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와 함께 일주일 2편
우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주일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해산물 덕이 큽니다.
매일 밤 풍족하게 넘쳐흘렀던 해산물과 보드카. '고기<<<<<<<<해산물'인 우리에게 블라디는 천국이었어요. 일주일 동안 세 번의 저녁을 킹크랩으로 장식했고요. 가리비와 곰새우, 독도 새우를 배 터지게 먹기도 했죠.
고백하자면 전 대게나 킹크랩을 한 번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대게는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너무 소량이라 맛이 기억나지 않고, 킹크랩은 비싸서 제 돈 주고는 못 먹겠더라고요. 그래서 평생 먹을 킹크랩 다 먹고 온 것 같아요. (헤헤)
구글 평점이 높았던 '친절함'으로 무장한 가게
이번 여행 메이트는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였어요. 출발지가 달라, 저는 친구보다 5시간 일찍 블라디에 도착했습니다. 점심, 혼밥 할 가게를 찾던 중 '러시아 답지 않게 친절하고 깨끗하다.'는 평이 많고, 구글 평점도 높았던 'SVOY'로 향했습니다. 왜냐면 첫인상이니까 영어를 못해도, 혼자여도, 친절한 곳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가게는 깨끗하고, 편한 의자에 테이블 간 간격이 있어 좋았고요. 1층과 지하에 테이블 수도 넉넉했습니다. 들어가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에 맞는 메뉴판을 가져다줍니다. 제가 방문한 시간이 2시 30분쯤이어서 자리가 많았어요. 서버가 원하는 곳에 앉으라고 생긋 웃으면서 말해줬어요.
http://svoy-fete.ru/koreanl.pdf 스보이 페테 메뉴판 링크
메뉴판은 엄청났습니다. 고기부터 해산물, 수프, 샐러드까지 종류가 굉장히 많았어요. 음료 메뉴판도 따로 있는데 칵테일, 보드카, 맥주, 와인까지 다 있었어요.
스보이는 여러 명이 가서 해산물 모듬(게,새우,고동,오징어)을 먹었다는 후기가 많았는데요. 가격이 12만 원(대), 6만 원(소)이라, 혼밥인 저는 '극동로스트(가리비, 새우, 트럼펫, 오징어)'와 '크림 생강 소스에 잠긴 닭고기'를 선택했습니다.
음료는 스보이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SVOY BEER를 주문했고요. 맥주를 다 마시고 번역된 이름이 재밌어서 '모스크바의 율법학자'라는 칵테일도 시켰습니다. 보드카 베이스에 진저에일과 레몬을 넣었어요.
극동로스트는 올리브유에 구워서 담백했어요. 해산물들이 입에서 어찌나 살살 녹던지. 해산물 덕후 기준, 혼자 먹기 딱 좋은 양이었고요. 해산물 모듬이 양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아마 게가 들어가서 가격이 높은 것 같아요. 킹크랩을 따로 먹을 예정이라면, 극동로스트가 더 나은 선택인 것 같고요.
기대하지 않았던 '크림 생강 소스에 잠긴 닭고기'가 취향저격이었습니다. 크림 생강 소스가 닭고기 냄새를 잡아줘서 좋았고요. 깍둑 썬 감자를 튀겨서 주는데, 소스에 담뿍 찍어먹으니 맥주와 아주 찰떡이었습니다.
스보이는 가격대가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혼자 이렇게 많이 먹다 보니 계산서에 찍힌 금액이 1,800 루블쯤 됐던 것 같아요. 혼자서 3만 6천 원 치 먹어치운 꼴이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혼밥 하기 딱이었고, 기분 좋은 점심이었어요.
3일 밤 함께 했던 가성비 최고의 킹크랩 맛집
드디어 만난 여행 메이트와 첫날밤 식사를 고민했습니다. 저희 숙소는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아르바트 블라디보스토크'였는데요. 보드카를 사서 호텔로 돌아오는 우리에게 한국인 가족이 말을 걸었는데,
"여기 크랩팩토리가 어딘지 아세요?"
"음...? 아까 호텔 인포메이션에서 본 것 같은데. 우리 조식 먹었던 식당 아니야?"
"난 못 봤는데..?"
"나 봤어. 이쪽 호텔 입구로 일단 같이 들어가세요"
같이 들어가서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조식 먹었던 곳이 바로 크랩팩토리. 뭐야, 신기하잖아.
그래서 우리의 저녁은 크랩팩토리가 되었습니다. 정말 운명 같은 만남이었지요. 찾기도 귀찮고, 일단 킹크랩으로 시작하자는 마음이었거든요.
이곳은 불곰나라와 제휴를 맺고 있어서, 불곰나라 투어 고객에겐 1kg 1800루블하는 킹크랩을 1300 루블(한화 25,000원)에 제공하고 있었는데요. 뭐 아직 쿠폰을 받지 못했고, 우린 예약을 한 상태라고 말하니 할인을 해줬답니다. 사실 불곰나라 도보투어는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크랩팩토리를 발견해서 할인받은 것만 2000 루블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서버들은 서툰 영어지만 아주 친절하고 세심하게 케어해줬고요.
우리가 보드카가 있는데 가지고 와서 먹어도 되냐, 콜키지 가격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더니, 유레카. 따로 없고, 그냥 가지고 와서 먹어도 된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크랩팩토리와 우리의 만남이 운명적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때는 2019년 6월 중순 기준이라, 가실 때 상황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날은 킹크랩 1kg과 생 왕가리비 2개를 시켜서 먹었고요. 두 번째 방문엔 킹크랩 1kg과 생 왕가리비 2개, 생굴 2개를 주문, 세 번째 방문은 마지막 날이라 킹크랩 2kg(1kg씩 두 마리)와 구운 가리비 2개, 생가리비 2개를 주문했어요. 해산물 덕후라 욕심부렸던 것 인정합니다.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리더니 마지막 날 킹크랩 한 마리 다 먹고 나니, 이제 평생 안 먹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킹크랩은 다른 가게에선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첫날 먹었던 킹크랩이 살이 꽉 차고 맛있었고요. 두 번째는 살이 좀 덜 찼었고, 세 번째는 괜찮았습니다.
가리비는 꼭 드셔야 하는데, 생가리비 되도록 큰 사이즈로요. 아, 정말 이제까지 먹었던 가리비는 콩만 했는데, 이렇게 큰 가리비는 처음 보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요. 쫄깃한가 싶다가 입에서 녹는다니까요. 구운 가리비는 비추합니다. 살이 더 질겨지고, 비린 맛도 좀 나더라고요.
생굴은 1개당 5천 원, 제가 고집해서 먹었는데 그냥 한국 생굴이 최고예요. 굳이 유럽에서 굴을 먹을 필요가 없어요. (친구야 미안해)
서버들, 셰프님들과도 친해져서 마지막 날은 정말 아쉬웠어요. 셰프님이 저희에게 특별히 수프를 끓여주셨는데, 솔직히 블라디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손에 꼽게 맛있었답니다.
숙소에서 편하게 배달시키는 새우, 2kg 순삭
곰새우는 러시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새우 종류로, 식당에 가서 먹으면 가격이 비싸고 보통 배달시켜 먹는다기에 저희도 도전해봤습니다.
방법은 간단했어요. 카톡으로 안녕하새우 친구 추가를 하고, 홈을 확인하면 주문할 수 있는 링크가 있습니다. 배달시간과 장소, 새우 종류와 주문 수량을 기입하면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오는데요. 기사 얼굴 사진과 배달 오는 차의 차량번호를 보내줘요. 숙소 앞에서 수령 가능했고요.
독도 새우와 곰새우 둘 다 흐르는 물에 씻은 다음 따뜻한 물에 10분 정도 담가 뒀다 바로 먹을 수 있어서, 주방이 없는 숙소에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하, 저희가 새우를 너무 좋아해서 또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2명인데 곰새우 1kg, 독도 새우 1kg 총 2kg를 시켰는데요. (두 명에서 드시면 1kg면 충분할 것 같아요. 소곤소곤) 새우 살을 다 발라먹고 나서는 새우 머리를 치즈에 튀겨먹고(음?), 라면에 넣어 끓여먹었어요.(음음?)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당분간 새우는 쳐다도 안 봤습니다만, 먹을 땐 정말 행복했답니다. 낄낄.
킹크랩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소개해드렸고요. 다음 편에서는 블라디에서 손꼽게 맛있었던 디저트 가게를 소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