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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박선영 Apr 14. 2023

곁에 없는 존재를 그리워 하는 일

슬픔과 거리두기, 잘 살펴보기...될까?


주변이 심상치 않다. 가족이나 친구를 불의의 사고로, 병으로, 기타 예견할 수 없는 이유들로 잃는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친구를 잃었다. 몇 년 동안 하나 둘...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아빠가 갑자기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고 3년째 되던 해에 엄마도 아빠 따라 가셨다. 나는 엄마가 내 곁에 좀 더 내 엄마로 있어주길 바랐지만, 투덜대면서도 일상이 '남편' 중심으로 운영되던 엄마는 조금씩 궤도를 이탈하더니...가셨다. 규칙적인 식사도 저리 치우고, 운동도 다 귀찮아 하고, 세상 모든 일에 대한 호기심을 점차 끊더니...병원에서 앓다 씩씩하게 일어날 생각없이 가셔 버렸다. 

그 후 한동안 나는 두 아이와 고양이 두 마리와 남편까지 모두 수컷들과만 함께 살았다.

그러다 두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콧물의 원인이 심각한 수치의 '고양이 털 알러지'로 밝혀진 다음에는 두 고양이와도 헤어져야 했다. 두 고양이 녀석들이 태어나 내가 녀석들을 데려왔던 경기도 어느 시골의 한 선배 집에 녀석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온 그 날 밤새 나는 소주를 한 병 다 마시고도 잠들지 못했다. 


엄마 아빠를 잃은지 얼마 안되고 나서의 일이어서 타격이 컸다. 어째서 잃는 것 투성이인 삶이 되어버렸는지 화가 나서 슬펐고, 누구를 탓할 수 없어서 무기력에 빠지는 나날들이 계속되는 내 인생의 겨울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부터 가끔, 아주 가끔 고양이들을 만나러 선배네로 다녀오곤 했다. 한 마리는 날 본 척도 않고 숨어서 발만 빼꼼 보여줬고, 다른 한 마리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눈물을 애써 삼키고 털을 빗겨주고 쓰다듬어주고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하고 한숨만 쉬다 시간에 쫓겨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두 고양이와 내가 함께 살 때 가장 곤란하고 해결이 안되는 점은 이 두 고양이가 외출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미국에 잠깐 있을 때도 함께 살았는데...그 때는 오히려 외출하도록 그냥 두었다. 넓은 초원을 산책하고 돌아올 때 토끼도 잡고, 새도 잡던 사냥본능이 아주 거셌던 녀석들이었다. 

서울로 돌아오고나서는, 이 사냥본능 거센 녀석들과 돌쟁이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게 서로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녀석들은 나가고 싶어했고, 서울의 길거리는 녀석들에게 너무 위험했다. 나는 일주일이 머다하고 길거리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죽은 고양이들을 보는데, 녀석들의 산책을 어떻게 허락할 수 있나. 나는 완강했다.
녀석들의 자유는 완전히 박탈당했다, 나에 의해서.

솔직히 그 괴로움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치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의 알러지 수치를 확인해서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나는 나와 함께 사느라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녀석들에게 나 대신 자유를 줄 명분이 생겼으니까. 

그런데 그 자유가 결국 녀석들을 무지개다리로 안내했다.

내가 가끔 아주 가끔 방문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던 녀석이 어느 날 꿈에 나왔다. 어느 빛나는 언덕에서 아주 깨끗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에게 눈뽀뽀를 했다. 나는 다가가서 쓰다듬고 실컷 안고 주저리주저리 그리움을 털어냈다. 너무 선명한 꿈이어서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선배, 꿈에 쭈니가 나왔어. 너무 선명해서...혹시 무슨 일 있어요?"
"아...그래, 세상에...그랬구나. 안그래도 전화할까 했어. 걔 산책 다니잖아. 그런데 벌써 며칠 째 집에 안들어오고 있어. 가끔 그랬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도 통 느낌이 좋지 않은 중이었는데...너한테 다녀갔구나. 세상에...너한테 인사를 하고 갔네."


나는 그때 할 말을 잃었을까? 그냥 두 눈을 질끈 감았던 것 같다. 언제고 있을 일이었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겠지. 삶의 무게에 그리움의 무게까지 얹고 싶지 않았던 본능적 선택이었다.


모른 척 한다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 그리움인데도, 어리석게 늘 그리움을 슬픔과 등치시키고 외면하는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지금은 좀 달라졌냐?" 묻는다면..."사람 변하는 거 봤어요?"라고 답하겠다.


안변했다. 아마 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에게 그리움은 슬픔이고 슬픔이라는 감정은 두려움 그 자체다. 

여전히 언제나 늘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리워한다고, 슬퍼한다고 다시 되돌려받을 수도 없지 않은가!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그 어쩌란 말인가,에 대해서 자기만의 해답을 찾은 사람의 글을 요즘 출간 작업하고 있다.


인도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작가의 글인데 이 글에서 작가는 자기 반려묘 '수키'와 대화를 한다. 

이 대화는 반려묘가 살아있을 때도,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후에도 계속 된다. 

기억 속에서 수키와 나눴던 대화를 끄집어내고, 아직도 주변을 맴도는 수키에 대한 그 모든 기억과 생각을 수키와의 대화로 기록했다. 불교식 명상을 통해 내재한 동물적 본능 또는 자아 중 하나로 수키가 남았음을 확인하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너를 보내 슬프지만, 넌 여전히 내 곁에 있어서, 세상에 진짜 아무렇지 않구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랄까. 


슬픔에 젖어 있을 필요는 없지만 슬픔과 거리두기를 하고 제대로 보는 건 필요하구나! 깨달은 지점이었다.


난 여전히 슬픔에 몰빵할 생각이 1도 없지만...좀 제대로 한번 볼까? 하는 마음은 생겼다.


사람 갑자기 변하면 안되니까...오늘도 그렇게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여볼까, 어쩔까? 

되긴 되려나 싶고...그렇다.^^;;


https://tumblbug.com/ifbooks20


#집사라면 #고양이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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