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마음을 돌보는 시대
* 2025년 5월 작성된 글입니다.
마음 건강이 ‘서비스’가 되는 시대
마음 건강을 관리하는 일상이 일본에서도 점차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전통적인 병원이나 상담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일본 사회에는 ‘스스로 조용히, 디지털 도구를 통해 마음을 돌보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World Economic Forum(WEF)에 따르면, 일본에서 정신 건강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6%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미국과 유럽은 그 비율이 52%로, 일본은 상대적으로 심리 상담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멉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기반 멘탈 헬스 서비스가 시장에서 조금씩 관심을 끌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히 자가 관리형, 비대면, 프라이버시 친화적이라는 특성이 일본 소비자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지며 새로운 시장을 빠르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일본 디지털 멘탈 헬스 시장은 2023년 약 4000억 원 규모에서 2035년 약 1조 9000억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며, 연평균 14%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 중입니다.
이미 움직인 시장, 누가 먼저 자리 잡았나
일본 로컬 스타트업들도 이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Awarefy사입니다.
2019년 설립된 일본 스타트업 Awarefy가 제공하는 인지행동치료(CBT) 기반 AI 챗봇 서비스 ‘Awarefy: AI Mental Partner’는 누적 다운로드 70만 건 이상을 기록했고, 2024년 하반기 기준 누적 대화 건수는 300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한국 스타트업 중에서는 블루시그넘의 감정 관리 앱 ‘하루콩’이 일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2021년 일본어 서비스 시작 이후 일본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누적 다운로드 70만 건을 기록했으며, 일본은 현재 전 세계 사용자 수 기준 3~4위권에 올라 있습니다.
일본 사용자들은 이 앱 서비스를 통해 매일 감정을 기록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자가 루틴’ 형식으로 활용하고 한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 고유의 꾸준함, 기록 중심 소비문화와 잘 맞아떨어진 UX 설계가 성공 요인으로 꼽힙니다.
신규 진출 사례로는 한국 스타트업 엑시스트(Exist)가 있습니다. 엑시스트는 얼마전 진행된 스시테크 도쿄 2025 박람회에서 스마트폰 카메라 기반 감정·스트레스 측정 솔루션 ‘baxe AI’를 공개했습니다.
웨어러블 없이 30초 이내 측정 결과를 제공하고, 프라이버시 친화적 UX 설계를 통해 일본 시장의 정서적 요구에 부합하는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왜 지금 일본 시장인가
이러한 시장 흐름 뒤에는 일본 정부의 정책적 변화가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2022년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 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며 2027년까지 10조 엔(약 90조 원) 규모의 스타트업 육성 투자 계획을 밝혔습니다. 저출산·고령화, 팬데믹 이후 복지 서비스 수요 급증으로 인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일본 정부가 집중 지원 분야로 선정한 영역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최근 일본 시장에서 관찰되는 정책 변화와 스타트업 투자 흐름을 살펴보면, 한국 기업들이 일본 멘탈 헬스케어 시장에서 특히 주목하는 기회 영역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먼저 기업 복지 서비스,·HR 프로그램 연계, 보험사와 연계된 예방적 헬스케어 서비스 등 기업 내 임직원들의 복지의 일환이나, 공공영역에서 공공복지를 위한 방향으로 도입하는 사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한국에게 있어 삶의 문화들이 일부 비슷한 부분이 많고, 최근 여러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아시아 테스트베드로 한국 스타트업들이 일본 시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신뢰’를 설계할 차례다
최근 한국에서도 ‘멘탈 케어’는 사회적 화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정신건강 상담이나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이를 자기 관리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사내 심리상담 서비스 도입, 디지털 기반 정신건강 프로그램 운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최근에는 기업과 공공 조직 차원에서 정신 건강 지원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 고령화, 팬데믹 이후 고립감 등 누적된 스트레스 요인이 조직의 리스크 관리와 생산성 유지 측면에서 멘탈 케어 서비스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본질적으로 생산성과 효율성 경쟁이 심화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정신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으며, 멘탈 헬스케어 서비스는 이제 조직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필수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스타트업들의 일본 진출은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일본은 높은 프라이버시 요구 수준, 정교한 UX 기대치, 까다로운 규제 환경을 갖추고 있어, 글로벌 확장 전 검증과 최적화를 위한 전략적 테스트베드로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현재 일본 디지털 멘탈 헬스 시장은 조직 중심 서비스로 확장되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습니다.
앞으로는 성과 기반 평가 체계 구축이 시장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며, 정량적 효과를 증명하고 고도화된 서비스 모델을 제시하는 기업들이 일본 내 B2B·B2G 시장에서 빠르게 기회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일본 시장은 누가 더 정교하게 신뢰를 설계하고, 사회적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를 묻는 단계에 있습니다.
누구의 마음도 여유가 없는 시대. 디지털 헬스케어가 만드는 변화의 파도는 이제 일본에서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