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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n 12. 2023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

 인생을 살다 보면 자기소개를 할 일이 참 많다.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학기 초 첫 수업 시간에도 자기소개로 수업을 열고, 새로운 학년부 선생님들과의 만남에서도, 배우려고 나간 연수에서 대화의 시작도 자기소개이다. 아마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름, 나이, 직업 같은 것들로 자기소개 시간을 넘겼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소개한다는 것은 나에 대한 명료한 정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일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하려면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말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순간들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몇 잔의 술은 맨 정신의 내가 꾹꾹 누르고 있던 속 이야기를 꺼내게 하고 상대와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적당한 취기는 하루의 피로를 조금은 날려준다.


 또, 나는 주말 아침에 먹는 따뜻한 커피, 프렌치롤 위에서 적당히 녹은 클로티드 크림의 맛을 좋아한다. 이 세 음식의 조화는 주말의 여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나는 저 멀리 있는 횡단보도가 빨간 불에서 파란 불로 갑자기 바뀌었을 때 뛰어가는 일을 좋아한다. 파란 불을 보고 난 틀렸어.. 하고 멈추지 않고 지금 뛰면 건너갈 수 있어! 하고 뛰어가는 일, 뛰어가며 느껴지는 바람, 나의 팔과 다리가 시원시원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좋아한다.


 이밖에도 나는 주말 낮에 아기 옆에서 자는 잠, 손잡고 걷기,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집 밖을 나서는 걸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 일, 일과를 마치고 소파에서 옅은 불을 켜놓고 잠시 동안 읽는 책, 영화 보면서 눈물 흘리기를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 그리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아는 일은 '나'에 대해서 잘 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더 많이 알고 싶고 기억해내고 싶다. 이것들을 타인에게 잘 알려주고 싶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무얼 좋아하는지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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