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 애들이 있어서 떠드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의 서재가 없지도 않은데 굳이 매번 커피숍에 가서 돈을 쓰고 오는 걸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조용한 집에서 커피 한 잔 내리며, 가끔은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기도 한 채로 글을 쓰면 안되나?
남편은 왜 굳이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걸까?
그는..그렇게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르고 글도 무척 쉽게 써지기 때문이라 한다.
남편: 커피숍에 가서 글 좀 쓰고 올게.
나: 응, 그래. 오늘은 어디 갈 건데?
남: 길 건너 모퉁이 베이글집. 전에 몇 번 갔었는데 거기 커피도 베이글도 너무 맛있더라고. 오늘도 거기 가려고.
(그렇게 같은 커피숍을 몇 번 갔다. 그 집 주인은 이제 그가 단골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 아... 이제 다른 커피숍을 찾아야겠어.
나: 왜? 거기 좋다면서.
남: 응, 좋아. 커피도 맛있고 베이글도 맛있고.
나: 근데, 왜 바꿔?
남: 주인이 날 알아봤어! "How are you today?"하고 인사도 하고, 서비스로 머핀도 줬어.
나: 좋네!
남: 난 안 좋아...
나: 그럼, 어떡해? 너무 큰 카페는 사람이 많아 시끄러워서 싫고, 너무 작은 데는 너무 존재감이 두드러져서 싫고, 여기는 딱 좋다면서? 적당히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누가 아는 척하지도 않아서 완벽하다고 했잖아.
남: 그랬지. 오늘까지는. 근데 이제 익명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이런 경우가 남편에겐 참 자주 있다. 자신은 적당히 시끄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의 일만 하고 싶은데, 주인 입장에선 자주 오는 단골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주거나 아는 체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편은 이 상황이 왜 불편하고 싫은 걸까? 누가 나에게 아는 체를 해 준다는 건 나도 뭔가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소소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스몰토크를 일상생활에서 무척 많이 하는데 남편은 그걸 잘 못한다. 그게 왜 필요한지, 어떻게 여러 다른 상황에서 일일이 다 다르게 답변을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물론,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남편을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누군가가 그에게 인사하고, 잘 지내냐, 이건 서비스다, 날씨가 좋다 는 등등의 스몰토크를 하면 자기도 잘 받아서 이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그에게는 "추가적인 에너지"의 소모를 일으킨다.
운전에 비유하자면, 차선을 잘 따라서, 신호도 잘 지키고, 비가 오면 와이퍼도 켜고, 심심하면 음악도 틀고, 조수석에서 누가 얘기를 하면 그것도 들으며 운전을 잘하는 내가, 운전을 처음 배워서 도로에 나갔을 때는 그 모든 것을 무척 "신경을 써서"했다. 와이퍼가 왔다 갔다 하는 거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맑은 날을 소원했고, 차에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랐으며, 라디오는 틀지 않고, 차선 밖을 넘어가지 않았는지 걱정했고, 정지선도 신경 써서 준수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별생각 없이 본 다른 운전자들은 내가 초보인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물론, 운전을 한참 하다 보면 초보인지, 외국인인지, 핸드폰을 하고 가는지(틀릴 수도 있지만) 조금 느낌이 오기도 하지만.
신경다양인은 신경전형인을 "정상"으로 전제하고 "덜 정상"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칭하는 용어로 인식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신경전형인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신경다양인인데 그중 비슷하게 사고하는 사람들의 특정 그룹이 좀 더 클 뿐. 컴퓨터에 다양한 브라우저가 있듯이 사람도 각기 다른 브라우저로 세상을 본다고 이해하면, 절대 이해불가였던 사람도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크롬, 사파리,엣지, 파이어팍스 등 어떤 브라우저로 사이트를 보느냐에 따라 무척 다른 경험을 하게된다, 크롬을 50% 이상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파이어팍스를 5%가 사용하기 때문에 크롬이 더 좋거나 낫다고 말해도 될까? 파이어팍스는 크롬이 없는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자폐도 어떤 면에선 파이어팍스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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