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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흥만 Feb 01. 2016

여행지와 관계 맺으려는 그대에게.

 프라하와 관계 맺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팁 하나 - 프라하 팁투어

사실 유럽여행을 마친 여행자에게 '유럽 몇 개국을 여행하셨어요?'라는 질문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은 몇 명의 사람을 만나 보셨어요?'라는 질문과 같은 수준의 질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만약 유럽의 여러 국가와 도시를 여행한 여행자에게 굳이 칼날 같은 질적질문을 던져보고 싶다면 '유럽의 어떤도시가 가장 좋으셨어요?'라던가 '여행하신 수 많은 도시 중, 왜 그 도시를 기억하세요?'라는 질문이 그나마 바른 질적질문의 예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사람을 만난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보다는 누구를 만나왔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지 않을까?


왜 도시에게도 양적질문이 아닌 질적질문을 해야하는가? 이유는 도시와 관계 맺는 방법이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도시는 사람과 같다고나 할까? 아니다 도시는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프라하를 가서 프라하와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면 어쩌면 당신은 먼나라 이웃나라 체코편을 읽은 내 조카와 같은 수준에서 프라하를 기억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어쩌면 '로마는 장중하고 프라하는 로맨틱해요' 뭐 이런식으로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여 일부러라도 그 도시를 내 삶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면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사건이 일어나면 어떤 물리적사건을 통해 도시와 나 사이에 어떠한 정서적 교집합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고서야 여행은 시작된 것이고 그제서야 우리는 그 도시를 여행 한 것이다. 처음엔 인사 하고 두 번째는 둘 사이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세 번째는 경험하고 네 번째는 같은 것을 느끼는 일련의 사람 사귀기와 비슷한 경로를 통해서 비로소 '나 거기 여행했어'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시는 그렇게 사진이나 찍혀야 하는 1차원적인 대상이 아닌 것이다.


눈이 안내리는 것으로 보아하니 영하는 아니지만,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보아하니 추위가 제법 콧대를 세우던 1월의 어느날이었다. 나는 체코공화국이 독립선언을 발표한 프라하 시민회관(Obecní dům) 앞에 서 있었다. 투어 약속시간인 9시 30분보다 10분 늦은 난 헐레벌떡 달려와 투어 가이드인 S와 40여명의 투어객들의 눈치를 보며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사실 내가 이 투어에 참여하기로 마음 먹은 건 20분 전 일이었다. 20분 전 난 아침식사를 마치고 민박집에서 이런 안내문을 보았다. '주중 오전 9시 30분, 시민회관으로 오십시오. 투어 예약비는 없습니다. 오시면 투어가 시작되고, 투어가 끝나면 느낀만큼의 투어비를 내십시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이 투어를 선택하도록 마음먹게 된 것은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시민회관에서 팁투어 가이드를 찾지 못할까봐 걱정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먼저 당신을 찾아낼테니까요'


이미 로마와 피렌체에서 몇 번의 투어를 참여한 전력이 있는 나는 '투어가 좋은점도 많지만, 나의 사사로운 첫 베낭여행이자 나만의 찌질한 유럽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싶어' 세상의 모든 투어를 마치 중2학생마냥 시비걸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시민회관 앞에서 가이드가 먼저 당신을 찾아낼테니 당신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문장이라니, 아니 반할 수 없었다.


내가 처음 팁투어 가이드선생인 S를 보았을 때, S는 투어객들에게 신세계 교향곡 4악장보다 죠스음악으로 더욱 친숙한 세계적 작곡가 드보르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난 그때까지만해도 S를 지금까지 경험한 그런 수준의 가이드인지 알았다. 따라서 S의 이야기들을 라디오처럼 흘려보내며 뒷짐을 지고 화약탑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남대문정도 높이의 화약탑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프라하 하늘이 내게 다가왔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의 고단한 과거까지 보여지는 것처럼 그 날의 프라하 하늘은 아름다운 프라하를 넘어 암울하였던 프라하의 어제까지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짙은 카키색의 S의 점퍼가 그 날의 프라하 하늘을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마침 S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시민광장 옆 시커먼 화약탑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난 수업시간 수업은 듣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다른 이유로 창가에 다가오신 선생님의 모습에 짐짓 놀랜 학생처럼 얼음이 되어 있었다.


“저 시커먼 화약탑을 바라보며 여러분은 한 번즈음 생각 하셨죠.

그래 그 언젠가 화약탑이 제대로 한 번 터졌었구나...

하하..

하지만, 그 게 아니고요.

저 화약탑은 모래로 구성된 사암으로 만들어졌는데요.

모래와 모래 사이의 구멍에 세월의 때가 묻어서

저렇게 시커멓게 변색된 거래요.

화약탑이 폭발 한 게 아니고요”


그 순간 내 앞에서 친구의 팔짱을 끼고 S의 화약탑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이십대 초반의 한 젊은 아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그녀는 한 남자에게 완전히 반한 것 마냥 동성인 S를 사랑스럽고 지긋하게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그 화장기 없는 예쁜여학생의 미소는 1분여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정확하게 S에게 무장해제 되었다. 그 증거로는 난 그 시간 이후 나도 모르게 자꾸 S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S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그녀 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도감이었으리라. 마치 생면부지의 상대와 정략결혼을 하고 첫날밤 수라상을 가운데 두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처음으로 마주 본 순간, 그의 외모가 모나지도 않았고 말하는 투를 들어보니 인품과 유머까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안도감이, 이런 것이 아니였을까.


프라하와 나와의 진짜 관계 맺기는 그렇게 시작되였다. 진짜 여행은 눈으로 보는 관광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되는 것처럼 이날 난 S와, S를 보면서 1분간 미소를 보였던 그 여학생을 통해 프라하와 진짜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이 날 난 이 두 여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프라하는 내게 피렌체나 베니스, 리옹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그저 아름다운 도시로만 남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프라하를 로맨틱한 도시나 프라하성이 아닌 S와 그 예쁜 여학생의 미소 그리고 폭발하지 않은 화약탑으로 기억하기 시작할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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