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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박선영 Nov 24. 2022

늦어도 내 나이 육십에는...

세 가지 노동의 굴레에서도 놓지 못하는 꿈에 대해

출판을 시작한지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 2000년에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에 입사하고 5년간 근무했던 시절까지 합치면 글 쓰고 책 만드는 일만 10년을 한 셈이다. 숫자로 내가 일한 세월을 가늠해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씁쓸하게도 "이제 정말 한 번쯤 쉬어줄 때가 되긴 했구나" 생각부터 밀려온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아침부터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길래 오늘은 긍정적인 기운을 끌어올리기 위해 밝은 미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내 모습을 소리내어 말해봤다.


"늦어도 내 나이 육십에는 카페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 카페에는 손님이 많지 않지만 단골들이 있을거야.
동네 빵집의 맛난 빵을 그 카페에서 먹을 수 있을 거고, 커피도 제법 괜찮을거야. 향기도 좋고 너무 쓰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진한 커피일 거고, 그래서 그 무난함에 손님들은 편하게 몇 천원 기꺼이 낼 거고...
단골들도 소란스러운 사람들은 별로 없고 다정한 편이라, 눈 한번 찡긋, "어서오세요" 한 마디 인사면 충분히 기분좋게 있다 가는 곳이겠지. 소란스럽고 신세한탄 하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진 않아. 가끔 와서 신세한탄과 목적없는 넋두리를 하는 그 손님에게는 말없이 웃어주기만 할 거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반짝반짝 닦고 쓸고 커피향을 가득 채운 카페에서 책을 펴고 앉아 졸고  싶어. 카페의 적막함에 불안해하지 않았으면...그러다 누군가 들어와서 다시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를 하고 기계를 점검하고, 손님들의 수다소리를 ASMR처럼 듣는 것도 좋겠어.
그런데 내 나이 육십에 그 정도의 노동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되는 지점은 그거였다. 내가 그 정도의 노동을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카페를 임대하겠다는 거냐, 분양할 거냐, 돈은 있냐? 어느 지역에서 열거냐? 인테리어는 또 어쩔래? 창업과정을 알고는 있냐...이런 거 다 나한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법을 알아보고 상황에 맞추면 되니까...나는 ENTJ니까!! ^^;;

그렇지만 육체적으로 그 노동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적어도 나한테는...왜냐하면 지금 책을 만들면서 하는 노동이 육체적으로도 버거울 때가 있어서이다. 세상 육체노동 아닌 것 같은 책 만드는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면...사실 정말 몸으로 떼워야 하는 카페 노동을 지금보다 10년이 지난 체력으로 할 수 있을까?

나의 긍정회로가 탁, 하니 막히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오로지 책 만드는 노동만 하는 게 아니다.


공식적으로 여기저기 절대 알리지 않고 있는 활동이 하나 더 있다...요즘 내가 도서관을 운영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3월에 '사립 작은 도서관' 등록을 마치고 벌써 8개월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500세대가 되지 않은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이다. 아파트 입주할 때부터 예비 입주자 대상으로 배포한 카탈로그에, 온갖 광고홍보 문구에 이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분양 당시 나는 도서관이 있는 아파트라는 게 마음에 들었고, 근처에서 오래 살았던지라 아파트 입지에 대한 정보도 많아 교통, 의료, 기타 생활에 보탬이 되는 각종 작은 상점들이 알차서 살기 좋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도서관이 입주 4년차가 되었는데도 열리지 않았다가 작년 연말부터 저녁에 가끔 열려 있길래 어느 날 저녁 무심하게 도서관에 들어갔던게 화근이었다. 결국 나는 그 다음 해인 올해 3월에 도서관 운영위원회를 내가 꾸려 운영위원장이 되어버렸다.


내가 처음에 들어갔을 때의 도서관 상태.
가장 최근에 찍은 도서관 전면...양 옆에도 공간이 있는데 한 화면에 다 담기지 않아서...여기 이 공간 다시 꾸미는 과정에 대해 정말 할 말 많은데 하지 않겠다. ㅜ..ㅠ

되어버렸다는 표현이 그 모든 과정에 상당히 적합한데...그 모든 과정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날 그 저녁에 도서관에 들어간 게 아니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냥 책이 우후죽순 쌓여있는 그 공간에 혹시 내가 만든 책이 있을까? 내가 아는 책은 얼마나 될까? 궁금했을 뿐이다.

돈을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들어가서 볼 수 있잖아? 이런 단순한 생각. 이런 젠장...지금 생각해도 시계를 거꾸로 돌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들어가지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ㅜ..ㅠ

(억울하지는 않다. 그 모든 과정이 내 판단과 선택이었으니.)


문제는...책을 만들기 위해 기획하고 섭외하고 편집하고 홍보하는 노동도 손목이 시큰거리고 머리가 딱딱 아프고 시간이 부족한데,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챙기면서, 도서관까지 운영하게 되고 보니 정말 시간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문제는 또 있다. 도서관의 노동은 전혀 금전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주로 기혼여성들이 비급여로 지역의 작은 도서관에서 무급으로 공간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최근 자원활동가에게 활동비가 지급되는 사례를 하나 들었는데 정말 말하기도 민망한 액수였다.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활동비를 3~4명의 활동가가 나눠받는 식이라는데...그것도 정확치 않다.  이 경우는 아파트 내 위치한 작은도서관이고 활동비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립 작은 도서관들에게는 지자체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있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도서를 구입하거나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에만 쓰일 수 있어서 도서관 활동가에게 급여나 활동비로 지급할 수 없다. 지자체든 기관이든 "지원금"이라고 이름 붙여진 돈은 내부인건비로 쓸 수 없다는게 국룰이다. 리얼 국룰.

그나마 지난 9월에 도서관법 시행령 개정내용에 작은 도서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독소조항이 있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기사참조 -> 오마이뉴스 이영일 기자. 도서관이 찬밥? 도서관법 시행령에 서명운동 https://blog.naver.com/ngo201/222884709383 )


그런데 내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은 이제 막 오픈했어서 이런 지자체 지원금조차 받지 못했다. 한 달에 십만원의 지원금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받는데, 그걸로 신간을 구입하고 인터넷과 전화통신요금을 지불하고 나면 끝이다. 그냥 딱 한 마디로, 도서관에서의 내 노동은 금전적 댓가를 전혀 받을 수 없다.


금전적 대가를 바랄 수 있는 내 유일한 노동은 출판, 책을 만들어 파는 것이다. 그 노동이 제일 힘들고 적든 많든 어쨌든 경제적 가치로 매겨지고 그래서 보람도 크다. 하지만 그래서 지친다는 게 함정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하느니만 못하니까.

그렇다고 나머지 두 가지의 노동, 아이를 키우고 도서관을 지키는 노동은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리가...없다.


결국 나는 하루에 세 가지 노동의 굴레를 쳇바퀴 돌면서 늙어가는 중인데, 하나는 책 만드는 일 둘은 아이들의 양육 셋은 도서관이다. 나의 24시간은 세 가지 노동으로 꽉 차서 잠 자는 6~7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무엇인가를 하는데...뭔가 보상이 없다. 내면의 성숙? 하! 그래...이러다 도인 될 것 같기는 하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내 상황에 맞는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향 가득한 작은 카페를 여는 내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하고 거의 미스테리에 가까운 이 꿈을 위해 오늘의 현실을 살고 있는 중이다.


메인이미지 사진촬영은 서대문구 초콜릿책방에서

이미지에 보이는 다이어리는 현재 내가 기획해서 샘플로 제작된 2023년 다이어리로 텀블벅 펀딩중이다.

(펀딩링크 : https://tum.bg/MEU8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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