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fort zone

타향살이

by 세일러킴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투표가 취소되었다. 멀리 서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소중한 한 표를 꼭 행사하고 싶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20년 3월 30일 자로 캐나다 대사관을 포함한 41개 공관의 재외선거 사무 중지 결정을 내렸다. 해외에 거주 중인 대한민국 국민을 코로나 19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임을 알면서도, 재외국민투표 취소 통보를 받고 나니 대한민국으로부터 벗어나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몇몇 해외 입국자들이 자가 격리 지침을 지키지 않아 물의를 일으켰고, 귀국한 해외 교민이나 유학생들의 코로나 19 확진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 내가 살던 동네는 그동안 코로나 청정지역이었는데, 지난주에 미국에서 온 귀국자가 확진 판정을 받게 되면서 지역사회가 난리가 났다. 한국 집에는 기저질환이 있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해외 입국자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저마다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사연은 다를 것이다. 우리 가족의 경우는 남편이 밴쿠버에 일자리가 생기게 되면서 예정에 없던 해외이주를 하게 되었지만, 막연하게나마 이민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의료선진국 대한민국의 품격은 높아졌다. 하필 이런 시기에 캐나다로 온 것이 과연 잘 한 결정일까 곱씹어 본다. 코로나 19 이후 인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는 상당 기간, 어쩌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담화가 무겁게 다가온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날들 속에서, 꿈틀거리는 불안감과 모국을 향한 그리움은 일반적인 향수병과는 결이 다른 것 같다.


고국을 떠나는 것의 의미는 비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었다. 비자발급서류 중에 ‘범죄경력 회보서’가 있다. 캐나다 정부는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시 ‘범죄경력 회보서’를 요구하는데, 문제는 캐나다에서 요청하는 서류가 한국에서는 발급 불가인 ‘실효된 형포함-범죄경력 회보서’라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가까운 경찰서에서 발행하는 ‘비자 제출용-범죄경력 회보서’로는 캐나다 정부에서 비자를 발급 해 주지 않고, ‘실효된 형 포함-범죄경력 회보서’는 본인 열람 이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두 나라 정부의 방침이 충돌되고 있다.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는 별생각 없이 집 근처 경찰서에 갔다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실정법을 따라야 합니다.’라는 훈계를 듣게 되었다. 다른 경찰서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라 정부에서 무리하게 요청한 서류를 우리 정부가 발급해줄 의무는 없다는 것이 이해되었고, 앞으로 남의 나라에 살면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겠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최근 밴쿠버 한인사회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유학생들의 학비 환불이다. 코로나 19가 심각해지자 캐나다 교육부는 교실수업을 기약 없이 연기하였고, 밴쿠버 교육청은 지침에 따라 온라인 개학을 하였다. 온라인 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의사 표시를 한 국제학생들에 대하여 각 교육청별로 금번 학기 등록금 환불 불가는 물론, 6개월 전에 미리 납부한 9월 신학기 학비도 전액 환불 불가 방침이 통보되고 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있고, 각각의 의견에 시비를 가리려는 것은 아니다. 당황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보니, 타국 살이 중에 난처한 상황에 처하면 국가라는 울타리가 절실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온 세상이 역병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이때, 대한민국이라는 comfort zone을 떠나 도움 청할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서글퍼진다.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가 바닥이 났다. 요리도 못하는 처지에 앞으로 어떻게 해 먹고살아야 하나 막막했지만, 가족들의 삼시 세 끼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마냥 자기 연민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오이소박이는 나 같은 초짜도 무난하게 담글 수 있다고 하여 동네 마트로 오이를 사러 갔다. 팔뚝만 한 길이의 오이가 1개에 0.99달러였다. 연습 삼아 3개만 구입한 후, 똥손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백종원님 레시피를 참조하여 일단 도전했다.

유튜브를 보며 십자 칼집 내기를 시도했다. 친정엄마는 힘 안 들이고 쓱쓱 자르시던데, 직접 해보니 모양이 들쭉날쭉 제각각이었다. 결국 십자 칼집 내기는 포기하고 오이 한 개를 5등분 하여 한입 크기로 잘랐다. 오이를 소금물에 절이려니 잘 절여진 오이 맛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친정엄마’ 품 안에서 편하게만 살았음을 절감했다. 이젠 'comfort zone'에서 '나와야 한다'라고 중얼거리며, 양파, 마늘, 생강, 멸치액젓, 새우젓, 고춧가루 등 양념 재료를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뭐든 많이 넣으면 맛있지 않을까 싶어 재료를 양껏 넣었다.

결과는... 썼다. 범인은 양파. 남편이 양파 냄새를 맡아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매운 냄새가 이렇게 풀풀 나는데 몰랐냐고. 한국에서 공수해온 귀한 고춧가루가 아까워서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사과도 갈아 넣고 설탕도 왕창 부었지만 오이소박이는 부활하지 못했다. 속상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나를 속속들이 잘 아는 25년 지기는 딱 한마디를 남겼다.

“요리할 때는 다른 생각 말고 딱 요리만 해야 해.”


선방에서 스님들이 수행을 할 때, 정진을 감독하는 스승이 졸고 있는 제자의 어깨를 죽비로 내려칠 때가 있다. ‘딱!’하는 죽비 소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곳’에서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 친구의 한마디가 죽비 소리처럼 들렸다. 이런저런 생각에 휩쓸려서 오이소박이에 집중하지 못한 내 상태를 귀신같이 알아챈 친구가 고마웠다.


‘comfort zone’이란 프레임을 만든 것은 나다. ‘가족, 이웃, 내 나라’라는 안전지대 안에서 보다 평온할 것 같지만, 애초에 정해진 ‘comfort zone’은 없었다. 나는 ‘남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현재 주어진 조건에 맞게 지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곳’에 있다면, 그곳이 언제나 나의 ‘comfort zone’이다.

스스로 만든 망상에 사로잡혀 ‘지금, 여기’를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기왕의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혼자서 망할 오이소박이를 열심히 먹어 치운다.


입에 쓴 오이소박이가 몸에라도 좋았으면.


해치워야 할 오이소박이가 아직도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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