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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Project Nov 05. 2017

서울에서 상가주택을 샀다

03.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거의 한달 가량, 처음으로 작은 내 시간이 생겼다. 

이사, 그리고 회사 업무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관심을 배분할 수 가 없었다.

멀티태스킹 천재라고 스스로 자부하던 나도 

태평양에서 몰려오는 쓰나미처럼 거대하게 몰려오는 이런 일들을 

혼자 꼿꼿하게 맞으며 버티기는 어려웠다. 


손에 부여잡기는 쉬운데 

욕심을 버리고 놓아버리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드디어 10월 30일에 우리의 두번째 한옥을 나왔다.

이사를 처음하는 것도 아닌데 처음같았던 이유는

짐을 두 군데로 나눠서 보내야하던 터라, 반포장이사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나름 지혜로운 선택이었으나, 몸은 아스라져 바스락거린다. 

어쩌다 저까지 날아갔을까, 우리가 만든 조약돌화투 풍청단.이사 다다음날 계동길에서 만났을 때의 짠-한 반가움이란 ;)



새로 계약한 용산의 오피스텔은 10/25일부터 우리의 것이었다. 

단기임대.

용어조차 낯선 이것은, 알고보니 임대의 임대. 

집주인 몰래(?) 진행되는 비밀스러운 작전, 혹은 

와이프 몰래 하우스에 넘나드는 남편의 조심스러운 도박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심지어 임차인은 유명한 회사.

중개인이 아무 언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참새새끼처럼 멋도 모르고 3개월치를 한번에 내고 깎아보자고 짹짹거렸다.


계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도장 찍고 입금하고 끝. 

아무리 작은 공간, 단기임대라지만 

이렇게나 쉬운 것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겁먹진 않았을텐데 하며 입에서 조금 쓴맛이 났다.


 

이사청소업체를 부르고 청소를 시키고, 

당장 필요한 짐들을 밤마다 직접 차로 나르기 시작했다. 

옷만 - 예상처럼, 같이 사는 사람의 짐들이 훨씬 많았다 - 100ℓ 봉투로 10개 정도.

25일부터 3일을 꼬박 짐을 날랐다.

이사짐을 옮기던 첫 날


주방을 정리하고, 옷짐을 들여놓고, 가구배치를 상상하면서 

신혼집을 한번 더 준비하는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결혼 3년차에 신혼집이라..




3개월여의 시한부 오피스텔 생활을 시작하며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마지막날 겨우 찍은 가회동집 대문. 안녕.

고즈넉하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던, 

마당이 있는 한옥 대문을 드나들때마다 관광객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고

거주자불법주차자들과 매번 싸우기도 하고 

집근처 개념없는 장사치들과 기싸움까지 하며 살았던 

머리위에서 고양이가 우는 소리를 밤마다 듣고 하늘을 매일 바라보던 가회동에서 


세상에, 서울타워가 보인다! 게다가 이렇게나 높다!!

높은 층수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시계바늘, 

매일 만나는 무표정한 경비아저씨의 시선과 

아무도 우리를-그리고 서로를-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이웃이라 부르기도 서먹거리는 사람들과 한 건물을 공유하는 

말그대로 '현대 문명'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의 용산 오피스텔로.



그런데,   

도심 한 가운데 오피스텔에서의 삶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 점들도 많았다. 

- 비나 눈을 맞고 700미터 이상 차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 

  ; 이사해서 가장 매력적인 삶이 되었다고 느낀 점! 

- 거주자주차신청에서 까일까봐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자리가 많다. 

- 오피스텔 단지 안에 내가 좋아하는 이마트24가 있다. 

  ; 가회동에서도 길건너 CU가 있었지만, 이마트는 역시. 뭔가 훨씬 세련된 느낌이다! 

- 엘레베이터를 매일 탄다.

  ; 아직. 엘레베이터가 놀이기구처럼 마냥 좋다. 

-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멋지고, 서울 타워와 다른 높은 건물들 보는 재미가 있다.

- 걸어서 10분안에 대형마트와 영화관이 있다. 

  ; "현대 문명"을 즐기는 삶이란! 우린 그동안 도시 속 시골 타임캡슐에서 살다온 느낌.

등등..



3개월의 한정된 시공간에서 

얼마나 풍성한 경험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주변을 많이 구경하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Finally,  

삼선동집의 등기가 완료되었고 

건물 전체가 (1층 상가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워지고 키를 받아왔다.

어제는 빈 집을 구석구석 구경하며 재미있는 상상들을 했다.

멋진 공간으로 변신할 지하. 함께 할 사람들 누구 있을까요?

이제 돌아오는 수요일, 건축가들의 계획안을 만나볼 차례다.

한 달 넘게 -건축주 기준으로는 꽤 오랜 시간과 투자였다 생각한다- 

단 한번도 먼저 연락하거나 보채지 않았던 나의/우리의 인내심과 믿음을 

부디, 만족시켜줄 만한 설계안을 만나보고 싶다. 

아마도 눈알이 휙휙 돌아가는 세상 멋진 것들이 나왔을 것만 같다.



오피스텔에서의 시간은 

높은 층수만큼 정말로, 빨리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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