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첫 우리 집
토요일 이른 아침, 굉음에 깼다. 집주인 아들인 토니(가명)는 한 달 넘게 공사 중인데, 오늘부터는 목재를 그라인더로 가는 것 같다. 소음은 견디겠는데, 문제는 분진이었다. 콧속이 간지럽고 목이 칼칼하다 싶긴 했는데, 공사 먼지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부부가 쌍으로 둔하다.) 식탁 위에 소복하게 쌓인 먼지를 발견 한 순간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즉시 집주인에게 상황을 알리는 문자를 발송했고, 나는 온 집안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이들은 눈이 따갑고 기침이 난다고 야단이었다. 토니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면서, 지금이라도 방수포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집 안은 뿌연 공사 먼지, 밖은 코로나 19 바이러스... 우리 가족은 어디로 가야 할까?
밴쿠버 이주에 앞서, 우선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캐나다라고 하니, 빨강머리 앤이 살 것 같은 예쁜 이층 집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공공정책을 위한 프런티어 센터(frontier centre for public policy)의 발표에 따르면, 밴쿠버는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최악의 주택 여유도를 가진 도시다. 최근 십 년간 밴쿠버의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하였는데, 2016년부터는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외국인 취득세를 도입하였지만 부동산 가격 거품은 여전하다. (2020.1.24. 자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 참조 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7967704)
밴쿠버의 주거형태는 크게 콘도, 타운하우스, 단독주택으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파트를 이곳에서는 콘도라고 하는데, 콘도는 4층 이내의 저층과 20층 이상 높이의 고층 콘도로 구별된다. 콘도는 방 2개, 욕실 2개, 거실 1개의 형태가 많다.
타운하우스는 2층이나 3층으로 된 공동주택인데, 집들이 벽과 벽으로 이어진 구조다. 콘도가 공간을 가로로 나눈다면 타운 하우스는 세로로 집과 집 사이의 경계를 나눈다. (콘도에 층간소음이 있다면, 타운하우스는 측간 소음이 있다는 농담도 있다.)
단독주택은 목조건물이 흔하고, 대게 아래층을 분리하여 세를 놓는다. 이 렌트하우스를 베이스먼트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반지하방과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나무집이라 윗집에서 생활하는 소리는 들리게 마련이지만, 1층 가까이에 있고 창문도 커서 볕이 잘 들어온다.
밴쿠버에 있는 남편과 한국에 있는 나는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 수시로 영상통화를 하며 논의했다. 처음에는 편리한 콘도를 고려하였으나, 살림살이를 갖추려니 초기 정착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앞으로 몇 년간 최대한 검소하게 지내야 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웬만한 세간이 마련되어 있는 베이스먼트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남편은 내내 발품을 팔아가며 우리가 살 집을 구했다. 집주인은 장성한 남매가 있는 백인 부부인데, 친절하고 다정한 분들이다. 우리 집이 위치한 동네는 단독주택이 올망졸망 모여 있어 조용하고 아기자기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다닐 초등학교가 바로 앞이라 차가 없는 우리 가족에게는 안성맞춤.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캐나다의 우리 집’ 첫인상은 아담하고 아늑했다. 아이들도 포근해 보이는 집이라고 만족하면서, 자가 격리 기간 동안에도 갑갑해하지 않았다.
사람 마음, 간사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하던가. 한 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서민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전세는 물론, 월세에서도 살았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모로 누워야 겨우 발 뻗고 잘 수 있는 (말만) 원룸에서 혼자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일생을 아파트에서 살았기에 ‘한 지붕 세 가족’의 경험은 없다. (아~ 옛날 사람!) 올해 대학을 졸업한 토니와, 대학생인 집주인 딸까지 코로나 19로 인해 집으로 돌아오자 인구밀도는 급격히 높아졌고, 타인과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게 점점 버거워졌다.
집주인 부부는 아래층을 반으로 나눠 오른편은 우리에게 세를 주고, 왼편은 창고로 사용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토니가 옆 칸의 잡동사니를 주섬주섬 치우더니, 공사를 개시했다. 코로나 19 이후, 대학 졸업식도 취소되었다는 토니는 창고를 자신의 독립공간으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코로나 19 사태로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류가 달고나 커피를 비롯하여 온갖 잉여력을 뽐내는 가운데, DIY 집 고치기 프로젝트라니. 북미 사람들이 가라지(garage)에서 뚝딱거리는 것을 좋아한다더니, 이것이 빌 게이츠가 언급한 가라지의 위력인가 보다.
셀프 리모델링이다 보니, 공사는 대중이 없었다. 토니는 내킬 때마다 음악을 틀어 놓고 공사를 재개했고, 나와 남편은 ‘오늘도 토니는 취미 생활 중’ 이라며 웃었다. 우리 집과 옆 공간은 나무판자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공사 소리는 물론, 토니의 흥얼거리는 노래까지 들렸다. 무던한 남편은 그런가 보다 했지만, 나의 스트레스 지수는 슬슬 올라갔다. 여전히 집주인 부부는 상냥하고, 토니는 유쾌하게 인사했다. 그러던 차에, 우리 집이 공사 먼지로 뒤덮인 것이다. 한국에서 만성 비염으로 고생했던 두 아이가 캐나다의 맑은 공기 덕분에 나아지고 있었는데, 비염이 다시 심해질까 봐 덜컥 걱정이 되었다.
남편은 예민해진 나에게, 이 참에 주먹밥을 준비해서 공원으로 소풍 가자고 권유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긴 하지만, 코로나 블루 극복 차원에서 2m 거리두기 산책과 가까운 공원 방문은 가능했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끼리만 가능하다.)
집에서 뒹굴 거리고 싶다며 징징거리는 애들을 데리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우리 집인데 왜 우리가 나가야 하냐고 훌쩍이는 둘째를 달래려니, 나도 같이 울고 싶어 졌다. 급하게 만든 주먹밥과 대충 들고 나온 과일 몇 가지였지만 캐나다에 도착해서 첫 가족 소풍은 기분 전환이 되었다. 어느새 벚꽃이 지는 계절이었다. 띄엄띄엄 앉아 휴식을 즐기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괜히 긴장하고 과하게 반응했구나 싶었다.
평생 아파트에 살아온 나에게 ‘이웃사촌’은 없다. 개인의 익명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아파트에서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들은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데 때로는 성가시게 하는 ‘타자’였다. 한 아파트에 십 년 이상 살았지만 이웃과는 엘리베이터에서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고, 상식선에서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고 여겼던 것 같다.
“당신에게 관심 갖지 않을 테니, 그쪽도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마세요.”
누군가 심리적 경계에 다가만 와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었다. 한마디로 ‘더불어 사는 능력’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더불어 사는 능력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개발된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완전하게 홀로 독립적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자립은 '너와 내가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고 조화롭게 살아갈 때 가능하다. 코로나 19 사태만 봐도 온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문제의 본질은 ‘토니의 실수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 어울려 사는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내 마인드였다. 만약 단짝 친구가 깜빡하고 공사 먼지를 날렸다면 어땠을까? 다음부턴 까먹지 말고 미리 챙기라고 웃고 말았을 것이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로 선을 그은 것은 나였다. 토니네 식구들은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 넓은 캐나다 땅에서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이웃이다.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데, 이보다 더 가까울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니, 밖에 내놓은 쓰레기통이 정리되어 있다. 토니가 치운 것 같다. 실수를 만회해 보려는 토니의 마음이 따뜻하다. 오며 가며 토니랑 마주치게 되면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 봐야겠다. 멋진 집을 기대하고 있다는 덕담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