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사찰요리 수업에 친구 하나를 끌고 다녔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라면 끓이는 게 전부인 친구였는데, 칼질도 곧잘 하는 데다 수업시간에 골똘히 집중하는 표정을 봐서 요리에 금세 흥미를 붙인 듯했다. 함께 수업을 들으며 무려 네 시간 동안 두부 반 모를 만드느라 낑낑댄 적도 있고(두부는 사 먹는 거라는 깊은 교훈을 얻었다), 끓는 기름솥 앞에서 잠시나마 치킨집 알바의 괴로움을 간접 체험하기도 했다. 혼자 배웠으면 심심하고 외롭기도 했을 텐데, 친구가 이렇게 함께 해주니 마음이 든든했다. 같이 고추장도, 간장도 마스터하자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나 이제 사찰요리 안 배우려고."
미래의 고추장과 간장이, 끓는 물에 넣은 소금 한 꼬집처럼 신속하고 고요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요리할 때 즐거운 건 나뿐이었나? 속상한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갑자기 왜?"
이어지는 친구의 대답은, 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려는 설득의 말을 원천 봉쇄했다.
"사찰요리는... 다 똑같은 맛이 나."
그동안 써온 글에서 '사찰요리는 맛있다' '기존에 접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등의 말로 사찰요리를 찬양했지만, 사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사찰요리는 다 '똑같은' 맛이 난다. 시큼해야 할 음식에서 시큼한 맛이 안 나고, 매워야 할 음식에서 매운맛이 안 난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사찰요리에서는 본질적인 맛이 났다. 이 맛을 콕 짚어 무어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떠난 친구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원망했다. 떠나는 이를 위해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 흩뿌려줄 아름다운 아량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니(그럴 꽃 있으면 화전이나 부쳐먹지). 그뒤론 주변의 몇몇 사람이 사찰요리에 대한 궁금증을 내비칠 때마다 배움의 장으로 흔쾌히 초대하지 못했다. 잔뜩 기대하고 온 사람에게 실망만 안겨주면 어떡하나, 똑같은 맛이 난다고 하면 어떡하나 싶어 마음이 괜히 주춤거렸다.
하나의 상태
그러던 어느 날이다. 여느 때처럼 스님이 꼭 하시는 질문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사찰요리의 특징이 뭐지요?"
백번도 넘게 듣고 답한 그 질문 앞에서, 이제는 툭 찌르기만 해도 대답이 자판기 음료처럼 나올 정도였다. 고기를 안 먹어요, 오신채를 안 써요, 제철 식재료를 써요. "고기를 왜 안 먹지요? 오신채가 무엇이고 왜 안 쓰지요? 제철 식재료를 쓰는 이유는 뭐지요? 이 계절에 나는 제철 식재료는 어떤 거지요?" 이어지는 질문에도 막힘없이 흐르는 물! 그날도 평소처럼 쭉 대답했는데, 스님이 웃으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다 맞는 말이긴 한데, 가장 중요한 특징이 빠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특징? 머릿속으로 손가락을 아무리 꼽아봐도 빠뜨린 게 없었다. 내가 그동안 몰랐던 사찰요리의 특징이 있었나?
“사찰요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담백하다는 거예요."
사찰요리가 여느 요리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제철 채소와 과일, 곡류가 주 재료이고,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조미료도 소금, 간장, 후추 정도로 기본적인 것만 사용하니까. 한마디로 복잡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 담백함이 사찰요리의 가장 큰 특징이 될 수 있나?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텁텁해졌는데, 스님이 다시 물으셨다.
"너무 맵거나 달고 시고 짠 걸 먹으면 어떤가요?"
"속이 아파요."
"지나친 맛은 속을 훑고, 몸속의 장기를 칩니다(자극합니다). 그에 비해 담백한 맛은 어떨까요?
"속이 편해요."
"그래요. 담백한 맛은 배꼽에 모여서 몸의 기운을 돌려주는(순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게 바로 사찰음식이에요."
아, 그러니까 사찰음식은 한마디로 몸의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음식이구나. 친구가 푸념했던 '다 똑같은 맛'은, 실은 맛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였던 셈이다. 내 몸이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
사찰요리를 배운다고 하면 주위에서 물어보는 질문이 빤하다. 맛있어요? 무슨 맛이에요? 어려워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담백해요. 가지는 가지맛나고, 호박은 호박맛 나고. 가지에서 가지 맛나게 하고, 호박에서 호박맛나게 하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그럼 왜 배워요?"
"밖에서 먹는 요리는 가지에서 가지맛 안 나고, 호박에서 호박맛 안 나잖아요. 그거 배우려고 가는 거예요."
‘튜닝의 끝은 결국 순정’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자동차 튜닝에 쓰이는 말인데, 고가의 차를 일용품처럼 휙휙 바꾸진 못하니 부품이나 액세서리로 조금씩 튜닝을 시도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찾게 되는 것은 손대지 않은 자동차의 상태라는 뜻이다.
입맛도 비슷하지 않을까? 혀가 아리고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달고 매콤하고 자극적인 걸로 열심히 ‘튜닝’하지만(불닭도 모자라 핵불닭이다), 열렬한 튜닝 끝에는 멀건 흰 쌀 죽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래고 싶은 날이 올 거다. 속 편한 게 싫어 떠난 친구도, 언젠가는 불편한 속을 안고 다시 살금살금 돌아오지 않으려나. 그땐 환영의 의미로 진달래 화전이나 부쳐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