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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한 숲 Aug 20. 2023

40대 딸둥이맘의 슬기로운 육아생활

자기 계발 편: <베테랑의 공부>를 읽고

베터랑의 공부

내 직업은 프리랜서 통번역사이다. 주류인 영어가 아닌 제2외국어로 분류되는 중국어 통번역사이다.


대한민국 정부 1호 통역사라고 불리시는 임종령 교수님께서 책을 내셨다고 해서 동종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았다.


 통역의 뒷이야기들과 본인이 만나 본 최고의 리더들과 만난 경험담 등은 통역사가 아닌 일반인이 읽어도 충분히 재밌을 것 같은 내용이었고,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어떻게 일과 가정을 양립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지금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워킹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교수님은 가족의 사랑도 강조하셨지만, 동시통역이 너무 좋아서 가족들의 식사 빼고는 그 외 모든 일은 외주화 시키셨다. 워킹맘에겐 이런 결단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뺀 나머지는 과감하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내가 7살 때부터 가게를 하셨다. 배달을 겸하고 있는 슈퍼를 하셨는데 새벽 6시부터 새벽 1시가 돼서 문을 닫는 그런 바쁜 가게였다. 그러니 나와 내 동생은 당연히 끼니는커녕 집에 있으면 강제 노동을 해야 해서 나는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밥을 얻어먹곤 했다. 소풍이며, 운동회며 엄마가 있어야 할 곳에 외할머니가 오시긴 했지만 엄마의 부재는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엄마의 부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일을 줄여서라도 (딱히 일이 많지 않고, 오는 일하기도 버거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 부분에 있어 나는  교수님의 생각과는 좀 다르다. 물론 교수님께서 책에 쓰신 것처럼 일에 올인해서 얻는 그런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일단 수입부터 포기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면 가격을 따질 수가 없다. 커리어는 이어 나가야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좀 젋을 때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 양가 부모님께 맡길 수 있을 텐데 우리 부모님들은 모두 70을 넘어 80을 바라보시는 데다가 쌍둥이라 한꺼번에 맡길 수도 없다. 

 

교수님은 워라밸 찾다가 저가 통번역시장에만 있다고 하셨지만, 제2외국어를 업으로 하는 나에게 그리 와닿지 않는다. 나는 통번역 대학원을 들어가기까지 장장 5년이라는 시간을 중국어 입시 공부에 매진했고, 들어가서도 각종 통번역 실무를 쌓으면서 스터디든 뭐든 성실히 생활했다. 졸업하고 나서도 몇 년간 일에 올인하며 생활했지만, 일한 경험 말고 내가 얻은 건 부실한 체력과 번아웃뿐이었다. 금전적인 부분은 말하지 않겠다.


시장 상황을 보면 중국어 통번역은 저가가 많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또한, 통번역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동시통역은 별로 많지 않다. 사실, 나는 내가 나서서 워라밸을 찾은 거라기보다는 시장 상황이 그러니 워라밸이 알아서 저절로 찾아진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순차통역, 비대면 통역 등 다른 다양한 통역과 번역을 하고 있고, 이런 통번역들이 결코 동시통역보다 못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수님께서 계속 공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시는 이유는 전문분야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통역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야긴 하다) 맨날 모르는 분야를 통역하려면 어쩔 수 없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럼 잘하는 분야를 하시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그렇게 분야를 따져가며 하기엔 국제회의가 너무 소수여서 그렇게 하긴 힘들겠구나 싶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통역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신 건 좋은데 그 외 통역을 너무 평가절하하시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좀 들었다. 누군가에게 선택을 당하기 위해서 나와 가족을 희생해야 하다니.... 나에겐 너무나 슬픈 얘기다. 아이들이 엄마 품에 있는 건 길어봤자 20년. 사춘기가 시작되면 나도 아이들도 서로 이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회에 나가 본인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나는 옆에서 아이들을 응원해 주고 함께 있고 싶다. 일에만 올인하다 번아웃이 온 나에게 가족은 내가 내 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내 길을 다시 가게 해 준 동력이다. (이건 교수님도 말씀하셨던 부분) 아마도 교수님이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은 "열심히 공부해라!"였을 것이다. 나는 발전 중이니깐 책에 쓰신 말씀 하나하나에 상처받지 말아야지라며 소심하게 다짐해 본다. 나한테 들어라고 쓴 것도 아니잖아. 이런 것 가지고 걸고넘어지지 말자.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큰 소득은 내 업에 대해서 나는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할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됐다는 점이다. 교수님이 겪어오신 인생이 나와 다르듯 나는 나만의 인생을 살겠지만, 내 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인드는 교수님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이 통역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중국어 소통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소명이고 기쁨이다. 시장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국제회의통역사는 못되더라도, 통번역 현장에서 나의 입과 귀를 바라보는 이들을 이어주는 통번역사가 되겠노라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엄마가 되겠노라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본다. 시장에 존재감이 1도 없는 일개 프리랜서지만 내 몫을 다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상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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