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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킴 Jan 22. 2022

오늘도 새우튀김을 망쳤다

마음의 영점조절

 밴쿠버의 겨울은 레인쿠버라고 부른다. 겨우내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지난여름에는 섭씨 50도까지 올라가는 유례없는 폭염으로 밴쿠버에서만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캐나다 기상관측 역사상 최고 기온이었다. 이번 겨울은 강추위로 인하여 내내 눈이 왔다. 연말 연초, 눈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원래 밴쿠버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아 살기 좋은 동네다. 기상이변, 코로나 바이러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이 지구를 함부로 대한 탓이다. 작용에 반작용이 따르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밴쿠버 사람들은 블랙프라이데이가 끝나면 다가올 크리스마스 시즌을 대비하여 허리띠를 졸라맨다. BC주의 학교는 크리스마스부터 짧은 겨울방학에 들어가고, 대부분의 직장들도 연말 휴가가 시작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월급이 아니라 biweekly라고 하는 격주 급여를 받는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1,2주 급여로 월세를 내고, 3,4주 급여로 생활을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 같은 긴 연휴 앞에는 돈을 아끼고, 따라서 소규모 가게의 매출도 영향을 받는다. 내가 근무하는 스시집도 손님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에는 끼니도 못 챙길 만큼 바쁘지만, 겨울은 비수기다. 그래도 점심시간에는 인근 관공서 직원들의 주문이 꽤 있었는데, 그나마 뚝 끊겼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사무실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래저래 한가해질 수밖에 없는 2021년 밴쿠버의 연말 풍경이다.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처음 스시집 주방에 입성했을 때는 딴생각할 틈이 없었다. 초보 쿡은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도 버겁다. 몇 달이 지나 주방 돌아가는 상황이 눈에 들에 온다 싶었는데, 나태함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쩐지 요 며칠 새우가 잘 튀겨지더라니. 슬슬 일에 적응되어가고 있다며 긴장이 풀리던 차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튀김옷 반죽이 묽으면 새우튀김이 가늘게 길어지고, 되면 뭉툭하며 짧아진다. 초반의 새우튀김은 반죽의 적정 농도에 대한 감각이 없어 짜리 몽땅했다. 물기가 적은 반죽으로 새우를 튀기면 위는 얇고 아래만 퉁퉁해져 손님들은 튀김옷을 떼어내고 먹는다. 균일한 두께의 길쭉한 새우튀김은 쉽지 않았다. 반죽이 조금 묽어졌다 싶은 어느 날, 예쁘게 잘 빠진 새우튀김이 나왔다. 감이 왔다. 한동안은 새우튀김이 괜찮았다. 그 무렵 주방 업무도 할 만 해지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새우튀김 반죽 농도는 갈수록 묽어지고 있었다. 사장님은 점점 가녀려지는 새우튀김을 며칠 동안 지켜보더니, 결국 한마디 하셨다.


“새우튀김 반죽 농도는 기본 중의 기본인데, 아직도 이걸 지적해야 합니까?”


 늘씬한 새우튀김이 눈에 익어서, 어느 정도 두께로 튀겨야 할지 기억나질 않았다. 사장님께 물었더니 한숨을 쉬면서 시범을 보여 주셨는데 예상보다 두께가 있었다. 이미 내 손가락의 촉감은 묽어진 튀김 반죽에 익숙해진 터였다. 반죽이 더 질어야 하는데, 그 농도로 길쭉한 새우튀김을 해 낼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게 리셋되어 버렸다. 몸이 기억하는 일이다. 머리로 이해했다고 바로 결과물이 나오진 않는다. 반죽의 물기를 조절할 때마다 긴가민가 한다. 묽지도 되지도 않을 때까지, 반죽은 묽어지기도 하고 되어지기도 할 것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새우튀김 결과물을 확인한 후, 되다 싶으면 물을 섞고, 묽다 싶으면 튀김가루를 추가하면 된다. 그런데 중간에 반죽 농도를 조절하는 것은 미숙함을 인정하는 기분이 든다. 쓸데없이 에고만 강해서 그렇다. 한 방에 균형을 맞추고 싶은가 보다. 세상에 그런 건 없는데. 영점 조절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감각기관은 자신을 쉽게 속인다. 무디어진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영점을 지나치고 있다.  


 새우튀김뿐 일까. 자연계는 어느 한 곳에 균형이 깨지면 불균형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데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된다. 뭐라도 된 것 마냥 들뜨거나, 괜한 자격지심에 자기 비하로 빠지는 습관 역시 마찬가지다. 들뜸의 높이와 자기 비하의 깊이는 같다. 들뜸이 먼저인지 자기 비하가 먼저인지 알아내는 건 이제 와서 의미가 없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다짐만이 중요하다. 잔잔한 호수와 같은 고요한 마음 상태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조정하는 과정을 쉼 없이 반복해야 한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 새우튀김은 또 망쳤다. 길이도 굵기도 들쭉날쭉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일정하게 가지런한 새우튀김을 척척 완성해 낼지 모르겠다. 순간순간 반죽의 농도를 세심하게 체크하는 수밖에 없다. 

영점 조절은 늘 점검해야 하는, 성가시고 지난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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