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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e May 25. 2016

비 오는 아침의 떡만둣국

마주 보고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빗소리가 들리고 흙내음이 나던 새벽. 장우산을 펴고 잠시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다. 빗소리가 좋아 창문을 열고 잤더니 부스스 내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화장실 앞에서 잠시 두 눈을 비비적거렸다. 밤사이 붙어있던 눈곱으로 뿌옇던 시야가 밝아지자 숨을 죽이고 있는 열무가 보였다. 엄마가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열무 두 단이 벌써 소금물에 잠겨 있었다. 찌뿌둥한 비 내리는 아침에도 엄마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딸, 오늘 아침은 뭐 해 먹을까?
떡만둣국은 싫지?


냉동실에 상비하고 있는 가래떡과 떡국떡에 딸이 질려하진 않을까 싶었는지 엄마는 '떡만둣국 해 먹을까?'가 아닌  '떡만둣국은 싫지?'라고 물으셨다. '싫을리가요. 새벽부터 이어진 빗소리에는 뜨끈하고 진한 국물이 어울리죠.' 비 내리는 아침마다 떡만둣국을 해주실까봐 살포시 속으로만 말했다.


그리고 잠시 뒤, 아침부터 노트북을 켰던 나는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엄마엄마! 아직 멀었어?"

"잠시만~ 열무김치만 담가놓고 먹자"


엄마표 '후다닥' 떡만둣국


계란과 파가 둥둥 떠다니는 엄마표 '후다닥' 떡만둣국. 엄마는 방앗간에서 직접 뽑아온 가래떡을 칼로 썰어 떡국떡으로 잔뜩 만들어뒀었다. 만두가 반봉지나 들어가고 떡은 울퉁불퉁 각기 다른 크기로 가라앉아있던 오늘의 떡만둣국은 여전한 엄마손맛이었다.


"우리엄마 한석봉 엄마는 안 되겠네"

"가래떡이 딱딱하게 굳은 다음에 썰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손에 물집 잡히는 줄 알았어"

"에고고 우리엄마 그랬어요? 나는 똑같은 모양으로 파는 떡 보다는 크기가 다 다른 이 떡이 더 좋아!"


냄비 가득 끓였던 뽀얀 떡국을 다 먹을 때까지도 비가 내렸다.


"엄마, 어제 창문 열고 자서 비 맞지 않았어?"

"응 비 맞았지. 빗방울이 한 방울씩 톡톡 튀기는데 너무 시원하더라. 그래서 어제는 더 푹 잤어."


톡톡 튀기는 빗방울에 모처럼만에 꿀잠을 잤다는 엄마. 참 우리엄마다운 대답이고 참 우리모녀다운 대화다. 하루에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 단 5분도 채 되지 않았던 우리 모녀가 한 달을 훌쩍 넘어 이렇게 매일 아침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지만, 그 상대가 엄마라서, 퇴사를 하고 눈을 뜨는 매일 아침이 부담스럽지 않다. 요즘 나는, 엄마와 마주 보고 아침을 먹는 것만으로도 눈감아야 했던 어젯밤의 아쉬움이 달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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