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이미 결정되어진 선택에 대해여.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 여행을 다니는 것에 대해 환상을 가진다. 예를 들어 일상이 여행이고 매일이 즐거우며 고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행복의 나라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른다. 초기의 여행 시간인 한두 달이 지나고 나서 여행이 일상이 되는 순간 일상에서 겪었던 고민들이 슬며 시 고개를 들어 일상의 생활에서 처럼 괴롭히기 시작한다. 어쩌면 더 많은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일상은 틀과 흐름이 정해져 있기에, 그 흐름에 몸을 맡겨두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인생의 커다란 선택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일상의 자잘한 선택은 일상의 고단함 속에 그 형태를 달리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러하였다. 하지만, 여행은 달랐다. 하루하루가 고민과 선택이었다. 일주일에 몇 번을 숙소를 옮겨야 했고, 매일매일 일정을 정해야 했으며, 심지어 식단은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정해야 했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결정 중 하나가 점심식사 메뉴를 고르는 것이라는 우스게 소리가 있는데, 그것을 매일 하루에 3번을 정해야 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잘 알지 못하는 메뉴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행 중 식단의 선택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잘 못 선택하면 돈과 시간과 하루 종일의 기분까지 망쳐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성비가 좋은 숙소를 고르는 것 역시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여행을 다녀 본 사람들은 동감할 것이다. 숙소가 여행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지. 특히 대부분 처음 새롭게 도착한 여행지의 첫인상이 숙소에서 결정되기에 숙소가 별로 인곳은 빨리 그 도시를 떠나고 싶게 만들고, 숙소가 마음에 드는 곳은 그 도시를 떠나는 것이 아쉬워진다. 이렇게 장기 여행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영향 아래에 벗어나기가 힘들다. 물론 예산이 충분하다면, 돈걱정이 없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수입이 없이 정해진 예산안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여행하는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심지어 예정되었던 예산보다 적게 지출한다고 하여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갔을 때의 불확실한 삶은 지출을 더욱 졸라 메게 만든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모든 결정을 하기 전에 꼭 이것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서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여행 초창기에는 남들이 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뭐든지 다 해보려고 노력했다. 또 언제 다시 여기로 오겠냐는 합리화와 함께.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여행 방식에 지쳐 가며 성향에 맞는 여행 스타일을 찾기를 원했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천천히 느릿느릿한 여행이라는 여행 스타일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둘의 게으른 성격과 관광지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하는 마이너적 성향이 적극 반영된 결과였다. 그렇게 타인의 여행을 참고하기보다는 우리의 여행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모두가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라도 방문하지 않은 곳이 정말 많았다. 포카라를 방문해서 2주간 트렉킹을 하지 않고 마을에서 놀기만 하고, 두오모를 가서 올라가지 않고 밑에서 구경만 하다 돌아가기도 했다. 이유를 따지자면 뭐 굳이 올라갈 이유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의문들이 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산부인과 검사들이었다. 아내가 임신을 해서 산부인과를 정기로 가면 항상 많은 검사를 요구한다. 정밀초음파와 기형검사 및 기타 알 수 없는 수많은 검사들을 당사자들의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를 한다. 통보 이후에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병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강요와 협박 사이 비슷한 것을 부모들에게 던진다. 모두가 하는 검사에 유별나게 반응하지 말라는 식이다.
처음엔 우리가 이상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검사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를 하지 못하고, 다들 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하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고 온 지인들은 유별난 한국 산부인과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며, 유럽은 초음파도 하지 않고 배 둘레만 재는 곳도 많다며 한국 산부인과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우스운 것이 의사 당사자들은 대부분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기가 장애가 있는 것이 확인되어 안 낳을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검사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검사를 해서 장애를 발견해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미리 알면 걱정만 많아져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전의 나도 그러하였던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니 큰 의문을 가지지 않고 따라 했고, 남들이 맞다고 이야기하면 당연히 맞는 것이겠거니 하고 동조했다. 어떤 한 일에 대해 비판과 고민을 하기보다는 골치 아픈 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려했고,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했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고민하기 보다는 대세를 따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한 것은 타인과는 차별되고 독특한 무언가를 항상 갈망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취향에 따른 선택보다는 유행에 민감해지고 유행을 따라가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유행에 뒤쳐지면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을 했던 것이다. 군중심리에 의해 만들어진 대중에 의한 유행을 기반으로 한 취향이 나의 것인 것처럼 착각하며 타인에 의한 시선을 통해 투영된 시선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난날이었다.
시간이 지나 타인의 시선에 예전보다 조금은 자유로워진 지금, 선택에 앞서 필요성과 스스로의 당위성에 대해 고민을 한다. 왜 이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의 생각에 오류와 자가당착은 없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아직은 가 야한 길이 멀고 생각의 깊이도 앏지만 그렇게 조금씩 나 다움을 찾고 불혹을 앞둔 이제야 조금씩 스스로의 자아를 형성해 갈려고 노력 중이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어떠한 선택을 할 때,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봤으면 좋겠다. 진정 스스로의 선택인지 아니면 그것이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선택인지를 말이다. 언론에, 대중에 호도되지 않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말이다. 특히 요즘같이 어지러운 정세에는 정말 필요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