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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박선영 Dec 10. 2019

죽음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편집 비하인드 스토리 - 번외편

죽음은 절대 끝이 아니라는 말을 나는 시쳇말처럼 생각했다. 죽어서라도 끝을 내야지, 죽어서도 끝이 아니라니 너무 고단하잖아,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고스트 스토리>의 컴퓨터 교정을 마치고 나는 '죽음'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교정단계는 출판사 또는 편집자마다 다르지만 나는 4단계 이상의 교정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가 바로 컴퓨터 교정이다. 컴퓨터 교정을 볼 때는 작가가 보내온 원고를 컴퓨터에서 디자이너가 1차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형태로 교정하는 과정이다. 가장 손이 많이 간다. 타이틀과 중제, 부제, 소제, 이미지 배치, 인용문, 타이틀 등 원고가 책으로 나올 모양을 고려해 정리해야 한다. 그 이후 교정은 디자이너가 편집 디자인한 파일을 출력해서 교정한다. 이 출력여부도 편집자에 따라 다르다. )




그리고 우리 주변에 죽음 이후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긴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삶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것들이 끝끝내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해 결국은 죽음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눈에 훤~하게 보이는 죽음들. 죽음을 향해 갈 수 밖에 없던 사람들.


<페미니스트 고스트 스토리>의 컴교를 보는 동안 내가 간간히 확인할 수 있던 뉴스들은 U2공연에 화면으로 나혜석, 이태영, 박경원 등의 한국 1세대 페미니스트 아니 전설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리고  서지현 검사나 이수정 교수, 거기에 설리의 얼굴도 이어서 등장했다는 것과 그 기사의 댓글들이 망했다는 거였다. 


교정이라는 작업이 편집자들 사이에서는 '엉덩이 싸움'이라고 불릴 정도로 (엉덩이는 의자에, 눈은 원고에서 떼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 오로지 원고에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어서 나는 그 쯤에서 인터넷을 껐다. 심난했고 나는 교정에 최대한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심난포인트는 이랬다.


U2의 공연에 화면으로 등장했던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중 현 세대 사람으로 가장 젊은 여성이었던 설리는 죽음을 맞은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는 것. 나는 설리의 죽음으로 충격받았고 구하라의 죽음에는 절망했다. 물론 그녀들 자신이나 그녀들과 같은 세대 여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젊은 여성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은 괴로움을 넘어서는...분명 '절망'이었다.

사실 그녀들  외에도  불법촬영으로, 낯선 이의 스토킹으로, 연인의 폭력으로 죽어나가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지...그 숫자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통계가 있다고 해도 나는 못믿겠다. 삶과 죽음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인과관계를 숫자로 정리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가정폭력을 옆집에서 동네에서 어쩌면 가깝게는 우리 집 안에서 흔히 목격하며 자란 내 세대 여성들에게 유명 여자 연예인 몇몇의 죽음은 아주 먼 다른 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가깝게 체감으로 느껴지는 공포와 절망일 수 있다. 

게다가 그녀들의 그 짧은 삶은 너무나 투명했어서,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파헤쳐진지라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으로 향했는지 너무나 잘 보였다는 점은, 사실 소름 끼친다. 

왜 그렇게까지 한 여자의 일상을 간섭하고 판단하고 좌지우지하며 침범했을까?

이건 그녀들만의 문제일까?

여자들의 일상이 타의에 의해 침범당하는 사례들...그 침범은 결국 삶에 대한 침범이 되고야 말았다.


그리고 속터져하며...나는 다시 교정작업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페미니스트 고스트 스토리>의 이야기들은 내 심난함과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2010년도에 인도에서 출판된 원제 The washer of the dead의 이야기에서 인도,라는 계급이 있고 여성혐오가 심각하기로 유명한 이 곳의 여자와 아이들이 생애 내내 침범당하고 있었다. 나는 이 17개의 단편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구분해 나눴고 15개의 단편을 편집했는데, 그 모든 이야기가 숨막히게 아름다우면서도 슬펐고 비장했다. 

여자들은 여러 의미로 죽음을 맞았다. 육체적인 죽음, 정신적인 죽음...사랑하는 이의 배신과 폭력에 대한 분노로 미쳐버린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신적인 죽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딸이 남편에게 강간당하자 귀신이들려 마을 여자들과 함께 직접 남편을 살해하는 스토리라인의 '빙의',나 아픈 남편을 위해 물 한모금 훔친 죄로 조리돌림을 당한 여자가 벌거벗고 항의하며 군중집회을 일으키는 '벌거벗은 귀신'에서는 분노를 에너지 삼아 정의를 직접 구현하는 살아있는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정말 모든 단편들에 귀신이 나오는데 그 귀신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귀신도 있고 살아서 귀신의 힘을 사용한다거나 살아 있는 채로 '죽음'을 인용해 '정의'를 구현하기도 하며 귀신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기도 한다. 

이처럼 귀신이 다양하게 우리 곁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며 슬픔, 분노, 좌절, 절망을 넘어서는 생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나의 종합적인 평가다.


일차인 이 컴퓨터 교정을 마치고 나니 오랜만에 글로나마 인도여성들을 직접 만난 기분이 들어서 반가웠다. 잠깐 미국에서 살았었는데, 만난 인도 여성들은 하나 같이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들이었다. 계급이 높은 여성들이기 때문이었겠지만, 나는 경험으로 인도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벗을 수 있었다. 그게 계급이건 돈이건 힘이건간에 뭔가 장치 하나만 갖추면 자기 주장을 바로 내세울 있는 강력한 존재로 나에게 이미지화 인도여성들.


인도의 야권 지도자가 "강간의 수도"가 되었다며 탄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관련기사링크 - https://news.v.daum.net/v/20191208172507598?fbclid=IwAR0YraiJXz2uDBCjrtuQ6DPJ_zm5Mdol6JpqevWM6wwdA6940MVVegpFXYE)

그러나 나는 이 인도에서 살아내는 여성들의 '죽음'이야기를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간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생존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귀담아 들어야 할 고귀한 정보다. 



아직 출간을 위한 펀딩 중이고, 여전히 100%가 달성되지 않았지만 나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죽음'을 통해 생에 대한 의지를 이야기하는 책을 편집하는 편집자로써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결과에 연연할 게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 의지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 필수 참고링크 : 텀블벅 [페미니스트 고스트 스토리] 펀딩

https://www.tumblbug.com/ifbooks10


*** 참고링크 

90만 회원을 확보한 굿리더스닷컴의 The washer of the dead 글로벌 리뷰정보

https://www.goodreads.com/book/show/8784134-the-washer-of-the-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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