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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Jul 24. 2019

'주변인'이 만들어가는 입주민 문화가 재산권을 지킨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참지 않아야 하는 순간에는 목소리를 낼 것

리서치 기업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영업실적 발표 시 CEO들이 '문화(Culture)'를 언급하는 횟수가 2010년 대비 2016년에 7% 증가했다(Havard Business Review, July-August 2019).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물건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기초 성장을 한 이후에는 '이념'을 갖추고 이를 중심으로 운영이 되어야 한다. 철학사전에 따르면, 감각에 의지하여 만들어지는 관념과 달리, 이념은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얻어지는 최고 개념이다(네이버 지식백과).


리더가 가지고 있는 '이념'을 구체적이고 와 닿기 쉬운 모습으로 해석한 것이 '문화'라고 생각한다. 해당 기업이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가 기업의 가치와 성공을 결정한다. 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동주택 역시 마찬가지이다. 리더(입주자 대표 혹은 관리인)가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있고 입주민들 사이에 어떤 문화가 뿌리내렸는지가 공동주택의 가치와 성공을 결정한다. 바르게 잡힌 문화는 부동산 시장의 출렁임과 같은 외부의 환경의 변화 속에서 공동주택의 가치를 지키는 단단한 중심을 만들어간다.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바른 분별력을 갖춘 '주변인'으로서의 입주민들이 존재해야 하고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핵심이다.




입주민 온라인 모임에는 세 그룹이 존재한다. 서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두 그룹과 눈팅만 하며 잠자코 있는 사람들. 후자가 '주변인'이다. 이들은 평소에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숫자적으로 압도적이기에 결과적으로 '문화'를 결정하는 힘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들이 바른 분별력을 갖춘 사람들이어야만 공동주택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예민해도 된다. 아니,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민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주변인' 역할의 중요성은 여러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다음의 글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성희롱을 막는 것은 좋은 주변인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예민해도 괜찮아』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다. 대기업을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여 이긴 후 37세 나이에 로스쿨에 들어가 성희롱, 갑질 피해 전문 변호사가 된 여성이다....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성희롱 사건 처리가 어떻게 되느냐는 주변인들의 시선과 태도에 달려 있다. 우리 대부분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확률보다 그들의 주변인이 될 확률이 높다. 존중과 배려가 살아 있는 세상을 꿈꾼다면 좋은 주변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맞다. 본능적 충동이야 어느 사회나 크게 다르지 않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의 정도가 차이를 낳는다.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주변인들이 즉각적으로 질색하며 나무라는 분위기만 조성돼도 가해자들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반응의 즉각성이 중요하다.



내가 가입한 두 개의 공동주택(아파트 A, 오피스텔 B)의 입주민 온라인 모임공간을 비교해 보면 명확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두 곳 모두 브랜드 시공사에 의해 지어졌고, 입주민들의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어보면 실질적인 거주 만족도가 높다. 그러나 입주민 문화는 상반되게 형성되었다.


아파트 A는 객관적인 근거 없이 한 사람의 편견에 의해 분란을 일으키는 글이 올라올 경우, 평소 잠자코 있던 주변인들이 즉각 그리고 대거 반응한다. 그러다 보니 건강한 입주민 문화가 형성되고, 공동주택의 가치를 큰 그림에서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에 힘이 모아진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한 입주민이 입주민 카페에 단지 인근에서 특정 나라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젊은 외국인 남자들 서너 명이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며 이 지역 사람들의 특성으로 볼 때(?) 이들이 나쁜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으니 예방이 필요하다는 글을 감정적인 톤으로 올렸다. 평소에는 댓글의 수가 2~6개 정도였지만, 이와 관련하여 총 100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인종차별을 당한 외국인 청년들이 느꼈을 감정을 상상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쓴 글까지 새로운 원글로 올라왔다. 낯선 아이디들이 대부분인... 이들은 주변인들이었다. 즉각적인 자정이 이루어졌다. 이런 자정작용을 볼 때마다 단지의 외적 가치뿐 아니라 내적 가치까지 느끼게 된다.  


오피스텔(아파텔) B는 이와 반대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누군가의 편견에 의해 분란을 일으키는 글들이 범람되어도 주변인들이 잠자코 있는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기본적인 매너가 결여된 인식공격을 집단적으로 행하는데도 이를 질책하는 목소리를 내는 주변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본인도 인신공격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분란을 일으키는 주동자들이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입주민들 온라인 모임을 장악하며 자정작용이 멈춘 지 오래다. 결과적으로 거주 만족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분란의 소리만 들리니 정말로 문제가 심각한 게 있나 하여 오피스텔 B에 대해 인근에서 안 좋은 루머가 돌고 있다.


지난주 JTBC에서 보도한 위례 오피스텔(아파텔)의 뉴스다.


[밀착 카메라] 신도시 오피스텔 주민들 '촛불' 든 까닭은…(JTBC 뉴스룸/2019.07.15)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단지 오피스텔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련 규정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주민과 입주민 대표인 관리인이 심하게 충돌한 곳이 있습니다. 관리인은 입주민의 전기를 끊고, 차량 출입을 막았고 주민들은 촛불집회까지 열었습니다....'


관리인(아파트의 입주자 대표에 해당)이 관리소장까지 겸직하며 월 400~500만 원을 월급으로 받아가고, CCTV로 마음에 안 드는 입주민을 집어서 감시하고 심지어 자신의 임의대로 해당 입주민의 차량 등록을 삭제하여 주차장에 진입이 불가하도록 했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은 100% 관리인의 잘못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많은 전조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바른 목소리를 내는 소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단계 단계마다 '주변인'들이 잠자코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아 주변인 자신들도 너무나 아프게 되자 그때서야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단지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여러 사람들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해를 보고 나서야 움직이는 것은 늦다. 늦었다고 하는 이유는 그전에 조치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모두 다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주변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잠자코 웅크리고 있는다고 해서 피해가 당신을 비켜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동주택의 운명상 모든 입주민들은 소위 '같이 살고 같이 죽게' 된다.




공동주택의 문화는 단순히 입주민들 간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대단한 혜택이나,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재산권을 지키고 좀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유수기업의 CEO들이 문화의 중요성을 점점 더 강조하는 것은 직원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는 목적이 아니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이다.


평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목소리 내지 않아도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있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나의 재산권을 침범당하고, 최소한의 존중의식이 결여된 인신공격성 언행이 오갈 때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른 분별이 아니다. 참는 선택은 그것이 나를 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만 하는 것이다. 바른 문화는 다른 누구에게 계속 미루면 언젠가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주변인으로서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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