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며 던져지는 답이 없는 숙제에 대한 난처함
인생은 많은 숙제를 준다.
풀었다 생각하고 돌아서면 어김없이 오답으로 체크되어진 답안지를 돌려받는다. 돌아온 답안지를 안고 고민에 빠져 있다 보면 더 많은 숙제가 차곡차곡 쌓여 뒷덜미를 지긋이 내려 누른다. 그럴 때면 깊은 한숨과 함께 차가운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삶은 항상 그러하였다. 어릴 적 100원을 갈구하며 부모님을 바라보던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내 세상이 될 거라 믿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하고자 하는 일에 거침이 없으며 고민보다는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믿으며 어른이 되기 위해 참으며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 만난 숙제는 ‘대학’이었다.
대학이란 문턱을 넘으면 어른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생각했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믿었고, 어른이 되면 세상에 대한 지분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철하다 못해 비정함까지 흘렀다. 청춘 하이틴물이라 믿었던 대학생활은 뼈 속 깊이 생활 밀착형 다큐로 다가왔고 그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도 아닌 어른도 아닌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존재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직 다 풀지 못한 문제 사이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다시 받아 든 숙제는 ‘직장’이었다.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도전이 아니라 빽빽하고 촘촘한 틈이 없는 사회에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 그 속에 ‘나의 자리’를만들까라는 고민뿐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꿈은 현실과의 커다란 괴리로 인해 사치로 분류되었고,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리스크가 적은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 이성적인 어른이 내리는 판단이라 믿었다. 그렇게 직장인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스스로 돈을 벌고 소비를 하며 사회의 하나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은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승화되었다. 한때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그들을 사회의 부품 혹은 걸어 다니는 좀비쯤으로 여기며 동정의 시선을 보낸 적이 있었으나, 현실은 동정의 시선이 동경의 시선으로 바꾸어 놓는데 오랜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슈트 차림의 직장인이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고정되며 마음 한켠에 아릿함을 느껴졌었다. 이 숙제를 풀면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이 고민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리라.
그렇게 원하던 직장인이 되었다.
정답이라 믿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매일 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 나는 점점 흐려지고 나의 흔적은 나의 인생 위에서 서서히 지워져 갔다. 어디에서도 어른이 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어느 순간 스스로의 존재 조차 사그라져 가고 있었다. 친구들과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며 신세한탄을 해도 결과는 다들 그렇게 산다는, 이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며 참고 버티자는 결론이 돌아왔다. 결국 답답함에 이직이라는 선택지를 집어 들었다. 수용소 같이 느껴졌던 공단을 벗어나면 달라질 수도 있다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서울 강남의 중심 테헤란로로 직장을 옮겨 보았지만, 달라질 수도 있을 거란 희망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장소만 바뀌었지 그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며 절망으로 바뀌어 버렸다. 절망의 늪이란 것을 알았지만, 매달 계좌로 들어오는 돈의 달콤함을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았다.
그 뒤로도 끝없는 숙제가 던져졌다.
결혼, 승진, 부모님의 건강, 상사와 후배들과의 관계, 아이, 내 집 마련…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숙제에 허덕이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모르는 사람이 나를 처다 보고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그를 관찰해 본다. 눈꼬리는 사납게 올라가 있고 입은 굳게 닫혀 있으며, 눈은 차갑게 식어 있고, 무언가 불만과 짜증이 가득한 모습이다. 이런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어릴적 내가 상상하던 어른의 모습이 맞는 것인가? 어른이 되어가는 통과의례로 믿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언제쯤이면 모든 숙제에 명쾌한 해답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수많은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릴적에는 40세의 나는 멋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고민보다는 행복에 가까이에 있고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성숙한 사고를 가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고, 하루하루 고뇌에 휩싸여 있다. 여유로움보다는 치열함에 가깝고 성숙하기 보다는 옹졸함이 더 크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하고 아이와 어른의 사이,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든 20살 때 그때 그 존재로 아직도 남아 있다.
20대 초에 받은 숙제를 20년 가까이 풀지 못하고 아직 잡고 있다.
풀었다 생각하고 돌아서면 어김없이 오답이 되어 돌아온다. 돌아온 숙제는 분명 같은 문제이지만 전혀 다른 숙제가 되어 있다. 과연 이 숙제를 죽기 전까지 풀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니, 이젠 ‘숙제를 과연 죽기 전까지 푸는 사람이 있을까?’가 의문이다.
어쩌면 이 숙제는 답이 없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딘가에는 답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 답이 언젠가는 나의 앞에 나타나 주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인생이 던져놓은 숙제를 풀기 위해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