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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별 Nov 06. 2019

오빠는 이 글 안 읽겠지만

실화인지 허구인지는 안 알려줌


아, 오빠는 이 글 못 읽겠지만요. 아니, 안 읽겠지만요.


예전에 나한테 얘기했던 적 있죠? 사람들이 아무도 자기한테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괴로울 때가 있다고. 나이만 헛먹는 기분이 든다고. 사실 그때부터 오빠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요. 맞네. 그때부터 나는 오빠가 좀 싫었던 것 같아요. 물론 나는 영악한 인간이라 겉으로는 ‘오빠가 좋은 사람인 걸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 주위에도 있어요, 이를테면 나라거나’ 같이 번지르르하고 따뜻한 기운이 흘러내리는 말을 던지고 말았지만요. 어차피 다들 그렇게 살잖아요? 우리가 뭐 친구, 그런 관계도 아니고. 그냥 지인 정도일 뿐인데. 어차피 오빠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물론 나야 넉살 좋은 사람을 연기하고 싶으니 대놓고 만날 때마다 ‘오빠 오랜만! 우리 같이 계속 열심히 해요. 이 판은 한 사람 한 사람 안부를 다 묻고 싶어져요. 모두 대단한 사람들인 거 아니까! 일찍 죽었다는 말 들으면 진짜 가슴 아플 것 같거든요.’ 같은 말들로 너스레를 떨지만.


칭찬은 왜 하필 칭찬인가 생각해봤었는데, 칭찬(稱讚)에서의 찬(讚)이라는 글자가 찬(餐)이었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재밌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반찬 찬. 없어도 삶이라는 밥을 그냥저냥 꾸역꾸역 떠 넣을 수 있기는 한데, 오빠 인생에는 그 찬거리를 내놓는 사람이 하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알아요? 사실 인생이 하루아침에 짠하고 180도 뒤바뀌는 거야 쉽지 않겠지만, 1도 정도만 바꿔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 나는 오빠보다 한참 덜 살았지만 그걸 최근에라도 깨달았어요. 이 작은 삶의 진리를 나름대로 착한 마음을 가졌던 주변인이 말해줘도 오빠는 무시했겠지만 말이죠. 물론 돈이 없어서 반찬을 못 사는 사람한테까지 이 논리를 적용시킬 수는 없겠지만, 돈이 있는데도 반찬 타령을 하고 있는 사람은 솔직히 한심하잖아요. 일어나서 계란이라도 하나 부쳐 먹던지, 계란을 부치다가도 프라이팬을 태울까봐 겁이 난다면 반찬가게 문이라도 두드려보면 되잖아요. 자기가 해먹던가, 찾아 나서던가. 나는 그런 면에서 오빠가 싫었어요. 왜 오빠는 혼자만의 세계에 처박혀서 혼잣말만 주구장창 해대는 주제에 타인이 자기의 예술 세계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난리부르스인지. 그거 진짜 꼴불견인 거 알아요? 세상이 어느 시댄데. 요즘은 일반인들도 유튜브니 뭐니 해서 다 자기 사생활 공개한다고 난리예요. 세상이 그렇다니까요. 셀프 털이 시대. 과도한 티엠아이. 여기저기서 다들 나 좀 알아달라고, 나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난리치는 시댄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대화의 기본은 핑퐁이잖아요. 한 사람이 뭔가 쓸데없거나, 혹은 쓸모 있는 이야기를 해대면 다른 사람은 맞장구를 적당히 쳐주고, 조금 듣고 난 뒤에는 그 다른 사람도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비슷한 맞장구가 돌아오고. 이게 기본값이죠. 그런데 오빠는 일반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조차 별로 없는 거잖아요. 나는 그거 왜인지 알 것 같아요. 오빠가 남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줬던 건, 자기한테 좋은 기회를 준다고 느낄 때밖에 없었잖아요. 사람들이 왜 카톡 상단에 뜨는 생일을 보게 되면 속이 뻔히 보이는 연락이라도 주고받는 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사람들이 왜 꼭 새해 첫날만 되면 마음에도 없을 덕담 한 마디씩 주고받는 지 이유를 이해하지는 못해도 이해해보려고 한 적은 있어요?



그래요, 나는 오빠 별로 안 좋아해요. 오빠가 진짜 나잇값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거든요. 솔직히 가끔 그 생각도 했었어요. 저런 성격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했지. 물론 나도 뒤에서 나잇값 못한다고 욕먹는 인생이긴 하고, 아마 나중에 나보다 몇 살씩 더 어리지만 아이디어는 훨씬 더 많은 연하들이 나한테 내가 오빠한테 이맘때쯤에 가졌던 감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게 세상의 순리니까 이젠 반항할 생각도 그만뒀어요. 하지만 어쨌든 지금 내가 오빠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건 확실해요. 물론 나는 이걸 겉으로는 철저하게 숨기겠지만, 오빠가 내 글 같은 건 안 본다는 거 잘 알고 있거든요. 예전에는 그나마 칭찬이라도 번드르르하게 하려고 노력하더니. 나는 그냥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거라고 생각해서 떠보듯이 다른 지인들한테도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웬걸,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최근에 오빠한테 가지게 된 거예요. 이게 정말 오빠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끼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서 일어난 일일까요? 세상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나쁘고 오빠만 여린 사람 역할을 해도 된다는 신의 계시일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오빠한테 말하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거나 그렇지는 않은 조언이 하나 있어요. 남이 뭘 가져오기를 바라기 전에 자기가 뭘 좀 해볼 생각은 없는지. 사람들이 그렇게 혐오한다는 아부하는 족속들이 왜 아직도 세상 곳곳에 버젓이 살아 있는지 연구해볼 생각은 없는지.


내일 오랜만에 또 오빠를 만나겠네요. 신나요. 아마 오빠를 보고 온 날이면 내 휴대전화는 불이 날 게 뻔하거든요. 저 오빠 왜 저래. 혹은 저 형 요즘 좀 이상해. 그런 말이 날아오는 걸 보고 있으면 힘이 나요. 물론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겠지만요. 아 그래? 그렇구나. 대꾸는 중립에서 줄타기하며 적당히. 하지만 이야기할 맛은 나게. 시종일관 따뜻하고 활발한 미소를 띠고 있으려면 오늘은 일찍 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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