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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한 숲 Jan 26. 2023

육아:나를 기르는 육아

육아의 순기능(1)

내가 미혼이었을 때, 나에게 아이는 "나의 약점"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이성도 마비된 채 철저히 평생 종속되어 자식 걱정하며 살게 만드는…


흔히 영화 드라마 또는 우리 주변에서 또는 내 가족에게서 보이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쳐야 될 것 같은 모정(母情)이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 같아 출산 육아를 생각하면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적령기였기에 연애하면 결혼해야 될 거 같아서, 소개팅을 해도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기 힘들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는다면 단연코 결혼과 출산이라고 생각한다.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남편과 엄청난 전투를 벌였지만, 그래도 쌍둥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물론 하나씩 낳아 그 아이에게만 사랑을 쏟지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쌍둥이는 또 쌍둥이만의 매력이 있으니깐.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법이니…


"아이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


아이를 기르다 보니 확실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왜 그렇게 어떻게든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아이에게 부모의 욕망이 투영되기 십상이다. 어쨌든 인생 리셋하고 싶은 사람들은 출산하십시오. 


나에게 육아의 순기능은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내 행동 내 커리어 이런 것들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키워졌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원망본 적이 없다. 그건 부모님이 잘해주셔서가 아니라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기대할 게 없어서 원망조차 없었던 거다.


육아는 처음이라 이런저런 서적, 동영상 등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고,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땠나를 돌아보게 됐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모님에 대해 회상해 보면 근면성실하셨지만, 절약과 절제가 너무 과하진 않았나 싶다. 어릴 땐 내 마음속엔 항상 부모님 걱정이 가득했다. 40대가 된 지금도 부모님은 내게 기댈 수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챙겨야 되는 존재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것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게 우리 집(당시 슈퍼를 했었다) 앞에 큰 농협이 들어와 부모님이 걱정하시던 게 눈에 훤하다. 나도 그 당시 부모님 걱정에 잠을 못 이뤘다는…(이렇게 자란 애들은  호구로 클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게 되면 아무래도 부모인 나에게 결핍된 것에 집착하게 되는데  나에게 그런 결핍은 바로 음식이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엄마는 나에게 도시락을 싸준 적이 없다. 점심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엄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을 꺼내먹을 때 나는 내가 싸간 초라한 도시락을 먹었다. 그때는 음식을 할 줄 모를 때니깐, 맨날 엄마가 방법을 알려준 진미채 볶음과 집에서 파는 햄, 김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엔 친구들 도시락 반찬이 참 맛있었는데… 크게 불만이진 않았다. 부모님이 밤낮없이 일하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기대도 하지도 조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를 키워보니 어릴 적 내가 참 짠하다. 아이가 아무 말하지 않는다고 괜찮은 게 아닌데 우리 시대 부모님은 모두 먹고살기 바빠서 아이들을 많이 방치했구나 싶다.  


도시락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는 사건이 있다.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피아노학원이 여름 캠핑을 가는데 우리 엄마가 도시락을 안 싸준 거다. 다른 친구들은 다 도시락을 싸 오는데 나만 없다니… 너무 서러워서 가게에서 소리 지르고 방으로 들어가서 울고불고 난리치고 있는데 부엌에서 김밥 싸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엄마가 가게 문을 닫았나? 했는데… 알고 보니 피아노학원에 같이 다니는 동생의 엄마가 부엌에 들어와서 내 김밥을 싸고 계신 거다. 가게에  울고 불고 난리 친 내 모습이 짠해서 사주신 건지, 엄마가 부탁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그 사건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엄마가 미리 부탁했던 거라고 했다. 그럼 좀 일찍 와서 싸주시지.... 출발하려는데 나만 도시락이 없어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가끔 내가 음식 할 때 애들이 울고 불고 할 때가 있다.(가끔이 아니라 자주) 애들이 떼쓰다 지쳐 혼자 바닥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걸 볼 때면 그 당시 내가 울고불고한 게 가끔 생각난다. 애들이 울면 즉각 반응을 해줘야 된다는데 내가 뭐 하고 있을 때 단순히 안아달라는 거 같으면 반응을 안 하게 된다. 애가 둘이라 힘들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길러져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난 애들한테 그런 결핍을 주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주고 있진 않나 되돌아보게 된다. 


내 부모보다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싶은데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과연 세상에 좋은 부모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지금 이 시대에는 좋은 부모가 되기가 더더욱 어렵다. 순식간에 바뀌는 세상에서 어제의 좋은 부모가 오늘의 좋은 부모라 말할 수 없고, 내일의 좋은 부모가 될 거라고 더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좋은 어른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좋은 어른으로 키울 수 있을까? 시대마다 변하는 사회의 요구가 부모 자식 간에도 해당되는 것도 같다. 


"나를 키워나가야 아이를 키워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인 생각은 육아에 1도 도움이 안 된다. 미래가 비관적이더라도 내 아이에겐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육아를 하며 드는 생각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내가 바로 서야 한다는 점이다. 내 결핍은 어린 나에게 하든 아이를 키워나가며 채워나가야 한다. 나를 끊임없이 탐구해 나가야 나와 비교해서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다. 나 자신을 아는 것... 그건 결혼이든 출산이든 전 생애에 걸쳐 공통적으로 탐구해 나가야 되는 인생의 과업과도 같다. 시대가 원하는 부모의 외형적인 조건이 있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 가치가 있듯 육아도 마찬가지다. 내 결핍을 채우느라 아이의 욕구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부모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릴 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딸들과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한다. 값비싼 장난감을 사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좋은 부모는 될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 정서적으로 따뜻함이라도 전해주고자 오늘도 나는 몸으로 때운다. 어릴 땐 그 무엇보다 엄마의 시간이 최고의 선물이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새기며, 허락된 이 시간을 고되지만 행복한 시간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육아의 고됨으로 행복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며 자유를 부르짖긴 한다. 행복한 시간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가끔 내 안의 시베리아 벌판에 십상시 개나리를 소환할 때도 많다. 육아의 고됨과 행복을 별개의 문제다. 그래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 눈물이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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