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꿈이 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고대 원시인들부터 이미 작은꿈과 큰꿈을 구별하였다. 우리 같으면 사소한 꿈, 중요한 꿈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작은꿈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영역에서 매일 밤 떨어져 나온 환상의 조각들로서 그 작은꿈들의 의미는 일상성 속에 소실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작은꿈들은 쉽게 잊어버린다. 이에 반해 뜻깊은 중요한 꿈은 평생 동안 기억에 남는다.
한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꿈은 3세와 4세 사이에 나타난다. 융은 이런 꿈들을 많이 조사했는데, 이런 꿈들은 다른 꿈들과 구별되는 특이함을 자주 발견하였다. 즉, 그 꿈에는 상징들이 나타났으며, 그 꿈의 내용들은 우리가 인류의 정신사 속에서 마주치는 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꿈꾼 사람이 이러한 꿈의 내용을 상상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특이성은 개성화 과정의 꿈에도 해당된다.
그 꿈들 속에 이른바 신화적 주제 또는 신화소(神話素)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신화소란 신화 속의 소재라고 생각하면 좋다. 융은 이를 원형(原型)이라고 불렀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뿐 아니라, 개별적인 꿈, 공상, 환상적 이미지, 망상 속에서도 일치된 형태로 발견된다. 이는 개인 사례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민족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를 개인무의식, 개인적 무의식보다 더 깊은 층을 표현하는 집단적인 무의식에 관해 말한다.
이 포스팅에서 말하려는 큰꿈은 집단 무의식 보다 더 깊은 층에서 나온 것들을 말한다.
이 꿈은 생생한 형상을 통해 그 꿈이 중요한 꿈임을 알 수 있다. 그 형상은 시적(時的)인 힘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꿈은 대개 인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기에 일어난다. 이러한 꿈을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큰꿈에 등장하는 원형적 형상에서 문제되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념이다. 그 꿈이 어떤 개인적인 체험에 관련된다는 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한 청년이 꿈에 지하 동굴에서 황금 접시를 지키고 있는 커다란 뱀을 보았다고 하자. 그 청년은 동화 외에는 이 꿈과 관련된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이때 우리는 뱀, 용, 보배, 동굴이 영웅적 삶의 시련을 묘사하고 있는 신화소로 되돌아가 이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이 꿈에 집단적 정동이 관계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1차적인 개인적인 체험이 아니고 2차적으로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꿈들은 꿈꾼 사람에게는 익숙한 것이 아니다. 큰꿈들은 집단적 형상들을 이용하고 있다. 큰 꿈은 개인의 균형 장해가 아닌 영원한,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문제를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자아 의식적 인간은 살아 있는 전체의 일부일 뿐이며, 그의 삶은 아직 전체의 실현을 묘사하지 못한다. 그것은 궁극적인 무의식의 의식으로의 통합, 혹은 자아의 보다 넓은 인격으로의 동화를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