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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성 Jul 05. 2016

떠나자

글을 쓰기 힘들었다. 채울 내용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일상은 지루했고 지쳐갔다. 그렇게 한 달이나 브런치를 방치했으니 이거는 직무유기 아니면 게으름의 산물이다. 사실 6월 한 달은 바쁘다기 보단 혼자 정신없었고 그래서 일에는 지쳐가던 달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주말 여행으로 조금이나마 숨쉴 틈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말 이틀씩이라 시간은 짧다고 할 수있었지만 그래도 평일의 답답함을 채울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한탄강, 부산, 안면도에서 횡성까지(정확히는 비발디파크), 살면서 가장 바쁜 6월의 주말이었다. 그렇게 6월의 마지막날, 생일을 끝으로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갔다.

덩실덩실 여름 나들이에 신났다

6월의 시간들이 소중했던 이유는 꼭 힐링이나 생일이 있어서만은 아니였다. 자주보지 못했던 가족, 친구들과의 빈틈을 채울 수 있었기에 참 소중했다. 나이가 삼십줄에 접어들면서 별다른 놀이나 활동에는 금세 지치고 대신 꽃을 피우는 것은 이야기(라고 쓰고 수다라 읽는다)꽃이다. 여자친구가 그 때 알던 그 분이 맞는지 확인도 해보고, 직장생활은 좀 몸에 맞는지, 결혼이나 미래 계획까지 주제는 비슷하지만 그 속을 채운 이야기들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조직생활의 염증에 빠져있기도 했고 누군가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감정이입도 하다보면 시간은 벌써 새벽을 향해가고 있었다. 다가오는 일요일이 그렇게 싫었지만 그래도 서울을 떠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잠시나마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안면도. 여행은 떠나기 전이 참 설렌다.

요새 회사에서는 휴가 일정을 조사하느라 여념이 없다. 짧은 휴가들도 좋지만 역시 메인은 리프레시다. 그런데 사실 올해도 큰 계획은 없었다. 정신없이 시간만 흘러 보내고 있다보니 어떻게 휴가를 보낼지 생각조차 없었다. 쉴 줄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것마저 편하게 쉬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였는지 모르겠다. 갈팡질팡, 미적미적거리고 있던 찰나, 회사동기가 연락이 왔다. '오로라 좋아하냐'는 뜬금없는 발언에 이게 뭔가 싶었는데, 글쎄 여행 제안이였다. 목적지는 핀란드,  우리의 목적은 '꼭 오로라를 보는 것' 방향성 없이 휴가를 고민하던 때 동기가 연락준게 참 고마우면서도 절묘했다. 어쨌든 우리는 11월에 추운 겨울의 핀란드로 떠나기로 했다. 삶의 자극이나 변화가 있어야 이 반복되는 일상을 버틸 수 있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너는 무슨 즐거움으로 사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는데 이번 여행이 작게나마 삶의 태도도 변화시켜줬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돈을 펑펑쓰겠다는 말은 아니다. (비행기 귀국 날짜를 잘못 넣어서 20만원 날렸다. 이번 여행, 벌써 고난의 시작이다.)

핀란드는 어떤 곳일까. 휘바휘바.

핀란드 여행을 결정하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가끔 추진력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사실 그냥 생각이 없어서 그렇다. 거리낄 것이 크게 없는 일은 빨리 결정하고 진행하는 게 맞다. 이번 여행도 뭐 그래서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 문제는 요즘 다른 사람의 결정도 쉽게 보는 게 아닌지 두렵다는 것이다. 며칠 전 친한 형의 고민을 듣던 중 너무나 쉽게 답을 내려준 거 같아 마음이 무겁다.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괜히 형에게 종용한 건 아닌지 덜컥 겁도 난다. 분명 이 순간에도 고민할거고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있을 거다. 그래도 조언을 통해 오롯히 자신에게 던져질 선택의 대가를 조금은 가벼이 해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거 같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고민과 푸념마저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가는 건 아닌지, 고민의 무게는 같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무겁다는 것을 간과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고민의 무게를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어야하는데 요즘은 누구에게나 돌을 더 얹는 느낌이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게 변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문제다. 변하지 않는 일상의 덫일까. 스스로가 먼저 잡아먹히기 전에 일상의 작은 변화를 찾아야겠다. 이번 핀란드 여행처럼, 언제나 삶을 설레게 해줄 수 있고 풍요롭게 채울 수 있는 그런 변화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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