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도 이제 현실로 성큼 다가올껄?
오랜만에 영화 장화홍련을 봤다. 아주 오래전에 개봉했을 때 보고 제대로 다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몇 년 만인지...
어쨌든 이번에 보니 다른 게 보였다. 가부장제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여자들의 비극이 거기 다 있었다.
가부장제 안에서 부패하고 죽어가는 여자 엄마,
그 죽어가는 여자의 슬픔을 오롯이 안고 질식해 죽은 딸 수연,
그 죽어가는 여자의 남편을 욕망하면서 뒤틀리는 여자 은주,
죽어가는 여자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미쳐버린 딸 수미...심지어 그 모든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모든 현실안에 같이 있으면서 발작해버리는 여자 미희까지...행복한 여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미희는 잠깐 나와서 모든 분위기를 낯설게 하고 의문을 품게 하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남편,이라는 욕망하던 존재와 가치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뒤틀리는 여자는 결국 자기 자신의 죄를 직면해야 했다. 죽어가는 여자, 엄마로부터 지켜줘야 했을 것들을 빼앗은 죄와 미쳐가는 딸, 수미로부터 털어놔야 했을 진실을 마주해 버린 것이다. 그건 그래, 분명 공포일거다. 이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에도 그 지점이 가장 비판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째서 남편이자 아버지는 그토록 무능하고 바보같단 말인가. 모든 걸 목격하면서도 모든 걸 모르는 게 말이나 되나 말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말이 된다. 몰라도 되니까 모르는 거다. 안봐도 되니까 안보는거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현실은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시대를 살고 있는 남자들은 모르는 척 할 수가 없고 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자꾸 드러나고 있으니까. 그것도 뻥! 뻥! 어느 잡지 표지에서 뻥! 어느 노래방 공용화장실에서 살인사건으로 뻥! SNS 단체메시지가 공유되는 바람에 뻥!
이제껏 용케 숨겨왔던 것들이 드러나고 폭로되고 이야기되고 비판도 받게 되었다. 지금 이 시대의 아들을은 아버지들,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 모두 전 인생에 걸쳐 유일하게 피할 수 있던 그걸(가부장제의 기득권이어서 여자들보다 잘난체하며 살 수 있었다는 사실) 아니 이제껏 그들이 피해왔기에 눈덩이처럼 더 커지고 악독해진 그 댓가들을 치루게 될 것 같은 이 느낌이...그저 억울하기만 할까?
그 억울함을 풀 대상을 다시 여자들에게로 향하는 어리석음은 그저 억울함에서 기인한 것일까?
어쩌면 남자들은 자신안의 공포를 한번도 제대로 인지해본 적 없는 건 아닐까?
죽기 직전까지 끝끝내 부정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가는 건 아닌지...
어쨌든 이렇게 저렇게 이런저런 현실들을 다 감안해보면...
여자들은 공포를 공포라고 말할 수 있고 떠들고 있는데 남자들은 끝끝내 외면하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 성별 구조로 이야기하는 건 나도 못마땅하지만 현실이 개차반으로 공포스럽다고 떠드는 대다수가 '여자'들 인건 사실이고 그 모습을 아주 객관적으로 지지하거나 비판하거나 비난하면서 관조하는 대다수가 역시 '남자'인건 현실이니...이 남자들이 '나도 무섭다, 우리 같이 고쳐보자, 노력하겠다. 도와다오~' 뭐 이렇게 손을 내밀 것 같진 않으니...그걸 기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린다.
그건 그렇고 나 같은 여자들은 그래서 오늘도 '닥치고 페미니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