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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ventud Dec 29. 2016

아빠의 퇴직, 딸의 퇴사

스페인 네르하, 프리힐리아나

아빠의 퇴직


아빠는 대부분의 아버지 세대가 그러하듯 한 직장에서 32년을 하루같이 출퇴근하셨다.

퇴직을 몇 년 앞두고 어느 날 저녁, 이제는 사회인이 된 딸과 아빠는 식탁에 마주 앉아 맥주를 나눠 마셨다. 

한잔 두 잔 기울이며 평소에 듣지 못했던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빠도 오랜만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감회에 젖는 듯하시더니 뜻밖의 한마디를 꺼내셨다.


네르하로 향하는 길


"..... 사실 지금 하는 일이 아빠 성향에는 잘 맞지 않았어"


내 또래 혹은 주변에 아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자기와 딱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과연 전체의 몇 프로나 될까. 그런데 아빠의 한마디는 적잖이 나를 당황케 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일을 하셨고, 몇십 년을 넘게 그 일을 하시고 계신 분이셨다.  예를 들어 아빠가 소방관이시라고 하면, 내게는 아빠가 소방관이고, 소방관은 즉, 아빠였다. 당연히 아빠도 호불호가 있고 개인의 취향이 있는 한 사람임에도 적어도 내게는 아빠는 당연히 그 일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네르하의 해질녘



그날 저녁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껏 지금 하는 일을 한 지 5년도 되지 않아 더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내 행복을 찾아 나섰는데, 아빠는 (우리네 아빠들이 그러하듯) 맞지 않아도 맞춰나가려 부단히 노력하셨다. 매달 생활비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며 무섭게 먹어치우며, 입히고 가르쳐야 하는 나와 오빠가 있었기에 맞고 안 맞고를 따질만한 사치는 부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32년이 3년 2개월처럼 흘러갔다.


아빠는 감사하게도 너무나 자랑스러운 분이셨다. 아빠의 직급이 높고 낮고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삶에 감사했다. 사회에 나와보니 그 울타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를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아빠의 퇴직을 앞두고 오빠의 제안으로 우리는 1년 만기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퇴임식에 몰아쳐 올 공허와 혼란의 공백을 가족의 사랑과 존경으로 채워드리고 싶었다. 아빠께 퇴직기념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 여쭤봤다. 역시 내 예상대로 아빠는 가족 식사를 원하셨다. 바다가 보이는 한정식집을 예약했다. 그리고 아빠의 캐리커쳐가 들어간 감사패를 제작했다. 그동안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는 글을 함께 새겼다. 



작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퇴임 기념 모임이었기에 오빠와 내가 나눠 읽을 사회 대본도 준비했다. 각지에서 오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고 맛있는 요리가 준비됐다. 감사패는 (아빠께는 아버지뻘인) 큰아버지께 수여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큰아버지께서 감사패를 읽어 내려 가시자 고모와 엄마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몰래 손수건을 꺼내 닦으셨다. 아빠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몰래 준비한 꽃도 꺼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빠가 마음 놓고 일에 전념하실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빈틈없는 내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꽃을 받아 든 엄마의 얼굴에도 쑥스러운 웃음이 퍼졌다. 




가족들이 모두 잠에 든 늦은 밤, 올빼미 같은 나는 잠이 오질 않아 거실로 나왔다. 뜻밖에 아빠가 거실 수납장에 감사패를 올려두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다음날 아침, 아빠는 마지막으로 정복을 갖춰 입으셨다. 엄마와 아빠는 평소보다 말이 없으셨다. 아빠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고, 현관문을 나서는 뒷모습까지 근사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아침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딸의 퇴사


퇴사 후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프리힐리아나



이곳저곳 출입구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사람들, 띡띡띡 소리마저 바쁜 교통카드 찍히는 소리. 나 역시 불과 얼마 전까지 그 대열에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 그 대열의 수백 명의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매일 생각했다. '이게 맞는 길인가' '나는 어디로 얼마만큼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떠밀려 내려가고 있다는 말이 맞겠다. 그 대열에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기 조차도 쉽지 않았다. 바쁜 사람들 눈에는 걸리적거리는 멍 때리고 있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기에 서둘러 알아서 떠밀려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날, 그 대열을 벗어났다. 어차피 똑같은 시간을 흘려보낼 것이라면 지금보다는 의미 있게 흘려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그 대열을, 그 큰 강물의 흐름을 강물 밖에서 아직은 젖은 몸으로 지켜본다. '나 괜찮겠지..' 불안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매일매일을 성장 없이 그 자리를 지켰던 시간들 보다는 더 자주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잘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 시간들이 쌓여 물기를 털어내고 한결 가벼운 몸으로 일어서리라고 다짐한다.   -퇴사 후 어느 날 아침-





내 선택은 오로지 개인의 취향, 개인의 인생관에 의한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을 준비하면서 퇴사 후 몇 개월간의 수입 없는 기간의 고정비용을 계산했다. 예상과 실제에는 오차가 존재했다. 실질적으로는 계산했던 고정비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처음의 다짐이 무색하게 잔뜩 움츠러들었고, 애써 벌어 놓은 돈을 무턱대고 쓰는 것에 대한 '아까운'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길을 잃고 정처 없이 흘러가던 너의 청춘을 붙잡은 사람이 바로 너다. 이렇게 계속 살면 어느 날 후회할 거 같아서, 도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고, 0부터 시작하기 겁이 나지만 그래도 다시 해보자고 손 붙잡고 끌어온 게 너다. 착각하지 말자. 끌려내려온 것이 아니라,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 끌고 내려온 것이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님을 알았기에, 오르다 보니 내가 오르고자 했던 산이 아님을 알았기에. 비록 가는 길이 평탄하고 익숙해져 떠나오기 두려웠지만, 비로소 정상에 오른다 해도 기쁘지 않을 거 같아서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와 내가 가야 할 길, 내가 올라야 할 산을 처음부터 다시 오르는 것뿐이다. 




크래커 한 봉지, 인스턴트커피 한잔 들고 도서관 앞 한강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비록 지금의 생활은 예전처럼 별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별다방에 간다거나, 예쁜 옷을 산다거나, 특별한 저녁을 먹는 일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는 않다.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안 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똑같이 하지 않는 것이지만 체감하는 느낌은 천지차이다. 예전의 나는 지금에 비하면 귀족처럼 원하는 것을 소비하고 누렸지만, 그것의 대가는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무기력에 쳇바퀴처럼 제자리 도는 삶'이었다. 지금은 비싸지 않은 냉동식품 하나 사기 전에도 남은 날들을 위해 고민해야 하지만 딱 하나, '주도적인 삶, 내가 계획한 대로 사용하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이유로 그 정도의 결핍은 감수하기로 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이러니 하지만 지금이 행복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월급의 일정 부분을 차곡차곡 모았다. 내가 아는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건 못 견디고, 좋아하는 일이면 푹 빠져드는 사람이다. 꼬박꼬박 돈을 모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떠나야 할 이유가 생겼을 때 돈이 없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황은 만들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나에게 아낌없이 기회를 주자. 나는 언제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모았다. 그것이 여행이건, 유학이건, 공부이건, 결혼이건, 나를 위해 모았다. 






퇴사에는 철저한 계획과 뚜렷한 목표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뜬구름 잡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둥지를 나오는 것보다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퇴사 후에 맞닥들이게 되는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차가울 수 있다. 물론 그 길을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서 더 많은 기회에 자신을 노출할 수 있고, 인생을 더 다양한 색으로 채색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전반적으로는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찾아온다. 연일 뉴스에서는 물가는 치솟고, 경제성장률은 떨어지며, 취업률마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웬만한 배짱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불안할 때 성장한다고 했던가. 불안하지만 매일이 의미 있다. 불안하지만 설렌다. 불안하지만 내년이 기대된다. '이번 주도 한주가 벌써 지났네', '올해도 어느새 지나고 한 살 더 먹네'와 같은 류의 생각에서 멀어졌다. 하루하루가 또렷하고, 스스로를 움직이고자 끊임없이 나무라고, 격려하고, 설득한다. 





나의 향후 3년, 5년 후가 어떤 모습일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고 확실한 것이 없기에 '불안'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 불안을 생각하며 다시 확대 재생산해봐야 내게 도움될 것이 없다. 도움이 된다면 그 '불안'까지 떠안겠으나 불필요하게 부풀어 오른 불안은 나를 짓누를 뿐 '오늘을 사는 나'에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대신에 내가 선택한 태도는 '노력과 믿음'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노력하며 채워가는 사람이 도퇴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노력하고 정진하면 스스로가 내세우지 않아도 빛을 발하는 때가 온다. 실력을 갖추면 부수적인 걱정들은 자연스럽게 해소가 된다. '걱정은 접고, 실력을 갖추라.' 늘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다. 그 노력들이 모여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될 나를 '믿는 것'이야말로 나를 돕는 일이고 나를 세우는 일이다. 












떨리면 지고, 설레면 이긴다.









2016년, 내 인생의 1막을 내손으로 내렸고, 

이제, 드디어 2막이 시작됐다. 





- 왜인지 스페인의 남부 도시 네르하와 프리힐리아나는 이런 내용을 담고 싶었다. 

그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여행기를 읽기 위해 오신 분들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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