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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명 Nov 17. 2022

눈썹 옆에 밥풀

중년이 된 지는 좀 됐다. 전에는 그래도 언뜻언뜻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은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그런 순간이 없다. 기대도 없고. 이제는 이리 보아도 중년, 저리 보아도 중년남이다.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타임 중년. 중년의 식성, 중년의 사고 방식, 중년의 감각, 냄새, 걸음걸이, 추임새, 메세지도, 태도도 다 중년이다. 중년이 몸에 착 붙어서 아주 한 몸 같은데, 이게 또 어색하지가 않고 편안하다. 미치겠네. 너무 중년이 착 달라붙어서 맞춤하니, 미치겠다.


이틀 전에는 하루 종일 눈썹 옆에 밥풀을 붙이고 다녔는데,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아무도 아저씨의 눈썹 따위에 관심이 없지만, 실은 나도 내 눈썹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이다. 남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나도 덩달아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뭐 자신을 사랑하라,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 눼눼, 알겠쭙니다~’ 그런 생각이 들 뿐, 딱히 감흥이 없다. 자아가 미동도 없다. 이런 걸 불혹이라고 하는 건가. 아니면 모든 감흥을 빨아들이는 중년의 블랙홀인가.


그렇다고 생을 존중하지 않는다거나 방관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년이 되고 나니 체중은 좀 불고, 배는 더 나왔지만, 자아는 눈에 띄게 슬림해졌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좀 더 젊었을 때에는 비대한 자아 때문에 관계에 거리를 만들려면 상대를 밀어내야 했는데, 비좁아서 다투고 숨막혀서 호흡이 거칠었는데, 그냥 자아가 슬림하니 저절로 거리가 확보된다. 자아가 슬림해지니 모든 일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내고 서사를 엮어내는 편집증적인 성향도 줄어들었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의 인생이란 얼마든지 우발적이고, 한 숟가락의 의미도 찾을 수 없으며, 앞뒤 맥락이나 그럴 듯한 인과 관계도 그저 우연한 나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집착이 줄었다고 해서 애정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의미는 없는데 사랑스럽다. 나라는 사람은 그닥 사랑스럽지 않은데, 내 인생은 그럭저럭 봐줄 만한다. 인생의 이런저런 뒤치닥거리와 무게가 줄어들거나 갑자가 삶이 고요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남의 인생이 아닌 것을.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세상 분명해 보이던 이분법과 경계가 없어진다고 할까. 우발적이고, 우연한, 한 때의 해프닝과 세상 너무나 중요하고 심각한 사건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얇고 찢어지기 쉬운 종이가 한 장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대와 달리 인생의 희극과 비극을 가르는 것이 무슨 뚜렷한 이유나 필사적인 의도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


지난 해인가 은퇴한 투수 봉중근이 술을 먹고, 집 근처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져서 운전면허가 취소됐다. 한참을 웃었다. 와하하하하. 봉중근은 좋은 투수다. 그냥 술김에 그냥 갑자기 전동킥보드를 타고 싶었던 것이다. 하하하하. 하지만 또 어떤 배우는 음주운전하고 공공기물을 들이받아 요 며칠 계속 대서특필되고 있다. 당분간은 본업으로 되돌아오기 힘들 것 같다.


물론 뭐 음주 운전을 하면 안되죠. 아직도 그런 일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분들이 엄연히 존재하니까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한 투수 봉중근과 모 배우 사이, 희극과 비극을 가르는 어떤 분명한 차이가 있을까.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갈림길이 있었을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한테 답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전에는 일하다가 결과만 두고 이런저런 피드백을 던지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참여한 사람의 태도와 때로는 삶의 이력까지 모조리 싸잡아 비판할 때가 있었다. 000씨는 애시당초! 평소에도!그때도! 저번에도! 역시 이번에도! 하고 조목조목, 나쁜 결과가 마치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삶의 이력을 뒤져가며, 확신범을 단죄하듯, 구속이라도 시켜야 할 것처럼,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듯이, 단단한 원칙과 본질을 내세우며 상대방을 몰아치고는 했다.


그런데 그건 내가 그런 과정을 통해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나의 도파민 자극 중추를 활성화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로 되돌아가서 그저 운이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돌아갈 수 없어서 이렇게 관대하게 말하는 것일런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다만 좀 더 젊은 동료들에게 너무 빨리 판단하고, 계획하고, 빨리 포기하거나 철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금방 잘 되지는 않지만,  너도 금방 잘 되지는 않을 거라고. 제발 빨리 성취하고, 빨리 실패하기 위해서 안달하지 말자고.


여러분? 우리에게는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건너 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무턱대고 서두르지 맙시다. 서둘러 버릇하면 그냥 빨리 늙게 될 뿐이라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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