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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박선영 Jul 19. 2019

그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리뷰

세계사의 변곡점 위에 섰던 비범한 그녀들의 강렬한 연설에 꽂히다!

어쩌면 내 엄마에게서 듣고 싶었을...

연설이란 다분히 정치적이다. 연설자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대중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그 연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아는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나의 은사님이 정치를 하려면 언어적 능력이 가장 필수적이다, 라고 하셨는데 당시 이해하지 못한 말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아니 그 때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래, 정치인은 자고로 말조심을 할 줄 알아야지'라고 이해했다면 지금 나는 '정치인이라면 이렇게 말할 줄 알아야지'라고 발전된 이해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정치'와 대중 앞에서 하는 '연설'들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살았을 것 같다. 그 부정적인 이미지는 나의 경우 엄마의 영향 때문에 특히 의외로 사실 뿌리깊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엄마가 자주 떠올랐다. 

엄마는 타고난 정치꾼이었다. 나중에 좀 커서 엄마의 성장배경을 살펴보니 외가쪽이 그러니까 엄마가 나고 자란 환경이 친정치적이었다. 정치를 하려는 사람, 정치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 정치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이들이 득시글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것이다.

그런 엄마가 가난한 아빠와 결혼해 아이를 셋이나 낳고 부족한 환경이지만 안정적으로 아이를 키워내고자 열심히 살자니 당신의 정치적 스킬이 발휘되어야 했다. 멀지 않은 친척들에게서도 정보를 얻어냈고 그 정보는 곧 이익이 되었다. 엄마의 정치력은 점점 발전해 엄마는 동네 부녀회장을 했고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도 오빠처럼 열심히 다니며 선생님들과 무언가를 해냈다. 덕분에 오빠는 모범생으로 자랐지만 엄마의 레이더를 벗어날 수 없어 한참 사춘기에는 꽤나 힘들어 했던 것으로 안다. 

그래도 내 엄마라서 이래도 저래도 나는 좋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 아줌마들과 사이가 벌어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목격하고 나서야 엄마의 정치적 능력이 부담스러워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용돈을 주고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던 아줌마들이 내 인사를 받지 않거나 자기들끼리 내 엄마 흉보는 모습을 목격할 때면 마음이 좋지 않다 못해 ‘어린이’였던 나는 상처를 제법 받았다. 그래서 엄마가 제발 나서지 말고 그냥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엄마의 경제적 능력도 워낙 뛰어나서 엄마가 일하지 않으면 우리 가계에 어떤 타격이 오는지 영악하게도 알았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10년 이상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엄마의 그 정치력을 닮지 못했다는 사실이 한스럽다. 여자로 태어나 전쟁 이후 엄혹한 격변기였던 그 시절에(박정희 정권 이전부터 삼김시대는 물론 노무현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까지) 어딘가에서 정보를 얻고 이득을 취하고 그 이득을 불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임에도 나는 그 능력을 거부하기만 했다. 정치적인 여성의 부정적인 서사구조를 내 머릿속에서 엄마를 통해 답습했다는 뼈아픈 자각도 일었다. 내가 정치에 대해 정보와 이득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답답했다. 사실 정치는 그 이상이어야 하는 게 내 이상주의적 성향에 맞음에도 불구하고 잘되지 않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책 [그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를 통해 사람들 앞에서 나서 용감히 연설을 했던, 혹은 연설의 기회를 얻어냈던 그녀들을 보고나니 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을 찾은 거 같아 기뻤다. 노예제도 페지, 여성참정권 운동, 전쟁과 같은 세계사의 굵직한  변곡점에서 변화를 이끌기 위해 주도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섰던 그녀들의 말에는 분명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얻고자 했던 것, 그것을 얻은 후 꿈꾸는 삶과 세상은 지금도 유효했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밝혀져 있듯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 시절과 지금에 모두 맞는 말이 있고 그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러나 결국 어쨌든 그녀들은 대체적으로 그 때 그 당시 상황에서 맞는 말들을 했고 변화의 시점에서 그 변화의 정당성, 그것이 특히 여성인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녀들의 그런 용기와 지혜가 너무나 부러웠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고 존경심이 솟았다.

내가 엄마에 대해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볼 줄 알았다면 나는 이런 지혜와 용기를 더 가까운데서 손쉽게 얻었을 수도 있었을텐데...이렇게 오래 지나서 먼 나라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되는 나의 좁은 소견이 통탄스러웠다. 그래도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나는 정치적인 발언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 책의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분량이 여성의 참정권을 위한 연설들인데 그 내용을 풍부하게 읽을 수 있어 영광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진실에 성별이 있습니까? 
여성을 인류 진보의 척도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여성의 지위가 인류의 지위를 결정할 것입니다.”  
(페니 라이트, 사회개혁자, 스코틀랜드, 1829년 '지식을 획득하는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자유 탐구에 대해')

“남성에게는 보호하는 힘이 있다고 떠들어 봤자, 막상 위험이 닥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습니다. 일단 끔찍한 상황이 닥치면 여성은 남성이 있어도 홀로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의 신이 여자라서 더 편한 길로 인도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중략) 대체 누가 다른 영혼의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대신 떠맡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어찌 감히 떠맡을 수 있습니까?”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 여성참정권운동가, 1982년 ‘자아의 고독’)


‘우리는 세상의 멸망을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제 이 나라의 떳떳한 일원이며,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의 몫이 생겼으니까요.
지금 우리는 강렬히 소망합니다.
서로 죽이고 세계를 불태우는 것 말고도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부디 있기를!’
 (유타 보이센뭴레르, 덴마크 여성협회 의장, 1951년, ‘투표권을 획득한 우리의 승리를 기념하며’)


여성의 참정권과 투표권을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발언한 위 내용들은 지금도 몇 글자 바꿔서 여성혐오에 관한 연설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다. 그 외에도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 그녀들의 발언들이 빼곡해서 읽는 내내 나는  밑줄 긋고 색인하기 바빴다.


“내면화한 편견을 스스로 극복하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뜨거운 충고와 
“서로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엘리너 루즈벨트. 미국, 1954년 ‘교량으로서 유엔’)는  절대적 교훈, 
“가만히 있으면 변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푼밀라요 랜섬쿠티, 나이지리아, 1949년,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명확한 메시지,
 “한쪽 성이 다른 성보다 보호가 더 필요하다는 것은, 사회가 스스로 치유한다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그릇된 통념만큼이나 우스꽝스럽고 가치없는 남성우월주의자의 그릇된 통념”(셜리 치좀, 미국, 1969년, ‘남녀평등’)이라는 탁월한 비유,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목을 짓누르는 여러분의 발을 좀 치워 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사라 그림케의 말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인용, 미국, 1971년,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 사건변론)이라는 통찰력 있는 유머, 
“저는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일자리도 잃었습니다. 게이해방운동에 참여했다고 살던 아파트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여러분은 어째서 저를 이렇게 대하십니까?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실비아 리베라, 미국 LGBTQ 운동가, 1973년, ‘여러분 부디 목소리를 조금 낮춰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간절한 호소, 
“낙태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 중 몇 명이 곤경에 처한 여인들을 돕는 데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시몬 베유, 프랑스, 1974년, ‘낙태법 제정을 제안하기 위한 의회 연설’) 라는 마땅한 질문,

 “아버지 신은 쓰나미에 신경 쓰시느라 바쁘시지만 여신은 여자들과 연대를 이루어 조개를 줍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각자 더불어 하나가 되고, 서로를 바라볼 것입니다. 위를 올려다보며 아버지 신에게 구걸하지 않을 겁니다”(글로리아 스타이넘, 미국, 2017년, ‘여성의 행진 연설’)라는 선언...

들은 지금도 여성으로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 매우 유효하다.


그래서 이 책을 2/3 정도 읽었을 때 내가 깨달은 또 하나의 사실은, 여자라서 더 정치적이어야한다는 거였다. 여자니까 할 수 있는 정치라는 게 있다는 사실이 새삼 벅찼다. 그리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사소한 정치적 행위들이 나의 자존감과 사회적 위치와 관계된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틀어 나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어린 여자아이였던 서번 컬리스즈키가 환경과 개발에 대한 1992년 유엔회의에서 한 연설이었다. 이 연설은 다른 누가 아닌 나부터 변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켰다.


(앞부분 생략)
“비록 저는 화났지만 눈멀지 않았습니다. 비록 무섭지만,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 세상에 소리쳐 말하기를 주저하지도 않을 겁니다.  
학교에서 심지어 유치원에서조차 어른들은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싸우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이를 존중하고, 어지른 것은 잘 치우고, 다른 생물을 해치지 말고, 함께 나누고 욕심 부리지 말라고요. 
우리한테 하지 말라고 한 그런 행동들을 왜 어른들이 하시는 건가요?
(중략)
 하지만 제가 보기에 어른들이 더는 이런 말을 우리에게 해 주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른들 목록에서 우선순위이기는 한가요?
어른들이 하는 행동은 밤마다 저를 울립니다.
어른들은 항상 말로만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 같아요.
부디 말씀하신 대로 행동해 주십시오.”


이 외에도 이 책에서 가져갈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 여성 과학자들이 발견한 훌륭한 성과들, 여성으로 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한 사례들, 인권과 환경을 위해 여성들이 감내한 공헌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키워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54명 여성들의 연설과 그연설에 언급된 여성 명사나 유명한 일화들까지, 그리고 그녀들이 관련된 정치, 환경, 노동, 인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이슈들까지 해시태그하자면 100개가 훌쩍 넘는 해시태그가 생성되리라.               

이런 내용의 한국여성들 버전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슬그머니 해본다. 


#그렇게이자리에섰습니다 #여성연설문 #훌륭한여자들넘나많아 #그책다내가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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