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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Oct 07. 2018

'참한 여자'라는 말.

과연 칭찬일까

나는 어릴적부터 “참하게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묘반항심이 들곤 했다. 딱히 설명할 순 없었지만 “참하다”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어린 나에게 언제나 거부감을 일으켰다. 참하다는 데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딴에는 칭찬해 주려고 한 말이 아니던가?


참하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성질이 찬찬하고 얌전하다는 뜻이다. 의미만 놓고 볼 때는 딱히 트집잡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어떤 단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상황이나 단어의 의미가 상징하는 을 생각해 보면, 비단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단어를 논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단어가 사용되는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가늠한 뒤라야 그 말의 속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단어는 사람처럼 사회적인 존재다. 단어가 쓰이는 사회를 들여다 보아야 그 말의 기능과 상징성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이 표현을 “여자”에게만 쓴다. “참한 여자”라는 표현에는 우 사회가 기대하고 바라는 이상적인 여자의 덕목,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여자”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내가 참하다는 단어를 들을 때 심기가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을 억제하고 소통의 일방적인 방향을 강요하는 무언의 메세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칭찬이란 게 고작 순종적인 태도라. 


우리가 속한 사회는 여자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가 지나치게 똑똑한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야심차고 당당한 여자를 부담스러워 한다. 활발하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거나,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거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여자들은 “기가 세다”는 표현으로 대신 정의된다.


특히 신부감을 몰색할 때 어른들이 이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참한 아가씨 없느냐, 참하면 됐다, 등등. 그 말인 즉슨, 지나치게 똑똑하지 않고 (혹은 그렇더라도 겉으로 티를 내면  안되고), 시키는 일을 군말없이 잘 하며,항상 상냥하게 남의 말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남이 상냥해주길 바라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허나 이런 마음에는,‘자신의 권위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다루기 쉬운 사람’을 바라는 이면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어른들을 잘 섬기며 평생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


아내와 엄마라는 페르소나는 자기의 본모습보다 주위 사람들의 요구를 포용하는 역할과 의무를 은연중에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나’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남과도 진솔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여기는 우리 나라의 서열 문화 - 단 한살만 많아도 이름이 아닌 오빠, 형, 누나, 언니, 선배 라는 호칭으로 불러야하고, 학교나 직장, 각종 모임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나이에 따라 서열이 정리되는 - 에서는, 참하다는 말이 단지 여자를 칭찬하기 위한 순수한 말로 느껴지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 말에는 여자는 참해야 좋고, 참하지않은 여자는 피곤하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참하지 않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며 당찰 때, 우리는 종종 당황한다. 신변이 위협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렵거나, 혹은 부럽거나. 그렇게 당당한 여자들이 주위에 드물기도 하거니와, 가부장적 환경에서 자란 우리가 보아 온 여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니까.


'당당하다'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빳빳이 든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정도로, 우리는 당당하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인성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물질의 풍요와 기술의 혁신만을 누리고 자란 세대인 것이다.


당당함이란, 남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이다. 나 자신에게 당당하려면 우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속이고 자기 진심을 외면한다. 분명 잘못한 걸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에게 당당하다는 것은, 잘못과 실수를 모두 인정하며 마음의 음지 또한 내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있는 태도이다.


당당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며, 이것을 자존감이라 부른다. 자존감이 초석이 된 관계에서는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인 소통과 배려가 가능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비로소 결혼을 할 준비가 된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스스로 오롯이 자신을 돌보고 아낄 줄 알아야 남도 존중하게 된다. '나만 소중해’ 가 이기심이라면, ‘내가 소중한만큼 너도 소중해’ 가 자존감이다.


당당한 사람은 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 자신을 파괴하지 않으며, 남을 위해 참해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참한 여자가 되는것보다 당당하면서도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세상 사람들아, 여자가 참하기를 바라지 마라. 그 누구도 당신을 위해 참해질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나이면 족하다. 그리고 기가 세다는 말을  '밝다, 명랑하다, 의지가 강하다, 재주 다, 사교적이다', 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이런 단어들에는 어떤 편견도 도사리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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