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바 May 29. 2016

기억, 해주는 말들

도장 열 번에 음료 한 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나는 짧고 빠른 만남에 익숙하다. 카운터 앞에 서서 30초 언저리의 짧디 짧은 시간 동안 기승전결이 완벽한 멘트를 건네는 건 물론, 결제하는 순간엔 손과 손이 스치며 손님과의 신체적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난 그저 아르바이트생, 나 역시도 그들을 1번 고객님, 14번 고객님으로 서로를 스칠 뿐이다.

 하지만 30초가 쌓이고 쌓여 종종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렇게 그들은 나에게 'A버거 세트에 스프라이트로 주문하시는 분' 혹은 '세트에 어니언링으로 변경하시는 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머릿속에 입력된다. 그래서인지 그분들이 오시면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생겨 내가 먼저 "어니언링으로 변경하시죠?"나 "오랜만에 오셨네요?"라든지 "머릴 자르셨네요?"하는 말을 건네게 되는데, 그러면 낯설 만큼 환한 미소가 돌아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눈, 도장을 찍다


 음료 한 잔을 시킬 때마다 도장을 하나씩 모으는 재미가 쏠쏠한 동네 카페에 자주 간다. 한 번은 열 개의 도장을 다 모아서 중요한 순간에 쓰려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나에게 먼저 "쿠폰 쓰셨어요?"하고 물어보는 직원에 화들짝 놀랐던 날이 있었다. 내가 도장을 다 채웠다는 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그 후로도 "저번에 드셨던 음료는 싱겁지 않으셨나요?" 같은 말들이 새로 추가됐고 나는 어쩐지 진하게 우러나는 마음과 함께 카페에 머무르다 돌아오곤 했다.

 



 도장이 하나씩 빈칸을 채워 나갈 때마다 서로를 향한 눈도장도 꾸욱- 흔적을 남겨 놓는 모양이다. 그렇게 날 기억하고 건네는 말 한 마디가 또 내 입에서 누군가를 기억하는 말이 되어 전해진다. 그러고보면  짧고 빠른 만남에 익숙해질수록 머무르는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것 같다. 빠르게 기계적으로 내뱉는 말들 속 쉼표 같은 한마디라든가,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든가.


 숫자 위를 지나가는 초침보다도 어쩌면 더 빠르고 무심하게, 서로를 지나쳐가는 무수한 만남들이 있다. 그런 하루 사이에 책갈피를 꽂듯 다시 펼쳐보고 싶은 때가 늘어간다는 건 어쩐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한다.


"멤버십 사이즈업 하시죠?"


 오늘도 당신과 나 사이에 서서히 쌓여온 순간들은 입술이 떼어지는 찰나와 만나 나에게 온다.

 쉼표 하나가 섞인 주문을 마쳤을 때 - 쿠폰 위에 찍힌 도장이 덜 마른 잉크를 깜박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