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광복동 [원산면옥]
냉면은 익히 알고 있듯이
부산의 향토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냉면 중에서도 '부산스러운' 냉면이 있다.
1953년부터 3대째 이어오는 전통을 가진
원산면옥의 냉면이 그러하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냉면은 본래 여름 음식이 아니라 겨울 음식이라는
이야기였다.
김충진 화가는 어린 시절 원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피난 시기에 부산으로 내려왔다.
냉면이라는 음식이 이북의 음식이었던 만큼
그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냉면 이야기는 우리나라 주거문화에서 시작한다.
아궁이에 불을 떼면 온돌이 데워져
방이 후끈후끈 해지는데,
면을 익히기 위해, 육수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불을 떼우던 것이
겨울에 집을 따뜻하게 하기 위함과 맞아 떨어진다.
냉면의 육수도 현재는 소고기 육수를 주로 쓰지만
본래 냉면은 꿩으로 육수를 만들었다.
꿩고기가 기반이 되는 음식들이
보통 겨울철의 음식으로 손꼽히는 건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이다.
(지금도 냉면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비빔냉면과 함께 내오는 육수는 따뜻하게 나온다.)
뿐만 아니라 냉면에 고명으로 올라가는
가자미 식해 또한
12월부터 3월 초 무렵에 나는 가자미를 써야
맛이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기에
냉면이 겨울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가자미 식해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에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맛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재창조 되고 진화한다.
부산에 자리 잡은 냉면이 그러했다.
초기에는 꿩 육수로 냉면을 팔던 이 곳 또한
사육을 하지 않아 꿩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닭 육수로 바뀌었고,
부산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소고기 육수로 진화했다.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성향에 맞춰
냉면 또한 그렇게 변화를 거듭했다.
이북의 대표 음식인 냉면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만들어온 이 곳.
그 사이 냉면은
부산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온 피난민들은
냉면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그저 널찍한 나무 상자 하나 엎어 놓고
냉면을 팔기 시작한 사람들.
수많은 실향민들은 차디찬 냉면을 먹으며
고향의 기억을 되살리고 쓰라린 한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부산 냉면은
실향민의 절절한 아픔이 뒤섞여
지금도 오묘한 맛을 내고 있다.
"본 방송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rhQzGUpRrQM?list=PLrACpQPVGffz98ln1KBrkNo8jN5CCBtB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