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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ventud Mar 10. 2016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걱정 반비례의 법칙

내게는 "걱정 기대 반비례" 법칙이 있다.


일찍이 아주 어릴 때 깨달았다.

너무 기대하던 일은 어이없이 틀어지거나 실망할 일이 생기고,

반대로 너무 걱정돼서 눈앞이 깜깜해지기까지 한 일들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는 걸.


기대하던 소풍 때 비가 왔고, 수학여행이 취소됐고,

눈부시도록 화창한 날, ex와 갔던 놀이공원에선 작은 일로 다툼이 커져 눈이 퉁퉁 붓도록 울기도 했다.


어느 순간, 기대되는 마음이 들면 오히려 걱정되기 시작했다.

'또 너무 기대했다가.. 실망할 일이 생기면 어쩌지?'

기대가 걱정을 부르는 아이러니.






그렇게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익숙해졌다.




바라하스 공항은 아니지만 노을지는 모습이 이러했다



노을 지는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조금만 멍 때리면 뒤로 넘어갈 것만 같은 큰 백팩에 캐리어를 한 손에 쥐고

오른쪽 어깨에 긴장 한 짐, 왼쪽 어깨에 걱정 한 짐 빵빵하게 얹고 공항을 나섰다.


긴장을 풀어보려 숨 한번 크게 들 이내 쉬며 내가 이곳에 왔음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어둑어둑해지고 있고, 배도 고프고, 백팩에 눌린 어깨가 아파오지만..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겠지...? '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니 지갑도 핸드폰도 마음대로 꺼내지 못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곧장 향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자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는 환승역인 [플라자 데 씨벨레스]로 출발했다.


얼핏 들으면 욕 같은 역 이름 덕에 찰떡같이 알아듣고 환승역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캐리어는 덩그러니 두고 마드리드 시청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Refugees Welcome" 뉴스에서만 보던 유럽국의 난민문제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옆에 서있던 스페인 노신사가 웃으면서 말을 거신다.

"where are you from? 어데서 왔니?"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이 아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다 동원하며 친근감을 표현하셨다.

그리고는 갈아탈 버스가 있는 방향을 알려주셨다.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에 긴장이 조금은 풀린다.



환승버스를 타려고 역에 서있는데, 유일한 동양인이어서 그랬는지 다들 한 번씩 쳐다본다.

그리고 버스가 왔다. 필요 이상으로 젊고 잘생긴 버스기사에게 가야 할 역 이름을 말했더니

이내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버스역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짜 맞춘 듯이 나를 보고 말했다.

"올라 엥깐따도 데 꼬노쎄를레(뭐라뭐라 다 스페인어임) "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이해가 됐다. 모두가 반대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도움을 주고 싶은 표정이었기에.

모두에게 인사를 하며 길을 건넜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그들에게서 흡사 배웅을 받는 느낌도 들었다.



'와.. 여기 진짜 사람들 친절하다. 괜히 너무 걱정했네!'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해서 타자마자 버스기사에게 내가 내려야 할 역을 보여줬다.

"에스따 에스 라 에스따 씨온 델 아윤따미엔또 다 스페인어고 나는 모르겠고 사가스타!"

라고 했다. 스페인어 하나도 모르겠는데 신기하게도 귀에 이렇게 들렸다.

"네가 내릴 역 이름이 바뀌었어. 사가스타로. 거기서 내리렴"

내가 "사가스타?" 했더니 버스기사가"사가스타!"라고 한다. 확실하다.


나는 손짓으로 나 한번 버스기사 한번 그리고 내리는 문 한번 손으로 가리키며 눈으로 말했다.

"내가 사가스타 도착하면, 기사님이 내리라고 얘기해줘요." ...이 말인데 알아들었겠지..?



몇 정거장 지나니 웬 유니폼을 입은 훤칠한 축구선수 같은 남자가 탄다. 그 남자는 버스기사랑 아는 사이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몇 번 쳐다본다. 눈인사 한번 하고 창밖으로 눈을 돌려 몇 정거장 더 지나갔다.

그런데 오른편에 앉아 있던 한 아저씨가 나에게 "꼬노께를레 사가스타"라고 하신다. 다 듣고 계셨나 보다.

그 축구선수 같은 남자가 다시 영어로 "사가스타에서 내리지? 다음 역 이래"라고 한다.

다들 안 듣는 척 있다가 도움이 필요하다 싶을 때 척척 도와주니 감동이다.


웃으며 인사를 꾸벅하고 버스 뒷문으로 갔다. 내리려고 서있던 근사한 중년부부가 나를 힐끔힐끔 보는 듯했다.

내 캐리어에 달린 코리안 에어 꼬리표를 보셨는지 "께 루가르 에스 꼬레아"한다.

꼬레아란 단어가 촥 귀에 감긴다. "한국에서 왔나 봐"이런 얘기 일 게다.

이제는 스페인어를 유추하는 게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대답까지 해주고 싶다.



버스에서 내려서 숨도 안 돌렸는데 그 중년 부부가 말을 걸어온다.

"여기 근처 호스텔에 묵을 거지? 어디로 예약했어?"

안 그래도 스페인 주소가 생소해서 누군가에게 물어볼 참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가방을 바닥에 놓고 예약증을 뒤적거리며 찾는데 가만히 기다려준다.

그리고는 주소를 보고 어느 길목으로 들어가야 되고 번지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려준다.



이쯤 되면... 의심할만하다. 마드리드 사람들은 짰다. 짠 게 분명하다.

아님 대학에서 필수과목으로 외국인 관광객 안내론 같은걸 듣기라도 하는 건가.


호스텔에 도착하기까지 특별히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손에 다 꼽지 못할 만큼 많았다.

지금까지의 걱정이 무색했다.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안고 살았던 지난날.

발을 떼기만 하면 사라지는 것임을.



걱정이 버거울 때 떠올리곤 했던 티벳 속담이 생각이 났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고민으로 똘똘 뭉친 청춘들이 하루에도 셀 수없이 많이 오간다.



지나고 보면 길지 않은 인생을 너무 많은 걱정으로 허비하지 않길.

불가피한 걱정은 하되, 걱정에 짓눌리지 않는 인생이 되길.


나와 같이 걱정이 많은 그대들,

누가 뭐래도 하루 종일 고단했을 사람들,

잠드는 순간 만은 걱정 고이 접고 달콤한 꿈 꾸시길.




비록 내가 누운 이 자리는

먼저 들어와 있던 몇몇 자연인들에 의해 여기저기 속옷이 방에 널려있고,

땀냄새도 물씬 풍겨오고, 남은 자리가 키 높은 2층 침대뿐이라 떨어지면 어디 하나 부러질 거 같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이제야 제대로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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