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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Sep 30. 2024

난독증은 없다?

- 난독증에 대해선 여전히 할 이야기가 정말 많이 있지만 꾸준히 계속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독자분께서 응원해 주셨듯이 난독증에 관한 책을 한 번 써 볼까 합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와 함께요. 그동안 관심 가지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책으로 다시 만나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


난독증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과연 "난독증"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자들 중에 난독증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별로 진지하지 않게 읽고 넘겼는데 이젠 나도 그들 중 한 명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까지 난독증의 증상들과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 실컷 열심히 쓰고 나서 이런 말을 하니 우습긴 하지만 다른 비슷한 비유를 들어 설명을 해 보자면 이런 느낌이다. 


무용시간이 되어 현대무용과 고전무용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정말 몸으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즐겁지도 편하지도 않다. 당연히 나는 잘하지도 못한다. 특히나 사람들 앞이라면 나는 더욱 주눅이 들어 위축되고 실수도 많다. 나는 늘 무용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무용시간엔 혼자 공상을 하거나, 몰래 호주머니에 손바닥만 한 책을 넣었다가 간간히 몰래 읽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은 내가 반드시 춤을 잘 추어야만 한다고 해서 나는 개인 과외도 받는다. 선생님은 무용시험 결과를 순서대로 벽에 이름을 붙여놓고 제일 아래에 이름이 붙어있는 나에게 공개적 망신을 주었다. 과외 선생님이 정말 열심히 가르쳐주셔서 이제는 내가 열심히 연습한 것은 대충 따라가는 정도가 되었지만 다시 새로운 춤이나, 남들 앞에서 공연을 해야 하면 나는 머리가 새하얘진다. 무용이 없는 세상에서 책을 잘 읽는 사람도 똑같이 인정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우리는 이렇게 춤을 잘 못 추거나 몸으로 하는 것이 힘든 사람들을 "몸치"라는 말로 부른다. 만약 내가 소위 그런 "몸치"에 해당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면 될까? 나는 춤을 추거나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 굳이 춤에 취미도 없고, 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특정 라벨을 붙이고, 억지로 그걸 계속 시킬 필요는 없다. 


그런데 만약 학교도 직장도 무용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모든 지시를 몸동작으로 표현하여 전달하고, 나의 아이디어도 춤으로 표현하거나 안무를 짜야하며, 하루를 마칠 때도 춤으로 마무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난독증이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우리의 현 사회는 너무나 많은 것이 읽는 것과 읽는 것을 토대로 이해하기를 요구하는 시스템이 대부분이니까. 


우선, 난독증은 글을 못 읽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한글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필수 외국어로 배우는 영어는 한글보다 훨~씬 더 읽기가 까다로워 성인이 될 때까지도 못 읽는 사람들이 사실은 참 많다. 하지만 이들도 마음잡고 공부하면 몇 주에서 길어도 몇 달 안에는 읽을 수는 있게 된다. 


물론 여기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느냐에 따라 또 긴긴 토론이 시작될 수도 있겠다. 내가 말하는 "읽는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는 못해도 글이라는 암호를 해독하여 사회에서 인정되는 공통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글이라는 암호를 "읽을 수 있게 되면" 난독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얕은 의미의 난독증이 있는 사람을 찾자면 한국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겠다. 


난독증은 주로 읽는다는 행위에서 어려움을 겪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게" 되지만, 실은 사회와 세계를 보는 방법, 문제를 푸는 방법,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이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다. 머릿속이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말로 조리 있게 설명하라거나, 어떻게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전체의 그림이 그려지는 사람에게 과정을 차례대로 쓰라거나, 자연의 소리와 움직임에 온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에게 네모의 교실에서 딱딱한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라거나, 연필이나 젓가락을 "바르게" 쥐거나 "바른 영법"으로 수영을 하는 것이 해도 해도 잘 안 고쳐지는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벌을 주면서 고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없다거나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1970년대에 한국에서 살았던 미국인은 어땠을까? 늘 조금 주눅 든 채로 살 지 않았을까? 모두들 "키만 멀대같이 큰 저 코쟁이"를 비정상 취급했을 테니까. 백인 혼혈이었던 이유진은 20년 전 자신이 혼혈임을 기자회견에서 울며 밝혔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기자회견을 할 일인가, 게다가 울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불과 20년 전 일이다. 


비건이 유별난 취급을 받지만 반려동물이 내 자식이 된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다른 동물들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먹지 않는 게 가까운 미래에는 당연해질 것이며, 게이임을 부끄러워했던 사람들이 서서히 자연스러운 관계의 한 가지 형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여성이 담배를 피우거나 운전을 하면 감내해야 했던 사회의 질타가 이제는 당연한 차별과 폭력으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난독증"이란 이름을 누군가에게 붙이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된다. 난독증이 정말 부끄러워하고 숨겨야 하며 "난독증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게 옳은 일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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