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1. 전반부를 넘어서세요.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작가(=룰루 밀러, 서술자)가 조던이라는 인물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삶의 핵심 궁금증을 해결하는 여정이 담겨 있다. 책은 프롤로그, 1장부터 13장까지의 본 이야기,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은 사람, 그리고 읽다가 포기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초반부가 너무나도 ’재미없고, 지루하다'라고 말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책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보자면 1장부터 7장까지가 전반부, 8장부터 13장까지가 후반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반부에서는 주로 작가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궁금증을 가지게 된 계기, 데이비드의 전기에 대해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데이비드의 행위 및 태도에 대한 작가의 해석, 왜 그가 그런 모양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에 실마리가 제시된다. 전반부에 제시되는 것이 다소 지루한 한 인물의 삶에 대한 서술이어서, 이 책을 읽다가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읽다가 포기한 사람이라면, 꾹 참고 전반부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이 책의 매력은 후반부에 있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넘어서면 아마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전반부를 넘어서서 완독에 성공했다면, 일단 이 글을 더 읽어 보고 읽을지 말지 판단하겠다면, 다음 소제목의 글로 넘어가도 좋다.
2. 인간의 말과 행동에는 신념이 담겨 있다.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살아가라”라는 것이었다. (57p.)
너는 중요하지 않아는 내게 종종 아버지와는 다른 효과를 냈다.(58p.)
작가는 과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듯하다.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아버지의 말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넓은 세계에 한 없이 작은 존재라는, 그렇기에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신념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타인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들이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 대하라는 신념을 이어 말한다. 참으로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이러한 신념이 작가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 것 같다.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이 정말로 의미 없는 존재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탐구하게 된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소년기부터 별, 나무, 동물,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탐구심이 있었다. 이러한 그의 탐구심은 1893년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를 만나며 인정받는다. 아가시가 젊은 학자들을 모아 직접 자연 생물을 관찰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인 ’ 페니키스 섬‘을 만들게 되고, 데이비드 역시 그곳에 가게 된다. 아가시는 모든 생물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연 속에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고, 신의 피조물들을 모아 위계에 따라 잘 배열하면 거기서 도덕적 가르침이 나오리라고 믿은 것이다. 데이비드는 아가시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여 '어류'를 분류하는 일에 오랜 시간 몰두한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미지 어류 발견 사업과 관련해 정부에 임용되고, 인디애나 종신 교수를 거쳐, 스탠퍼드 대학 학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렇게 잘 나가던 데이비드가 오랜 시간에 걸쳐 모은 수많은 물고기 표본들이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파괴된다. 말 그대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쌓아 올린 것들이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는다. 표본과 학명의 분리로 인해 "박살"나버린 상황에서 표본들의 이름을 잃을 수 있음을 깨닫자마자 바늘에 실을 꿴 다음 바늘 끝을 어류 표본 목살에 찔러 넣어 반대쪽으로 뽑아내고, 새로운 이름표를 어류 표본의 살갗에 곧바로 매달아 다시 존재하는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을 지속한다. 작가는 이러한 혼돈, 박살의 상황에서의 데이비드의 행동에 주목한다.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120p.)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건 왜 그러는지에 관한 집착이야."(130p.)
작가는 데이비드의 행동의 원인(근원, '왜')을 찾고자 하였고, '왜'의 해답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에게 '파괴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작가는 데이비드 본인이 쓴 에세이를 통해 그에게 '파괴되지 않는 것'이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라는 신념, 자기기만임을 찾아내었다.
이 책의 작가도, 데이비드도 아닌 나의 삶을 돌아보면 30년 남짓한 시간 동안의 나의 행동과 말 또한 모두 나의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기에 엄마, 아빠라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 테두리 안에서 지내지 못했던 나는, 아빠와 큰고모 밑에서 지냈었다. 바쁜 아빠와 고모는 나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지는 못했고 6살 때 엄마에게 돌아와 받는 온전한 칭찬과 관심에 취해 '칭찬받기 위한' 여러 행동들을 청소년기까지 해왔던 것 같다. 시험 성적으로, 학급 반장, 학생회장 임명장으로. 나를 '확인' 받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내가 사실은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누구에게 칭찬받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내 삶을 염탐하였을 때 정말 '평범'하고 '모범'적으로 '잘'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3. 뿌리내린 우생학적 사고
데이비드는 전 생애에 걸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기 손으로 혼돈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기가 옳은 일은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목표를 추구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파리 한 마리를 잡는 데 대포알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151p.)
8장부터 시작되는 책의 후반부에는, 데이비드가 지닌 신념, 자기기만이 어디까지 나아가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이 글에서 모든 것을 서술할 수는 없지만 결과론적으로 데이비드의 훌륭해 보이기만 했던 삶에 대한 투지는 살인, 우생학으로 나아간다.
우생학이란, '생물학적 유전'이라는 과학적 지식에 너무 과한 중요성을 부여한 나머지, 인간의 성격을 이루는 거의 모든 특징을 생물학적 유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에 기인하여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집단을 말살시키는 기술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겠다. 데이비드는 우생학 전도사로서 본인이 판단하기에 열등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이들이 더 이상 대를 이을 수 없도록 하였다.
우생학이 비과학적임을 입증하는 근거는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그는 왜 생물에 대한 수직적 분류를 할 수밖에, 그리하여 우생학을 외칠 수밖에,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에 대해 작가는 데이비드 자신이 아가시로부터 받은 신념, 종의 '사다리'가 존재한다는 신념, 그것을 부정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크나큰 "혼돈"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혼돈"을 피하기 위해 행동해 왔던 것이다.
우생학이 죄 없는 이들의 삶을 짓눌러버린 여러 사례까지 읽어내라고 나니, '나는 어떤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생학이란 비과학적이고 맹목적 과학 숭배가 낳은 재앙이라고 칭하는 우리는 우생학적 사고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모두 '보통의 것, 표준의 것, 일반적인 것'을 지향한다. 그 어떤 영역에서는 보통의 것이 아니라면, 표준의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면 일단 찌푸리고 시작한다. 수많은 '다양성'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는지.
데이비드는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었지만, 꽤 평화롭게 삶을 마감한다. 작가이자 서술자인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가 일평생 분류해 왔던 "어류"라는 종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자들의 발견을 통해, 데이비드의 삶이 "틀렸다"는 것을 나름대로 입증한다. 물에 사는 생물이니까 "어류!"라고 모든 물에 사는 생물을 자신의 잣대로 분류한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기준과 잣대는 충분히 경계해야 하며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외친다.
4. 그리하여, 결국 삶.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227p.)
책의 서술자는 결국 그토록 헤매던 문제의 해답을 찾는다. 아버지는 "넌 중요하지 않아"라고 했지만, 사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관점 중 하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답변이라는 것. 우리 모두는 사실 그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그 어떤 공간에서는 중요하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어쩌면 삶이란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한 과학자의 전기문이었다가, 심리학 서적이었다가, 추리 소설이었다가, 결국, 이 책은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전부이자 우주일 우리이기에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살아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