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승패를 가르기 어려운 대결이 있다. 누구의 사랑이 더 큰지 로맨틱한 대결도 있고, 시험 기간 누가 더 공부를 안 했는지 무의미한 대결도 있다. 취준생 땐 누가 더 절망적인지 대결하다 혼기가 차면 누가 더 결혼을 잘하는지 대결을 한다. 어디서 배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정해진 룰대로, 인생의 매뉴얼대로 살아가며 끝없는 줄다리기에 치이고 넘어지고 상처 받고 부족하지 않음에도 더 부족한 것을 찾아다니며, 남들과 비슷해지는 걸 기뻐하며 살아간다. 나의 색은 너와 같은 흰색도 검은색도 더더욱 회색도 아닌데 튀지 않는 색이 정답인 것처럼 그렇게. 인생의 매뉴얼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얼마만큼의 범주에 속하는가. 반은 따라왔고 반은 뒤처진 것 같다. 나는 얼추 반은 따라왔다며 기뻐하는데 사람들은 그 따라가지 못한 반을 걱정한다. 평생 걱정만 하며 살라고 만든 매뉴얼인가? 그러지 않아도 이미 그대로 충만한대도 말이지.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만 없다면 그뿐이다. #수원화성 을 걸으며 생각했다. 나는 후회가 없고, 그 자체로 행복하다. 행복하다는데 다른 부연설명이 뭐가 필요할까. 뭐, 허세 가득한 이야기지만, 내 길을 내가 정한다, 뭐 그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