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눈이 펑펑 왔습니다. 이번 겨울엔 눈을 본 일이 드문데,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면 어김없이 시커맸던 하늘색이 조금씩 푸르스름해지는 걸 가만히 눈치채고 있었는데, 이렇게 봄이 다시 오는구나 싶어 마음 한 구석이 괜히 들떴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펑펑 내리는 눈을 보니까 괜히 겨울이 나한테 한마디 하는 거 같더라고요. "어디 벌써부터 봄을 기다려? 나 아직 한창이야!"하고. 그래요, 잠깐 잊었어요. 아직 기세등등한 겨울이네요.
가볍게 쌓인 눈 위에 난 자동차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며 수업을 들으러 가는 아침입니다. 맑은 날에는 누가 지나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는데 눈 내리는 날이면 알고 싶지 않아도 다 알게 돼요. 눈 위에 피어난 것들은 차마 숨길 수가 없으니까. 나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선 자동차는 어디로 갔을까 잠깐 궁금해하며 걸었습니다. 오늘 배울 음식은 메밀전병. 메밀전병이 여름 음식인지, 겨울 음식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계절을 곰곰 되짚어보면, 메밀전병은 늘 코끝이 쌀쌀한 이맘때 배웠던 것 같아요. 뭐 맛있는 건 계절을 관통해 언제나 맛있는 법이니까 그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메밀전병은 무지 간단한 음식 중 하나예요. 메밀가루를 물에 잘 개어 푼 뒤, 반죽을 국자로 동그랗게 떠서 부치고 그 안에 김치나 두부로 만든 소를 넣어 싸 먹으면 되거든요. 멕시코의 부리토와 비슷한 음식인데, 그러고 보면 맛있는 건 계절을 관통할 뿐 아니라 동서양을 관통하는 것 같네요.
사랑의 시작
레시피는 간단하지만, 메밀전병을 구울 때는 팬에서 눈을 떼면 안 됩니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에서,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반죽을 구워내는 일이 생각보단 만만찮거든요. 스님께서 "굽다가 반죽 윗면이 거칠거칠해지면 바로 뒤집어 속을 올리세요."하고 알려주셨어요. 스님이 반죽 굽는걸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이게 되게 사랑하는 거랑 닮은 거예요.
메밀가루는 점성이 없어서 툭툭 끊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어요. 물에 잘 개어 풀면 반죽이 매끄러워 보이는데, 막상 불에 올려 구우면 거칠거칠한 성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잘 모르잖아요. 잘 모르니까 그저 좋아 보이고, 매끄러워 보이는 데 사랑을 시작하면 그제야 그 사람의 성질을 조금씩 알게 돼요. 그런데 사랑을 시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성질이 곧바로 보이는 건 아니거든요. 메밀전병이 잘 구워지려면 팬을 약불에서 충분히 예열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은근한 온도의 유지가 필수예요. 그래야 반죽을 팬에 올렸을 때,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익다가 마침내 매끄러워 보이던 반죽이 거칠거칠한 면을 보여주거든요. 나 사실은 이래! 하고.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짧은 시간에 마음을 집중해서 퍼붓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정성을 들이는 일은 쉽지 않아요. 가만히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따뜻할 수 있다면, 비로소 보일 거예요.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의 진짜 성질. 매끄러워 보이는 줄 알았는데 거칠거칠했구나, 이런 면도 있었구나.
윗면이 거칠거칠해지면 다 익었다는 뜻이니 뒤집어도 된다고 스님이 일러주신 대로, 겉으로 봤던 것과는 다른 누군가의 성질을 비로소 알게 된 우리도 마음을 뒤집어 봅니다. 뒤집은 뒷면에는 구멍이 뽕뽕뽕뽕 나있어요.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부풀다가 터진 공기의 흔적이겠죠. 큰 구멍도 있고, 작은 구멍도 있어요. 눈 위에 난 발자국처럼 작은 하나도 숨길 수가 없네요.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쏟으면 그제야 그 사람의 진짜가 보이고, 그 진짜를 뒤집어서 들여다보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삶이 들여다보일 거예요. 누군가의 뒷면에는 그가 디디고 건너온 시간이, 때로 흔들리고 견뎌온 시간이 눈 위에 난 발자국처럼 작은 하나도 숨기지 못한 채 선명하게 찍혀 있겠겠지요. 실패한 꿈과 후회와 지난 사랑과 농담과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하나도 도망가지 않고, 크고 작은 발자국을 고스란히 품고서 거기 있을겁니다.
구멍이 잔뜩 난 전병 위에 김치나 두부 같은 소를 올려 돌돌 싸면 메밀 전병은 완성입니다. 말을 참 쉬운데, 소를 올려서 돌돌 싸는 것도 처음부터 잘 되진 않아요. 힘을 주면 기껏 잘 부친 전병이 말면서 부스러지고, 소가 너무 많으면 다 튀어나거나 터지고, 소가 너무 적으면 말았을 때 전병이 힘없이 축 늘어지거든요. 거참, 전병 하나 먹기 까다롭다 싶습니다.
사랑의 계속
흔히 '사랑은 운명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게 마치 사랑의 제1법칙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하는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거 아닌 거 같아요. 분홍색을 좋아해서 캠퍼스 안에서 분홍색 셔츠 입은 남자를 발견하곤 단숨에 사랑에 빠진 적도 있고, 세상에서 이 노래를 아는 건 가수와 나 둘 밖에 없을 거라며 혼자 한참 빠져있던 인기 없는 노래를 벨소리로 해놓은 누군가를 만났을 땐 운명인가 싶어 눈을 비볐죠. 사랑 운명론을 예찬할 때는 저 역시 사랑은 그럴싸한 순간에 그럴싸하게 등장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곰곰 되짚어보면 그럴싸한 사랑을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어요.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길가다가 분홍색 옷 입은 남자를 어떻게 사랑해요. 아무리 금사빠라도. 전병 부치는 마음으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이런 면, 저런 면을 들여다보고 뒤집어도 보고-그러다가 진짜 사람 속도 뒤집고-소도 올리고 그러면서 사랑을 한거죠.
그러니 우리는 선택하면 됩니다. 크고 작은 구멍을 잔뜩 품은 누군가의 진짜를 들여다보며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고 누군가를 이해할지,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고 실망할지. 그 위에 소를 올릴지 말지. 팁을 하나 드리자면 전병은 그냥 먹으면 맛없어요, 짭조름한 소가 들어가야 맛있어요. 메밀전병도 처음엔 온도 조절 못해서 반죽이 팬에 쩍쩍 눌어붙고, 전병 모양도 둥그렇지 않고, 말면서 터지고 그럴 거예요. 속이 다 삐져나오기도 하고, 기껏 애써 말아놓은 전병 모양이 참 볼품없기도 하고 그럴 거예요. 그런데 김밥도 예쁘게 썰어 놓은 것보다는 말면서 주워 먹는 꽁다리가 더 맛있잖아요.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오늘 반죽을 부치면서 구멍이 뽕뽕뽕 난 전병 뒷면을 들여다보는데 참 예쁘다는 생각을 잠깐했어요. 내가 사랑하게 될 누군가도 그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