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해하고 싶어
평일 오전 서울행 지하철을 탔다. 자리가 없어서 한쪽 코너에 남편과 함께 섰다. 그날은 옷을 좀 차려입으면 좋을 것 같은 날이어서 남편은 셔츠에, 쟈켓에, 그 위에 외투까지 입고 있었다. 밖은 추웠지만 지하철 안은 무척! 따뜻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 안이 아무리 더워도 외투를 거의 벗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더위를 잘 타기에 한국의 대중교통 내부가 너무 덥다는 얘기를 예전부터 참 자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지하철 안에서,
남편: 아, 너무 덥다.
나: 그럼, 외투를 벗어. 나중에 복잡해지면 벗기 힘들 테니까.
남: 아냐, 됐어. 그럼 들고 있어야 하니까.
나: 괜찮아. 무겁지 않아서 내 가방 위에 걸치면 돼.
남: (내 가방을 한 번 보고는) 아니야, 괜찮아.
나: 무거울까 봐 걱정하는구나. 아니야, 전혀 무겁지 않아. 곧 사람들 많이 타면 이젠 벗고 싶어도 벗지도 못 해. 그럼 지금 벗을 걸.. 하고 나중에 후회한다? 진짜 난 괜찮거든.
남: 아냐, 괜찮아.
나: 그래? 그럼 난 더 이상 얘기 안 한다? 세 번이나 벗어도 된다고 충분히 얘기했으니까.
(한 정거장쯤 가는 동안 남편은 외투를 벗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 그럼, 외투 벗을래.
나: 그래~ 그럼 벗어~
가끔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면 좀 답답한 경우가 있다. 뭔가 불편하거나 불만이 있을때, 늘 하던 방식에서 조금만 바꾸면 좀 더 새롭고 더 편해지는데, 절대로 시도해 보지도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내 남편이 오랫동안 그랬다. 늘 뭐든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해야 하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을 누군가가 '갑자기' 제안하면 "일단 거부"부터 하고 봤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성향을 알고 난 후론, 나도 그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지만 그도 조금은 바뀌었다. 이제는 자신이 생각해도 비논리적인 행동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가끔보다는 조금 더 자주' 새로운 시도를 하곤 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남편에게 "그래? 그게 거기 있어서 늘 불편했으면 여기로 옮기면 됐잖아?", "무선 이어폰이 자꾸 귀에서 빠져서 불편하면 계속 참고 견디지 말고, 다른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면 되잖아?", "신발끈 묶는 게 그렇게 싫으면 신발끈이 없는 신발을 사서 신으면 되잖아?", "글자가 잘 안 보이면 안경점에 가서 시력 검사를 받아보고, 필요하면 안경을 사면 되잖아?"처럼 나에게는 무척 간단한 것들이 남편에게는 간단하지가 않았다.
예전에는 솔직히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물건을 다른 곳에 놓으면 가만있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안경을 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대체 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까? 그것도 불평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 불평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남편을 좀 더 잘 알게 되고 나서는 이해가 됐다. 그는 내가 배치해 둔 어떤 물건이라도 자신에게 편리하도록 이동시킨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아마 그건 그가 나를 배려하는 방식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을 사거나 안경을 맞추거나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말하고, 그것은 그에게는 피할 수 있으면 끝까지 피하고 싶은 선택지였던 거다. 끈 대신에 다이얼을 돌리는 운동화를 사기까지도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안경을 맞추기까지도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남편이 답답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아무래도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의 제안을 끝까지 거부했다. 다이얼 운동화는 우연히 딱 한 번만 신어보자고 간곡히 부탁해서 시도하게 만들었고, 무선 이어폰은 (아들이 알려줘) 내가 골전도 이어폰을 그냥 주문해서 써보라 했고, 안경은 정말 불편해서 어쩔 수 없게 되어서야 마지못해 샀다.
이런 그를 경험하면서 나는 내가 아무리 좋다고 생각하는 선택지가 있더라도 그에게 무조건 하라고 하면 절대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거란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새로운 선택지에 최대한 여러 번 노출"하고, 그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준 다음, "만약 그가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그가 쟈켓을 드디어 벗을 때, 숨길 수 없이,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자 남편이 물었다.
"진짜 그만 물어볼 거였어?"
"ㅋㅋㅋ 이제부터 항상 최대 딱 3번만 물어볼 거야. 그리고 그다음은 당신에게 오롯이 결정권을 넘길 거야. 아무리 좀 아쉽다고 생각되는 게 있어도 3번 이상은 안 물어볼 거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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