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딜레마
최근 티몬과 위메프(이하 티메프)에서 벌어진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와 소규모 이커머스 알렛츠(Allets)의 영업중단 사태로 인해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티메프와 알렛츠는 이러한 상황을 사전에 염두하고 할인 혜택이나 쿠폰 제공을 통해 현금을 확보한 뒤 기업 회생 및 서비스 종료를 진행했다는 논란이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몇년 간 플랫폼의 공정 경쟁이라는 명분으로 세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플랫폼에 대한 사후규제 방식의 이 법안은 이번 사례를 계기로 플랫폼 규제법안, 이른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에 대한 법안 발의를 위해 다시금 움직이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은 쿠팡이나 네이버와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주된 규제 대상입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러한 법안에 가장 크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스타트업이라는 점이 의외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왜 스타트업들이 대형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걸까요?
온플법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들이 소상공인과 같은 약자에게 불공정한 거래 조건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이 법안은 쿠팡,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들이 자사 상품을 우선적으로 노출시키거나,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등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자 합니다. 규제의 필요성은 이들 거대 플랫폼의 막대한 영향력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스타트업들이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타트업은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로 빠르게 시장을 점유하며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유치와 빠른 확장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온플법이 제정될 경우, 이러한 스타트업들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는 순간 강력한 규제의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 온플법의 기준에 따르면 매출이 5천억 원을 넘거나, 3조 원 이상의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의 경우 규제 대상에 포함됩니다. 이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해당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투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스타트업의 성장은 둔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스타트업들의 최종 목표는 단순히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플법이 도입되면 그들의 성장 목표가 곧 규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타트업들의 출구전략 중 하나인 M&A 또한 경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이 자본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비슷한 법안을 도입한 경험이 있습니다. 2021년, 중국 정부는 '플랫폼 경제를 위한 반독점 지침'을 도입하여 플랫폼 기업들의 독과점을 규제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상과 달리 스타트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벤처 투자 건수는 26.7% 줄어들었고, 새로운 스타트업의 진입도 18.7% 감소했습니다. 규제가 스타트업의 혁신적 시도를 억제하고,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도입한다면, 중국의 사례처럼 스타트업 생태계가 위축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최근 티메프와 알렛츠의 사례는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이들 플랫폼은 영업 중단 직전까지 대규모 할인 행사를 벌여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피해를 끼쳤습니다. 특히 알렛츠의 경우, 미정산 대금이 최소 300억, 최대 조 단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는 소비자들에게 플랫폼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고, 이는 소규모 스타트업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대형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겠지만, 이로 인해 소규모 플랫폼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안은 대형 플랫폼의 독과점을 막고, 공정한 시장 경쟁을 조성하기 위해 제안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안이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에게 미칠 영향은 매우 복잡합니다.
성장을 꿈꾸는 스타트업에게는 새로운 규제의 장벽이 될 수 있으며, 소상공인들에게는 단기적인 보호를 제공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선택지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안을 도입하기 전에 더 신중한 접근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이 필요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검토와 조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