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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박선영 Apr 12. 2019

내 후회는 내가 한다

낙태죄 폐지에 부쳐

20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되느냐에 대해  위헌도 합헌도 아닌 "헌법불합치"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여성계는 물론 환호했다. 오랜 세월동안 싸워왔기에 그 감격도 남달라서 4월 11일 하루 SNS에서의 페미니스트들은 너도나도 오늘 하루는 마음껏 기뻐해보자, 는 취지의 글들과 인증샷들이 넘쳐났다. 


프란의 낙태죄 폐지집회 이미지 / 링크참조: https://www.facebook.com/PRAN.issue/videos/2387922437993942/?__xts_


공교롭게도 4월 11일은 내 양력생일이었다. 생일선물을 받은 기분이긴 했다. 이제 더 이상 낙태할 일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면 과대망상일까? 

임신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음에도 낙태나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스토리들은 여전히 내 마음을 심하게 움직여 어떤 경우에는 몸까지 아플 정도였다. 가슴이 아픈 건 기본이고 눈이 뜨거워지고 숨 쉬시기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낙태나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나에게 간접경험일 수가 없어서...내 몸으로 겪어낸 여전히 생생한 경험이기에...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이 괴로웠지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아, 아프구나, 여전히 아프구나, 앞으로도 아프겠구나...그렇게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기 시작한 게 오래되지 않았다. 마흔이 넘어서야 가능했다. 그 전에 치러야했던 고통들은 굳이 돌이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이제 낙태죄가 폐지되는 과정으로 향했으니 된 것이다. 나는 이제와 그것이 죄가 아니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거면 되었다.

난 내 낙태의 경험과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이렇게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있는 분노를 느낀다. 

낙태죄 폐지에 여전히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이다.

그들의 반대는 구체적이지 않다. 적어도 직접 경험한 이들에게 그들의 반대는 어불성설이다.

겪어보지도 않고 하는 옳고 그름의 훈계 따위...여전히 고통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가당찮은 소리인지...

그래, 이 분노도 되었다. 이제 그 가당찮은 소리가 최소한 법적인 테두리에서는 힘을 못쓰게 되었으니 되었다 치다.


얼굴책에서 돌고있는 낙태반대론자들의 게시글




그럼에도, 그래서!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대한 결정권한이 여성에게 오롯이 넘어오는 이 과정이 반가우면서도 마냥 들뜨지만은 않은 것이...그래서 그 책임까지 모두 오롯이 여성에게 떠맡겨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절대 '의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의무와 책임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아 보이지만 사실 '자발성'이라는 가장 크고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해야 되니까 하자'랑 '이건 내가 하자'는 마음의 차이이고 그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서 보여지곤 한다.

 책임감을 갖고 하는 일과 의무감을 갖고 하는 일은 태가 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의무가 아닌 책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책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이제 어쨌든 우리는 낙태가 죄라는 입장에서 어설프게 자유로워졌다.

이 어설픈 자유(여전히 직접 겪지도 않은 이들의 혐오적인 반대가 짙게 깔려 있으므로)를 책임과 권리로 받아안으려면 당사자들이 더 나서야겠다. 그리고 그 당사자들은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되야 한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결국 책임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때도 되었다. 


여성에게 '의무'로 뒤집어씌워 유지되던 세상은 이제 끝나는 과정에 공식적으로 놓였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출산율이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도 결국 그 냉정한 상황을 반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권리나 의무가 아니라 '책임'이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이 사회가 우리 각자가 어떻게 책임지려는지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더 논의되어야 한다.


일단 현재는 낙태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들이 법률로 정해질테고 

그 법률의 내용들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임신초기에는 낙태에도 건강보험료가 적용되고 그 이후에 낙태되는 아이는 장례를 치르도록 한다는 식으로 벌써 논의가 진행되는 중이다)

중앙일보 4월 12일 기사. 링크참조: https://news.joins.com/article/23438851?fbclid=iwar0uy68zq8ps3yfitrm61crhxqk52


이 논의의 양상에 따라 여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리라 본다.

임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된 임신, 혹은 예상치 못한 임신에 대해 파트너가 어떻게 동참하고 책임지려 는지를 여자들은 살펴보며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선택에 따른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 '결정'들이 어떻게 사회를 바꿔나갈지 기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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