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정 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친구 사귀기

by 세일러킴

객원으로 오랫동안 참여했던 신문사 편집장님에게서 카톡을 주셨다. 창간 15주년 특집호 기사 일환으로 기사가 나간 후 형편이 나아진 가게가 있으면 추천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지역의 크고 작은 소식을 취재하다 보면 각별한 인연이 생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문구사 사장님도 그중 한 분이다. 은사님 댁 가게를 물려받은 사장님은 암 투병 중에도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편집장님의 주문을 듣자마자 홀로 문구점을 운영하고 계실 사모님이 떠올랐다. 돌아가신 사장님께서 인터뷰를 좋아하셨으니, 격려 차원의 후속 기사는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번 기사 방향은 소개된 후 대박 난 가게예요.”


아차! 내 생각과 기분에 사로잡혀서, 상대의 요구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편집장님이 참고할만한 가게를 안내해드렸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상대방 의도를 파악하는 것보다 자동으로 떠오르는 단상에 몰입하는'답정너' 같은 내 모습을 반성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질문과 동떨어졌다면 불필요한 군더더기다. 이렇게 사회성이 떨어지는데, 그동안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어 온 걸까?




친구는 사귀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직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됐고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때문에 집콕 중이라고 대답한 후, 스스로에게 물었다. 코로나 19가 아니었다 해도, 사람 만날 의향은 있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백아연의 ‘쏘쏘’가 재생됐다.


감을 잃어가 점점

사랑은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기억도 잘 안 나


그러게.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거였더라.


어린 시절, 3월이 싫었다. 새 교실에서 새 담임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를 만나야 하는 것은 숨 막히는 공포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부끄러움이 많고 내성적인 것도 아니다. 누가 봐도 외향적이다. 사람 안에는 여러 모습이 공존하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나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낯가림이 심한 모순된 사람이다. 내 낯가림은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뒤범벅된 에고의 방어막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내 생각에 갇혀서 타인과 소통을 놓치고, 당황한 상대의 반응을 나에 대한 거절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하게 발생되는 조정의 과정을 견딜 만큼 멘탈이 건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괜히 움츠려 들거나, 환심을 사려고 과하게 들떴던 것 같다.


KakaoTalk_20200430_055932221.jpg


KakaoTalk_20200430_060010926.jpg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스케이트보드와 자전거 타기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밴쿠버의 낯선 주택가에서 삼시 세 끼를 찍고 있자니, 무인도에 표류된 로빈슨 크루소가 된 것 같다. 종일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딸들도 고립생활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외출을 귀찮아하는 애들 유인책으로 첫째에게는 스케이트보드, 둘째에게는 자전거를 사줬더니 다행히 좋아라 한다. 집 근처의 텅 빈 학교 주차장에서 딸들이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을 때 한 어린 소년이 말을 걸었다. 첫째는 못 들은 척 도망을 쳤고, 둘째는 몇 마디를 나눈 후 나에게 달려왔다.


“엄마, 쟤가 나에게 ‘hi!’라고 해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제인 아줌마가 말 걸 때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벌벌 떠는지 이제 이해가 되더라고!”


그래, 집주인 제인(가명)과 마주칠 때마다 긴장하는 것을 이미 눈치챘단 말이지. 영어도 골치 아프지만, 친하지도 않은 서양사람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이 나라 사람들은 지나가다 눈빛을 교환하며 "Hello!", 혹은 "hi!"하고 인사를 건넨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이면 몸을 피하는데, 이럴 때도 환하게 웃으며 "thank you!"라고 한다. 심지어 손을 흔들어 주는 분들도 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일부러 눈길을 피했다. 특히 난감할 때는 저 쪽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동양인을 볼 때다. "hi!"라고 하기에도, "안녕하세요!"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긴 피차일반. 그럴 때는 못 본 척하거나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까지 이렇게 회피하며 살 수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래, 쓸데없는 아집으로부터 벗어나 편하게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 가보자.


애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 멀리 한국인으로 보이는 가족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친구 사귀기 도전이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안면근육을 모두 이용하여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분들이시죠?”

“어머, 이 동네에 한국 가족이 살고 있었네요? 반가워요!”


마침 이 집 자녀들은 우리 집 아이들이 다니게 될 학교 학생들이었다.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건네주신 한국인 부부께 감사인사를 드리며 헤어졌다. 조금 전 일이 꿈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별 일 아닌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어려웠을까. 내친김에 조금 더 용기를 냈다. 조만간 만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회신이 왔다. 며칠 후, 근처 공원에서 잠깐 만나 아이들 학교생활에 관한 여러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 19는 여전하고 고립무원 처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마음만 있다면 물리적 거리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사람들과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교제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만남이란 그때그때 다른 건데. 실체 없는 해답을 찾아 엉뚱한 곳에서 헤맸다.


나에겐 사람과 저절로 친해지는 만능 치트키는 없다. 한때는 외모, 학력, 직업, 재능, 지능, 재산 등의 조건이 좀 더 좋았더라면 저절로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처음 방문한 관공서에서도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집 앞에서 쓰레기통을 정리하는데 한국 여성분이 인사를 건넸다. 얼마 전쯤부터 이 근처에서 한국음식 냄새가 나서, 내내 궁금해하던 차였다고 했다. 애써 말을 걸어 주셨는데, 나쁜 버릇이 또 나오고 말았다. '한국음식 냄새'란 단어를 듣자마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조리를 할 때마다 주인집에 민폐가 될까 봐 환풍기 돌리기와 환기에 신경 썼는데, 열린 창문으로 음식 냄새가 퍼졌던 모양이다. 당황한 나머지 얼버무리며 집 안으로 황급히 들어오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한국음식 냄새'란 말은 어색함을 깨기 위한 단순한 대화 소재였을 텐데. 사람 사귀는 것이 두려운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내 생각과 기분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마음 읽기에 집중해봐야겠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니.


다음번에 그분을 만나면 무조건 먼저 아는 척을 해야겠다.

만남에도 연습이 필요하니까.



이전 06화한 지붕 두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