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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수 Feb 18. 2016

부산 근대사의 산 증인, 광복동

시대의 수난에 맨몸으로 맞서야 했던 광복동

시간이 빚어낸 부산의 맛.

우리는 음식을 통해

부산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이 기획을 시작했다.

부산의 냄새가 고이 베인 갖가지 음식들 속에서

더욱 부산다운 부산을 찾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첫 발걸음을

음식이 아닌 '광복동'이라는 지역을 선택한데에는

그에 걸맞는 의미가 있다.



1876년 개항과 동시에

광복동은 일본인 전관 거류지로 지정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이에 따라 광복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일본의 문화가 가장 먼저

유입되는 지역이 광복동이었고

동시에 일본의 음식문화가 함께 자리잡아갔다.


이후 광복동은 일본인에 의해 번창기를 겪었고,

해방과 동시에 이 곳을

조국의 광복을 맞아 그 뜻을 기린다는 의미로

현재의 광복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다.


해방 직후의 광복동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피난 온 문화 예술인들은

광복동의 좁다란 골목으로 모여들었고,

골목을 빼곡히 메운 다방은

갈 곳 없는 문인들의 안식처이자

찾기 힘든 동료들의 연락처였다.

그렇게 광복동은 부산 문화,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이어나갔다.


현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산지이자

대표 관광지로 손꼽히는 광복동은

사실 부산의 그 어느 곳보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대의 수난에 맨몸으로 맞서야 했던 광복동.


때로는 일본인 전관 거류지로,

또 때로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모든 다양성을 수용해 온 광복동은

다른 지역과는 차별되는

독특한 음식 문화를 갖게 된다.


피난민들이 시장으로 나와 음식을 팔기 시작한 좌판. 좌판에서 시작한 여러 음식들은 아직까지 부산 특유의 문화로 남아있다.


부산 음식을 찾아 떠나는 기행

그 시작을 이 곳 광복동에서 하는 이유이다.




"본 방송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rhQzGUpRrQM?list=PLrACpQPVGffz98ln1KBrkNo8jN5CCBtB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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