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할망, 삼신할매, 바리데기, 조왕신과 측신까지
우리는 신하면 왠지 남자의 모습을 한 신을 떠올리지만, 사람의 모습을 한 인격신이 등장한 이래 최초로 섬겨지던 신들은 여신들이었다. 이 여신들은 대지와 어머니의 생산성을 상징한다. 모신 신앙이 등장한 것은 인류가 모계 중심 사회였을 때의 일로 추정된다. 인류학자 루이스 모건에 따르면 인류는 원시 난혼 단계에서 모계 사회로,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발전해 왔다.
정해진 배우자 없이 성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던 시기를 지나, 아직 구체적인 결혼 제도는 성립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는 쪽은 여성이었기에 구석기 말기의 어느 시기 쯤에는 모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후 농업이 본격화되고 전쟁이 많아지면서 남성의 역할이 강조되는 부계로 중심이 옮겨갔으리라는 주장이다.
3만년 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이러한 고대 모신 신앙의 근거라 할 수 있다. 풍요와 생산이라는 여성의 능력 때문인지 모신 신앙은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등장한 뒤에도 꽤 오랫동안 그 자취를 남겼다. ‘신통기’로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정리한 헤시오도스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남성 중심의 신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최초의 신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스 문명권에서 발견되는 신상으로 추정되는 인물상 중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가장 유명한 여신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는 24개의 유방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에베소(에페소스)의 아데미 신전이 바로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던 곳이다.
모신 신앙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나타나며 점차 잊혀져 갔다. 유대교를 비롯한 유일신 계열의 종교에서 신은 남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조로아스터를 비롯해, 예수, 부처, 무함마드 등 주요 종교의 창시자와 중요한 예언자들 역시 모두 남성들이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종교들에서도 모신 신앙의 흔적들이 존재한다.
카톨릭의 성모 마리아가 대표적이며, 불교의 관세음보살 역시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남성 중심의 종교 체계에서 결핍된 여성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존재로 민초들에게 널리 신앙되었다. 예로부터 엄부자모(嚴父慈母)라고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이미지는 자녀의 균형있는 양육을 위한 역할 분담의 결과였던 것처럼.
특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묘사된 것처럼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나 김홍도의 ‘남해관음’에 그려진 선재동자를 데리고 있는 관세음보살은 어머니 그 자체다.
힌두교의 여신 칼리와 도교의 서왕모도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경우는 어머니의 자애로움보다는 남성성과 대등한 여성성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심판과 전쟁의 여신 칼리는 창조(브라흐마)와 유지(비슈누), 파괴와 재창조(시바)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을 의미하며 서왕모는 도교적 세계관에서 옥황상제에 버금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 역시 청동기 시대 이후로는 단군으로 대표되는 남성신의 모습이 두드러지지만 모신 신앙의 전통 또한 만만치 않다. 오히려 가부장 제도 정착 이후 남성신들에게 종속되거나 남성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이 강조되는 타 문화권의 여신들보다 더욱 주체적인 모습들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여신이 마고할미다. 마고할미는 신라 눌지왕때 박제상이 쓴 ‘부도지’라는 책에 언급된 창세신, 즉 세상을 창조한 신으로 엄청난 크기의 거인으로 묘사된다. 곳곳에 전해져오는 설화에 따르면 마고할미는 하늘도 땅도 없는 혼돈의 세계에서 하늘을 밀어 하늘과 땅으로 나누고 땅을 긁어모아 산을 만들었으며 오줌을 누어 강을 만들었다.
비슷한 종류로 제주 설문대 할망과 지리산 노고할미, 전북 부안 수성당의 개양할미 이야기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산을 베고 자거나 바다를 건너다녀도 속옷이 젖지 않을 만큼’ 거대한 몸집을 가진 거인으로 묘사되는 여신들이다.
이러한 여신들은 고대 모계사회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여신들의 거대한 크기와 강력한 힘은 당대 여성들의 지위와 권력을 짐작케 한다. 세계에 많은 창세신화들이 있으나 여신이 세상을 만든 사례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고대 한국의 여성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모신 신앙은 고조선이 등장하는 청동기 시대 무렵부터 약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구빈마을에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져 온다. 단군이 거느리는 박달족이 마고할미가 족장인 마고족을 공격했다. 싸움에서 진 마고할미는 단군이 자신의 부족에게 너무도 잘해주는 것을 보고 단군에게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군은 투항한 마고할미와 그 아래 아홉 장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극진히 대접했다. 아홉 손님을 맞아 대접한 곳이 구빈(九賓)마을이라는 것이다. 여성 부족장이 다스리던 집단들이 단군으로 대표되는 남성 중심의 사회로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겠다.
하지만, 이후에도 모신 신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특히 토지신(산신)의 지위는 계속해서 유지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산 이름 중에 노고산, 마고산, 대모산, 대고산, 할미산 등이 여신숭배와 관련된 곳으로 추정되며, 노고단, 마고산성, 할미산성 등의 유적들과 노고당, 할미당 등의 이름이 붙은 신당들도 그러하다.
고대 창세신과 산신 신앙 외에도 다양한 여신들이 존재한다. 아이를 점지하고 출산을 관장하는 삼신할매, 2월의 계절풍을 상징하며 풍농과 풍어를 주관하는 영등할매, 부엌과 불씨를 담당하는 조왕신(조왕각시), 뒷간에 있는 측신(측신각시) 등이 그들이다. 풍농과 풍어를 책임지는 자연신 영등할매도 그렇지만 임신과 출산, 음식과 배설 등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들을 여신들이 담당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여신 중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무조(巫祖) 바리데기다. 바리데기는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는 망자천도굿(진오귀굿, 씻김굿, 오구굿)에서 불려지는 무가의 주인공으로,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으나 죽은 부모를 살리고자 모진 고초를 겪으며 저승에 다녀와 신이 된 인물이다.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무당들의 조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바리데기 신화는 내용 자체로도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강인한 여성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태어나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길을 인도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한국문화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삼신할매의 점지로 태어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서 바리데기의 손에 이끌려 저승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