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
2013.02.28
지독하게 길었던 취업 도전기를 끝내고 나는 내가 원하던 조건의 99%를 충족시킨 직장에 취업했다.
합격자 발표가 났던 그날 나를 가장 지지해줬던 가족과 함께 와인파티를 했다. 집에서 방방 뛰며 기뻐하던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난 나를 볼 수 없었지만 기뻐하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인사 갔던 첫날이 2월 28일.
2019.02.28
정확히 6년 뒤 나는 퇴사를 고했다. 2019년 2월 28일이었다. 부러 날짜를 맞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퇴사 후에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냥 알고만 있다. 아직 부딪혀본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들 눈엔 그저 어린아이의 무모한 결단쯤으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나의 마음에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며 '퇴사'라는 하나의 문을 열었다. 그래, 하나의 문을, 새로운 문을 열었을 뿐이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잠시 밖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이동)"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마무리하고 나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는 건, 어떤 딜을 위해서라거나 무언가 요구하기 위한 카드로 내민 게 아닙니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어서 울긴 했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울고 있었지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었다. 후, 나 이렇게 침착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었나.
사실 그날 아침까지도 생각 정리가 덜 됐다고 느꼈지만, 생각이라는 게 죽을 때까지 정리가 되겠나 싶었다. 행동하자고 결심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해보고 후회하자고.
"블라블라 블라(생략)" - 퇴사하면 힘들 거라는 얘기-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퇴사 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저는 제가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습니다. 그럴 각오도 되어있고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알아서 할게라는 얘기-
후, 나 이렇게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었나. 걱정해줘서 감사하다니.
충동적이거나 누군가를 극도로 원망해서 라기보다 '내 인생'을 생각했을 때, 어떤 선택이 옳을까를 중심에 두고 생각했다고.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라고. 순진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그게 제 결정이라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그만두는 건, 조직을 운영하는 관리자들에게는 적잖은 타격이 될 것이고, 또 기회도 될 것이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
근데 그래서 그게 뭐. 난 퇴사 후에 전 직장에 대한 뒷일은 관심 없으니, 내 뒷일에도 관심을 꺼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뿐.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뒷일을 물어보는 사람들의 질문에 내가 주눅 들거나 위축되지 않고 여유롭다는 게 신기하다. 쉴 건데 메롱.
일주일 뒤, 과장님과의 면담에서도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퇴사를 만류하던 과장님은 끝에 이렇게 말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얼굴에 그림자가 없고 방긋방긋 웃는 게 그건 보기 좋네"
"네, 제 인생에서 가장 다크 했던 시절을 과장님께서 보신 거라 ㅎㅎ 죄송합니다"
"ㅋㅋ 그래, 어쨌든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나가는 걸 막는다기 보다) 뒤에 갈데 정해놓고 가"
뒤에 갈데 정해놓고 갈 시간을 줘야 말이지. 퇴사를 고한 그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일을 했는걸.
퇴사를 고한 날의 전말은 이 정도이지만, 후에 나에게 다가왔던 미처 보지 못했던 동료들의 따뜻한 말도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진심의 얼굴로 걱정하는 사람들.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고한 날, 이후의 이야기는 차차 쓰는 것으로. 4월 중순 드디어, 퇴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