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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박선영 Mar 24. 2022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짓말

#어쩌다_일중독

워낙 이 일 저 일 마구 벌이고 다니면서 살았던지라, 그렇게 47년을 살았더니 주변의 아주 가까운 지인들조차 “어찌 그렇게 여전히 지치지도 않고 일을 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리가. 지치지 않을 리가 없다. 매번 지치고 후회하고 낙담하고 좌절도 한다.


10대에는 벌이고 도망갔고 20대에는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30대에는 현실을 부정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40대가 한참 지나서야 도망도 부정도 망연자실도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벌인 일을 내가 수습하지 않으면 결국 더 큰 규모의 무엇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달까.


그래서 지금은 대체로 내가 벌인 일을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는 태도가 생겼다.

처음 기획 또는 계획했던 것과 일은 늘 다르게,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을 안고 흘러가지만, 그 상황들에서 멘붕을 최소화하고 일을 마무리할 동력을 얻으려면 ‘초심’을 꺼내봐야 하더라.

맨 처음 그 일을 하려고 했던 내 마음, 생각, 의도들을 다시 돌이켜본다. 이 상황에서 그에 맞도록 조정할 수 있나? 혹은 내 마음과 생각과 의도들이 이 상황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해결의 방법 또는 어질러진 상황을 정리할 방향이 보이기도 하고 초기 기획에서 내가 놓쳤던 현실적인 사항들이 보이는데... 실은 그 순간 좌절한다.

그 순간 내가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반복하는 실수는 ‘상대방을 오해’하는 것이다.

일을 벌일 때 함께 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꾸 내 식대로 오해를 해버리고, 그래서 상대방이 원하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했거나 또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강요하게 된다.

그래... 강요는 아니라고 치자. 강요하지는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설득인데... 아마 나의 그런 설득들이 상대방에게는 결국 강요였을 것이다. 나는 설득이지만 상대방에게는 강요라는 이 사실을 안다고 생각해놓고 사실은 매번 까먹는 것이다. 먹을 게 따로 있지... 왜 매번 그걸 까먹는지...


그래서 내가 또 내 입장과 의도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에게 애를 쓰며 설득하려고 하고 있구나가 느껴지면 입을 다물게 되었다. 상대의 이야기에 나름 귀 기울여 듣고 일을 거기 그 지점에서 수정하거나 멈추거나 되도록 그 사람이라도 그 일의 굴레에서 상처받지 않고 빠질 방법을 그와 함께 논의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벌인 일을 마무리하는 현재의 내 방식이다.

그 방식에는 비용이 추가되고 내 노동이 대가로 지불된다. 오로지 내 깨달음을 동력으로 현실 노동은 내가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미련해 보인다는 소리도 듣고, 영리하지 못하다는 핀잔도 들었다. 그러나 그래서 그럼에도... 나는 또 일을 벌이고야 만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 결국 얻고야 만 관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좌절감과 무력감이 싫은 거지 사람을, 일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일하지 않았고 정말 죽기보다 싫은 일이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지친 거지 싫은 게 아니라는 것, 힘들지만 내가 얻는 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가끔 나는 싫은데 할 사람이 없어서 그 일을 내가 대신하고 있다, 라는 태도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나로서는 정말 안 보고 살고 싶은 태도와 사람이다. 정말 싫다면 그만두고 그 일이 공백이 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공백이 누군가의 절실함으로 채워져 절로 굴러갈 수 있도록.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싫어서 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일은 끔찍한 모양새를 띌 수밖에 없고 결과도 엉망진창이 되고야 만다. 시스템이 그 엉망진창을 어느 정도 메워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글세 언제까지? 얼마나? 왜 그렇게까지? 이런 해도 마땅한 질문을 안고 오늘도 일하는 중~


덧) 그래서 그런지 돈은 많이 벌지 못하고 있... 이게 함정이라... 너무 중요한 정보라 ^^;; 굳이 덧글로 밝힘.     


여기서 잠깐) 요즘 이프북스가 준비하는 신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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