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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명 Feb 27. 2020

어른의 도덕

- 코로나 시대의 선거 홍보에 대하여

요 며칠 이런저런 이유로 밤샘을 하다가 새벽에 목욕탕을 향했다.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면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어깨도 풀리고 몸의 긴장감도 가라앉는다. 무엇보다 목욕을 끝내고 나면 몸과 마음에 남아 있던 불순물이랄까, 이런저런 감정과 피로의 찌꺼기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마음으로 동네 목욕탕을 향했는데 웬걸, 평소와 달리 드넓은 탕 안에 아무도 없고 어떤 아저씨만 한 명 쓸쓸하게 온탕에서 얼굴만 내놓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아 코로나’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아무도 대중 목욕탕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는 샐러리맨들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들도 꽤 자주 이용하는 동네 목욕탕이기에 이렇게 손님이 없는 광경은 거의 처음 본다. 그런데 이렇게나 사람이 없으니 외려 전염될 가능성이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들어온 김에 목욕을 정상적으로 끝마치기로 마음 먹고 뜨거운 탕에 몸을 담궜다. 


그런데 탕을 나와 자리를 잡으니, 그 아저씨 한분이 굳이 내 옆에 와 샤워기를 튼다. ‘등을 밀어 달라는 뜻인가?’ 싶어 ‘등 밀어 들일까요?’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사양하신다. 차라리 잘 됐다 싶어 ‘그럼 제 등 좀 밀어주실래요?’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아저씨는 주저하지 않고 흔쾌히 내 등을 밀어주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치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으신 분이신지, 등을 미는 내내 선거 이야기, 재개발 이야기, 요즘 경기와 일자리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내용이 일목요연하고 공감가는 대목이 많았다. 똑똑한 분이시다.


물론 이야기가 그렇게 길어진 이유가 다 그 아저씨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고, 오랜만에 목욕탕을 찾은 탓에 아마 내 등에서… 그렇다. 그 아저씨도 짧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아마 내 등에서 계속… 그렇다, 그래서 이야기가 길어지셨나보다. 등 밀어주기가 끝나자 아저씨는 '목욕 잘 하십시오~' 고개를 숙여 인사까지 하고는 목욕탕을 나가셨다. 참 보기 드물게 예의 바르고, 등도 잘 미는 아저씨였다. 


그게 아니고, 알고보니 지역구에 출마하는 00당 국회의원 후보였다. 

카운터에서 바나나 우유를 하나 꺼내서 마시는데, 목욕탕 주인 아저씨가 귀뜸해주셨다. 맞다. 이맘때면, 국회의원 후보들은 동네 목욕탕을 찾는 경우가 꽤 있다더니, 바로 그런 광경이었던 거다. 주인 아저씨 말로는 요 며칠 목욕탕을 찾으시는데, 손님이 없어서 허탕을 친다고.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다들 어디 모여 있지 않고, 집에서 외출도 잘 하지 않는 탓에 선거 운동하기도 힘들다며 울상이라고 한다.    


국회의원 출마자라는 선입견 없이 등을 맡겼더니 참 괜찮은 아저씨였는데, 이유를 듣고나니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아까 등을 밀면서 그 아저씨가 했던 ‘똑똑한 이야기’를 다시 리와인드 해보니 딱 00당이 이야기하던 논조랑 비슷하다. 잠시나마 참 괜찮은 아저씨네, 생각했던 내가 좀 어수룩하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론이나 미디어로 접했던 00당의 이야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해라고 생각하고 틈만 나면 욕했던 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의심스러워졌다. 내 생각은 과연 의심의 여지없이 올바른 것인지 그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는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일할 때도 요즘 비슷한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전에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책임소재를 어떻게든 가려내서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상대방이 틀렸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내가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애써 증명하고 나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적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경우가 꽤 많았다. 다만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눈을 가려서 그저 남의 잘못을 들추는 일에 매몰되었을 뿐이다. 


목욕탕에서처럼 선입견과 분노를 지우고 나면, 남의 잘못이 그리 큰 것이 아니고, 나의 정당함이 생각보다 명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마도 옳고 그름은 서로 경합하지 않고, 그냥 저마다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괜히 그 둘을 비교하고 승패와 우열을 가려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나의 쓸데없는 망상과 스트레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의 틀렸다고 해서 내가 맞는 것은 아니라는, 이런 명제를 잠정적으로 어른의 도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른의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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