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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흥만 Jun 13. 2020

꿈은 무의식의 보상이다.

 큰 꿈은 신인(神人)의 삶의 특징을 보이는 수많은 신화소를 이용하고 있다. '큰 꿈'에서는 성인식에서 보는 것과 같은 위험한 모험과 시련, 나쁜 용과 도움을 주는 동물들과 귀령들, 반쪽 짐승인 인간, 숨겨진 보배, 마법의 나무, 샘, 동굴, 울타리로 에워싼 뜰, 변환의 과정들과 연금술의 물질,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없는 것들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이제 막 이루어지려는 인격 부분의 실현이 여기에 관계한다. 예를 들어 나무가 실제와 달리 왕의 배꼽에서 자란다면 그 나무는 시조이며 아담의 배꼽에서 자란다면 인류 조상의 계보이다.


 우리는 왜 보상을 일으키는 꿈을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것은 꿈이 자연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은 그 열매를 공짜로 알려준다. 인간의 기대에 맞추어 제공하는 경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우리가 꿈을 이해할 수 없다면, 보상이란 효과가 없을 것' 그러나 그것은 확실치 않다. 모든 것을 이해했을 때,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꿈의 형상은 극(劇)의 구조와 닮았다. 

첫 째 단계는, 꿈은 장소의 진술로 시작된다. 꿈은 보통 시간의 진술이 드물고, 장소로 많이 표현된다. 


두 번째 단계는 착종(Verwicklung)이다.  예를 들면 '내가 가로수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자동차가 나타나더니 나를 향해 돌진한다. 나는 마음에 긴장감을 느낀다. 나는 운전사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단계는 절정(Kulmination)이다. 여기서는 어떤 결정적인 일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나는 갑자기 차 안에 있고, 나는 술 취한 운전사인 것 같고, 나는 차를 멈출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쾅하고 담벽에 부딪쳤다.' 


네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는 해소(Lysis)이다. 이 마지막 단계는 종결된 사실을 알려준다. 그것은 추구하던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의 예는 '나는 차의 앞쪽이 찌그러짐을 본다. 그것은 낯선 차이다. 나는 다치지 않았다. 여기서는 분명 일종의 조종 상실의 혼란 뒤에 새로운 자각이 나타나고 있다. 종종 이 '해소'의 단계가 빠진 꿈도 있는데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꿈은 보상적인 것이니 새로운 자각이 나타나야 한다. 꿈 행위의 근본 내용은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의식의 관점의 일방성, 착오, 회피 또는 그 밖의 결함에 대한 일종의 섬세하게 조율된 보상이다. 보상은 극단적일 경우 너무도 위협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린 꾸을 꾼 사람들을 인자롭게 도덕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


때때로 우쭐대는 사람은 꿈쏙에서 자기를 낮추기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를 높여서 아주 웃음거리가 되고, 많이 겸손한 사람은 꿈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업신여긴다.


경험에 의하면 '꿈의 심리학'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되면 쉽게 무의식을 과대평가해 의식의 결정력을 해친다. 그러나 무의식은 의식이 자신의 과제를 그 가능성의 끝까지 완수할 수 때라야만 만족스럽게 기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면 꿈이 이를 보충해줄 수 있다. 


꿈의 심리학을 탐구하는 우리는 아득히 먼 철학적 문제와 종교적인 문제들에 부닥친다. 우리는 오늘 이 파악하기 어려운 현상의 설명이나 만족할 만한 보편타당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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