. 사실 직접 와보지 않고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라 내가 과연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최선을 다해볼 테니 눈을 감고 잘 따라와 보시라. 따라 따라 따 -(러브하우스 BGM 재생 중) 


1층은 거실, 주방 등 공유공간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2층에는 방 네 개가, 3층에 다락방이 하나가 있다. 계단은 집 안 가운데에 나있다. 1층 공간이 두쪽으로 나뉜다. 화장실 기준으로 왼편에는 거실이, 오른편으로는 주방과 다이닝룸이 있다. 거실 한쪽 벽면은 일하기 좋은 코워킹 구역으로, 반대편에는 쉬거나 모여 놀기 좋은 소파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6인용으로 나온 아카시아 원목 책상은 최대 4명이 업무용으로 넉넉하게 사용한다. 업무용 의자, 듀얼 모니터, 휴대폰 충전 덱이 업무용 공간임을 알려준다. 


베란다 쪽 벽면에 주로 붙어 있는 레트로 디자인의 TV는 대체로 켜져 있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또는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늘 틀어둔다. 스포티파이를 음악을 들을 때는 크롬캐스트 기능으로 구글 포토 공유 앨범에 들어가 있는 우리 사진이 슬라이드로 돌아간다. 랜덤으로 돌아가는 사진에 이따금 시선이 겹칠 때 “저 때 즐거웠는데!” 추억을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쟤가 피터야!” 하고 과거 멤버를 기억하고 소개하기도 한다. TV 대는 일부러 바퀴가 달린 것으로 골랐다. 낮시간에는 가지런히 벽 가까이 붙어 있다가 저녁 시간에 뭔가 볼 일이 생기면 소파 가까이로 끌어당겨온다. 


32인치의 디스플레이가 아쉬운 영화를 볼 때는 스탠딩 에어컨 뒤에 숨겨진 대형 스크린을 펼친다. 그 옆으로 레드 벨벳 커튼을 치고, 해체되지 않고 늘 이용될 준비가 되어 있는 프로젝터를 소파 옆에서 스윽 꺼내면 우리만의 영화제다. 


무비 나잇 할 때 쓰기도 하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인 벽난로 위에는 여러 가지 소품이 많이 놓여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도 치워지지 않는, 그래도 어색함이 없는 크리스마스 장식들부터 가거 멤버들이 그리거나 만든 작품들까지. 


아, 지나칠 뻔했다. 우리 집에는 벽난로가 있다. 모양만 벽난로인 게 아니라 정말 굴뚝과 연결된 벽난로다. 일부러 설치한 건 아니다. 벽난로가 좋다고 해도 내 집도 아닌데 벽난로를 새로 만들 재량은 없다. 3-40년 전에 지어질 때부터 있었다. 겨울이 되면 장작을 떼기도 하는데 난방 효과가 거의 없다. 벽난로니까 봐준다. 가장 큰 효용을 느꼈던 때는 22년 연초에 우리의 두려움을 적은 종이를 태우는 의식을 하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을 때다. 벽난로 주변으로는 원목 흔들의자와, 4인용 검은 가죽 소파, 2인용 패브릭 소파가 있다. 


거실 옆 베란다는 세탁실이다. 평화로운 런드리 카페 분위기를 기대했으나 중고로 구매한 탓인지 요즘 세탁기를 사용할 때 나는 소음은 아쉽게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세탁기 위에 요즘 신혼집에 필수품이라는 건조기까지 올려져 있다. 두 세명의 세탁물이 가끔 혼재해 올라가기도 하는 대형 건조대가 펼쳐있거나 접혀있다. 옷들이 걸려있는 날엔 하얀 시폰 커튼을 쳐둔다. 거실과 계단 사이에도 똑같이 쉬폰 커튼이 반쯤 쳐져 있다. 일하는 공간과 생활공간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반대편 주방으로 가보자. 우리 주방에는 없는 것 없이 갖춰져 있는 편이다. 식기세척기부터 말차를 만드는 셰이커, 음식물쓰레기 미생물 분해 처리기까지. 냉장고가 두 개 있는데 각각 한 칸씩의 냉장칸과 냉동칸을 쓰고 있다. 주방과 다이닝룸 사이에 두 공간을 구분하는 아일랜드 바가 있다. 아일랜드 바 위에는 꽃 모양의 플라스틱 바구니가 있고, 이 안에 각종 간식이 질서 없이 섞여 있다. 멤버들이 먹을거리를 나누는 나눔 바구니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누구나 먹어도 된다.  


베트남 등이 달린 다이닝룸 한가운데는 많게는 6인이 둘러앉기도 하는 4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고, 한쪽 벽면에는 셀린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미니 북바(Bar)가 있다. 애프터 서핑이라는 이름도 있다. 멤버들이 추천하거나 선물한 책이 각 칸을 채우고 오른편에는 각종 보드게임과 우리가 먹다 마신 술병, 다 마신 술병이 혼재되어 있다. 가끔 우리의 다음 파티를 기다리는 새 술도 있다. 


1층 가운데 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개인방들이 나타난다. 각 방에는 이름도 있고 심지어 방 문패가 붙어 있다. 위종, 정월, 문자, 백범, 연암. 우리 커뮤니티가 본받았으면 하는 위인들의 이름을 땄다. 계단이 끝나는 곳 왼편엔 위종방,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복도 중간에 있는 게 정월 방, 거기서 끝까지 가서 오른편에 난 문을 열면 문자 방,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 백범방이 있다. 계단을 하나 더 오르면 우리 집의 펜트하우스 연암이 있다. 작년 겨울부터 가스 난방이 고장 나버려서 겨울엔 춥고 에어컨 없이는 쉽게 더워지는 다락방이지만 따로 베란다도 달려있고 천정으로 하늘을 볼 수 있는 작은 유리창이 달려 있는, 낭만적인 방이다. 이 방에 지내는 사람이 없을 때는 우리의 작은 아지트로 삼는다. 방에 코타츠가 있는데, 그 위에서 나베를 끓여먹고, 보드게임도 하고, 손톱이 귤 색깔이 되도록 귤을 까먹는다. ‘아니, 여기에 방이 있어?’라고 열명 중 열명 모두가 놀라 하는 위치에 있는 백범 방만 유일하게 개인 욕실이 있고, 그 외에는 2층의 공용욕실을 주로 같이 쓴다.


집의 곳곳에 다양한 소품이 있다. 서울눅스다움을 공유하고 재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거실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원목 세계지도는 내 친구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그 옆으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나온 라이프지 슬로건이 적힌 포스터 액자가 걸려있다. 포스터가 여기저기 많은 편이다. 벽난로 위에는 전쟁 대신 평화를 만들라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2층 모서리에는 호기심을 찬양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반전 시위에서 얻어온 손팻말도 입구 근처 창문에 붙어 있다. “너저분할 수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깔끔쟁이 친구 한 명은 이렇게 평했다. (그나저나 진심이었겠지? 혹시 돌려 까는 걸 내가 칭찬으로 착각했을까나..)


우리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석진 공간들이 많다는 점이다. 삼면이 가로막힌 다이닝룸이 대표적이다. 곳곳에 베란다도 많다. 이런 구석진 공간들을 영어로 Nook(눅)이라고 한다. 우리 집의 이름이 서울눅스(Seoul Nooks)가 된 이유다. 이런 공간이 가진 아늑함과 독립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알뜰하게 꾸며놨다. 어떤 곳은 더욱 아지트 같이, 어떤 곳은 미니 홈짐으로, 어떤 곳은 제3의 공간으로. 

아무리 작고 아늑하더라도 네 면이 다 막혀있다면 그 공간을 눅으로 부르진 않는 것 같다. 그건 방이다. 눅은 삼 면 정도가 벽 등으로 가로막혀 전체와 구분되면서 다른 한 면은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또는 긴밀히 전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공간적 특징이 이 집 위에서 만들어가는 서울눅스라는 커뮤니티도 잘 설명해준다. 


우리는 배타적이다. 모두를 위해 열린 공간은 아니다.“모두가 가족이라면 아무도 가족이 아닌 것이다.” 어느 정도의 배타성 없이 커뮤니티를 만들 순 없다. 하지만 우린 계속 한쪽 면을 의도적으로 열어둔다. 2년 풀로 사는 장기 멤버로만 채우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관리한다. 같이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거실을 연다. 사면이 다 막힌 방은 주기적으로 환기해야 하지만 한쪽면을 열어둔 눅은 늘 새로운 공기가,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관계가 흐르고 섞인다. 아늑하지만 신선하다. 그것이 눅이란 공간의 장점이자 우리 커뮤니티의 매력이다. 


한편 눅은 개인과 커뮤니티 사이 관계를 닮기도 했다. 우리 집 다이닝 룸은 집에 속해있지만 거실에 포함되진 않는다. 그 사이 서있는 벽이 이 두 공간을 구분하고, 각각에 독립성을 보장한다. 다이닝룸에서 누군가 조용히 대화하면서 식사를 해도 거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각 멤버는 서울눅스라는 커뮤니티에 소속하지만 서로 다른 멤버들에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다. 각자의 삶과 관계과 리듬이 있으며 이를 존중한다. 우리는 때로 사이에 있는 벽에 창문을 내고 그 창문을 여닫으며 관계를 맺기도 하고 아예 뚫려 있는 다른 벽으로 큰 공간을 같이 이루기도 한다. 같이 살지만 그러기 위해 따로 산다. 따로이기 위해 같이 산다.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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