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만의 공간에 대한 갈망_내가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는 없다
끔찍이도 나를 아끼는 부모님의 한이 없는 사랑 덕분에
나는 30여년을 가족들과 함께 살았고,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거나 홀로 독립해서 사는 친구들을 마냥 부러워만하며
서른 즈음까지는 부동산을 알아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 때 한참 만나던 남자친구가 서울에서 새 집을 찾아야했고
한국 물정을 잘 모르는 남자친구를 대신해 내가 집을 알아봐주게 되었다.
내심. 이게 신혼집인건가, 하여
내마음에 드는 아파트들을 골라서 찾아다니기로 했다.
회사와 가까워야해서 되도록 강남에 있고 싶었으나
신나는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남은 이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잠실, 왕십리, 건대입구, 중랑, 금호, 옥수, 여의도, 대림, 상도...
전세매물 전수조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당시의 나는 서울안에 가볼 수 있는 아파트들을 - 당시 매물로 나왔던 - 거의다 찔러보고 가봤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남이 정해놓은 가격에
내가 원하는 행복을 끼워맞추는 삶을 살아야만 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격이 맞으면 다른 한두가지가 삐걱거렸고,
솔직히 마음에 들 것 같은 곳은 가격이 동공흔들리게 비쌌다.
이 당시 전세집을 알아보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억 단위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2013년에서 2014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4억으로 왕십리에서 둘이 살만한 사이즈의 아파트를 전세로 구할 수 있었다.
4억이라니..
지방에 있는 남자친구와 주말에만 만났는데, 데이트하면서 부동산을 2-3개씩 보러 다녔다.
내가 같이 살 집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집을 알아본다'는 경험 자체에 굉장히 빠져있었던것 같다.
태어나서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설레이고 즐거운 상상.
2014년 초까지 결정을 못하고 계속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내가/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집이 분명히 있어야하는데,
현실은 정말로 그렇지 않았다.
정말, 내가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는 없었다.
어느 일요일, 차를 타고 안국역 앞을 지나다 커피를 마시러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남자친구는 저 멀리 부동산이 있다며 갑자기 뛰쳐나가더니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 뒤에 와서는 전세로 나온 한옥집이 있다며 빨리 나오라고 밖에서 정.말.크.게. 소리를 치고 서 있다.
...
그렇게 드라마처럼 계동의 작은 한옥을 만났다.
처음 계동 작은한옥을 만난날. 대문위 고양이 두마리, 기와옆 한마리. 저 세마리가 우리보다 먼저 있었다..
내가 경험한 집 알아보기 (1~5번 무한 루프...)
1. 네이*, 다* 등 온라인 포털 부동산 사이트에 전세로 나온 매물을 서울시내 "전.수.조.사"
- 오바스러울 정도로 엑셀 리스트를 만들었다. (직업병..)
- 처음부터 지역을 좁히고 들어가면 상당한 시간을 세이브 할 수 있다.
우린 어디든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 지역에 대한 제한은 없었다.
2. 예산에 맞는 매물들을 추리고 부동산에 전화해서 약속잡기
- 이 때, 매물 사진이 있으면 +
- 부동산 중개인의 설명이 친절하면 +
- 온라인에는 없지만 중개인만 가지고 있는 매물들도 상당히 많다.
3. 되도록 해가 있을 시간에 약속을 잡고, 하루에 몰아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5곳 이하 돌기
- 주말 커플에 해당되긴 하지만, 회사원이라면 어차피 주말이 최고
- 실제로 집에 들어가 돌아보는 시간은 길어야 10분 내외
4. 우리가 집중적으로 본 사항
- 예산. 뷰. 위치. 시설 낙후 정도. 동네 분위기.
- 이것들은 서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실제적으로 모두 예산의 범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ex. 예산이 높아지면 거의 자동적으로 뷰, 시설, 위치, 동네분위기가 좋다.....
5. 1차 통과한 집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
- 등기 떼어보기 (집주인의 융자여부 및 명의 체크 등) : 왠지 전문가가 되는 느낌이었다!
- 온라인에서 아파트 평면도 구경하기 (직업병..)
- 부동산에서 자세한 사항 캐내기 : 중개인의 정성이 큰 영향을 미친다.
- 가능하면 한번 더 방문해서 다시 보기 : 이 단계까지 갔던 집은 아쉽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